세월호 인양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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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DO-GUN, SOUTH KOREA - MARCH 23: In this handout photo released by Hankook Daily, a submersible vessel attempts to salvage sunken Sewol ferry in waters off Jindo, on March 22, 2017 in Jindo-gun, South Korea.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ttempted to raise the Sewol ferry on March 22, 2017. The Sewol sank off the Jindo Island in April 2014 leaving more than 300 people dead and nine of them still remain missing. (Photo by Hankook Daily via Getty Images)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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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23일 물 밖으로 나왔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1073일 간의 기다림과 슬픔, 분노, 그리고 의혹이 담겨 있다.

세월호 인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각에서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끌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 인양에는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세월호 인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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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본적으로 전제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세월호 인양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

세월호는 국내 여객선 중에서도 최대 규모인 6825t급인 배다. 그 거대한 배는 수심 44m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유속이 빠르기로 유명한 맹골수도 바닷물 속이다.

또 세월호는 선체를 여러 조각으로 절단하지 않은 채 통째로 인양된다. 해양수산부는 애초 인양업체 선정 입찰을 공고하며 선체를 절단하지 않고 완전체로 인양하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수습자 시신 유실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 이와 유사한 사례는 전무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번 세월호 인양작업이 기술적으로 주목받은 건 탠덤리프팅(Tandem Lifting) 방식으로 통째 인양되는 세계 최초의 초대형 선박 인양사례라는 점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사고가 발생해 침몰한 7000t급 이상 외국 선박 15척 중 14척이 인양됐는데 대부분이 선체를 해체한 뒤 인양됐다.

세월호는 퇴적물을 포함해 1만t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길이가 145m인 초대형 선박이다. 이 정도 규모의 선박을 해체 없이 탠덤 리프팅 방식으로 통째 인양하는 건 전례가 없다. (중앙일보 3월23일)

세월호 인양의 기술적 어려움은 여기까지이고, 그 다음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2014년 4월~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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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22일, 유기준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선체 인양 결정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공식 발표한 건 2015년 4월22일이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사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 '비밀리에' 세월호 인양을 추진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승객 전원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인양 작업을 하지 않겠다(김수현 당시 서해해양경찰청장)"고 말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 때 이미 세월호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인양을 준비했다.

한겨레21이 지난 1월 보도한 내용을 보면, 해경은 참사 하루 뒤인 4월17일에 '진도 전복 여객선 세월호 인양작업 계획'이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20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양을 준비했다. 이 모든 건 국무총리실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이처럼 빠르게 인양을 추진했던 것이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로 악화된 여론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도 있다. 2014년 4월25일자 ‘선체인양 추진단 운영방안 검토’란 제목의 문서에는 추진단의 필요성에 대해 “인양계획·일정계획 수립 등 선제 대응을 통해 수색·구조에서 인양 국면 전환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비난 여론 사전 차단”이라고 적혀 있다. (한겨레21 제1145호 1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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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단호했다. 신속한 인양보다 온전한 수색이 먼저라는 입장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도 유족들 편에 섰다. 미수습자 수색 작업이 공식 종료된 11월11일까지, 누구도 공식적으로 '세월호 인양'을 거론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 해체'를 발표했다. 경찰은 현상금 5억원을 걸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체포 작업에 나섰지만 그는 변사체로 나타났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는 정부와 여당, 야당의 이견이 컸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 등을 놓고 의견충돌이 반복됐다.

2014년 11월~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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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장 모습. ⓒ뉴스1

미수습자 수색 작업이 공식 종료된 이후, 정부는 본격적으로 인양을 위한 기술 검토에 들어갔다. 해양수산부 산하 민·관합동 세월호 선체처리 기술검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고, 4개월이 넘는 활동 끝에 기술적으로 세월호 인양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발표됐다. 2015년 4월10일의 일이다.

그보다 나흘 앞선 6일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2일에는 마침내 세월호 인양이 공식 발표됐다.

그러나 정부가 10일 기술검토 결과를 발표하며 밝힌 내용은 1년 전 정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했던 결론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1년 전에 내려진 결론을 은폐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5년 4월14일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5일 영국 해양구난 컨설팅업체 TMC와 자문계약을 맺었다. TMC는 그 해 5월 말 정부에 기술검토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이 내용이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정부가 공식 발표한 내용과 '판박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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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5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76일 동안 벌여온 농성장을 철수하고 있다. 당시 유족들은 "앞으로는 대통령님께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닦아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특히 정부는 "인양 절차의 전 과정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유가족이며, 따라서 정부는 이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해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TMC의 조언을 거의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11일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 직후 정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기술검토TF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일 TF의 첫 회의 직후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논의 과정에서 빠져줄 것을 요구했다. 유가족들이 회의에 들어오면 전문가들이 제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없고, 설령 회의가 진행된다 해도 전문 용어들이 많아 유가족들이 알아듣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후 TF는 12월 8일과 26일 두 차례 회의 결과를 유가족들에게 브리핑한 뒤 이후 추가로 열린 10여 차례의 회의는 아예 일정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업체조차 유가족들에게 인양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는데 우리 정부는 정보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셈이다. (뉴스타파 2015년 4월14일)

참사 1주기를 즈음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인양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기술검토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인양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2015년 2월에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취임했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23일 당시 정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2년 전 제가 원내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세월호 문제를 이야기했다.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반드시 세월호 선체는 인양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세월호 문제에 대해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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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17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뉴스1

그해 3월17일 열린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참사 1주기가 다가오는데 (선체) 인양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의지를 표명하고 대통령께서 챙겨주시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작년에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해체할 때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잘하기로 했으니까, 논의를 지켜보면서 하면 되지 않겠나"라는 원론적 입장을 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세월호를 인양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나섰고, 일부 '보수단체'들은 세월호 인양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유기준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여론조사'로 인양을 결정하자고 했다.

또 정부는 세월호 인양 계획을 발표하기도 전에 '세월호 비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나서서 세월호 인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런 의혹은 2016년 말에 이르러서야 일부나마 그 진실이 드러났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에 따르면,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유가족들을 고립시키는 '언론 전략'을 수립했으며, '온건한' 유가족과 '강경한' 유가족을 분리해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에 개입한 사건도 같은 맥락이었다.

2015년 4월~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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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15일, 연영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장이 세월호 인양업체 가격평가 결과 및 업체현황, 향후 일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결정한 이후, 최우선 협상대상 인양업체로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선정하기까지는 3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입찰 금액은 851억원이었다.

2~3순위 업체의 입찰금액은 각각 990억원(중국), 999억원(미국·네덜란드)이었다. 7개 입찰업체 중 3곳은 탈락, 1곳은 실격이었다. 정부는 세월호 인양의 기본 조건으로 '절단 없는 온전한 인양'과 '인양비용 1000억원 이내'를 제시했다.

약 한 달 뒤인 8월4일,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이 인양업체로 최종 확정됐다. 보름 뒤에는 첫 수중조사가 시작됐다.

당시 인양업체와 정부는 2016년 7월까지는 인양이 완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예상은 빗나갔다. 작업이 지연되면서 특히 중국 국영기업인 상하이샐비지의 기술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업체가 제시한 '플로팅 독' 방식이 거듭 난항을 겪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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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19일, 해양수산부 유기준 장관이 세월호 참사 현장에 정박한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소속 다리호를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의혹은 애초 인양업체 선정 과정에 대한 의문으로 번져갔다. 기술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는 따로 있었는데 정부가 인양 사업비를 너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입찰을 포기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가 '입찰 공고 때 기술점수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업체들과 합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입찰평가 문건에 따르면, 기술 항목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실격'처리된 네덜란드 업체 스미트가 구성한 '스미트 컨소시엄'이었다.

이 업체가 '실격'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스미트 콘소시엄은 자신들이 제안한 인양 방식을 적용하기 위한 비용으로 1천4백85억 원을 제시했다. 지난 4월 해수부의 인양기술검토TF가 세월호 인양비용으로 1천억~1천5백억 원이 소요되고 기상 상태 등에 따라 2천억 원까지 소요될 것이라고 발표한 수위에 맞춰 준비된 것이었다. 이어 지난 5월 18일 유기준 해수부장관이 국회 농해수위에 출석해 세월호 인양 사업비로 1228억 원을 책정하기 위해 기재부와 협의 중이라고 보고했을 때에도 자신들의 가격 수준을 유지해 입찰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나흘 뒤인 5월 22일 해수부의 입찰 공고에서 사업비가 1천억 원으로 제한되자 고민에 빠졌다. 격차가 너무 커서 탈락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단 기술제안서를 제출한 뒤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내부에서 논의했지만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중간 단계인 입찰보증금 예치를 하지 않고 입찰을 포기한 것이다. (뉴스타파 2015년 8월28일)

스미트 컨소시엄이 써낸 1485억원과 상하이샐비지가 낸 851억원. 634억원을 아낀 대가는 실패, 그리고 기다림이었다.

인양작업 참관에서 배제당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9월부터 동거차도에 움막을 짓고 인양작업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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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4일, 왕웨이핑 상하이 샐비지 세월호 인양 현장총감독이 세월호 인양작업 주요공정 및 향후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겨울이 끝나고 또 한 번의 봄이 와서야 인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모든 과정은 "밀실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됐다. 권영빈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은 2016년 10월 한겨레 기고에서 이렇게 적었다.

(...)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위한 기술 검토, 업체 선정, 세부적 공정, 선체 활용 계획, 미수습자 수습 계획에 이르는 전 과정을 밀실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해왔다. 언제나 미수습자의 신속한 수습을 위한다는 미사여구뿐, 인양 작업 중 정부가 밝힌 일정대로 진행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예상치 못한 기술적 결함’, ‘예상치 못한 기상 상태’, ‘예상치 못한 해저면 상태’, ‘예상치 못한 조류’ 등을 핑계로 세월호 인양 지연이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한겨레 2016년 10월27일)

물론 인양 작업이 중단됐던 것은 아니었다. 부력을 확보하고 선체의 무게를 줄이는 작업이 3월말에 시작됐고, 6월에는 선수(뱃머리) 들기 공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작업은 6~7개월 넘게 지연됐다.

인양을 위한 철제 리프팅 빔(인양 받침대)을 선체 아래에 설치하기 위한 굴착 작업도 지연됐다. 해저면 토질이 워낙 단단해 기존 한달로 예상됐던 작업 완료 시점이 다섯달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중략)

선체를 수중에서 가볍게 띄우기 위한 부력 확보도 상당 부분 늦어졌다. 상하이샐비지 측은 세월호 내부 탱크 18개에 공기를 주입해 부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실제 조사를 해보니 10개 탱크만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이른바 '에어백'인 에어 폰툰(pontoon)을 선체 곳곳에 추가로 설치하는데 33일을 소요했다. (뉴스1 1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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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31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인양 선미작업 공정 변경 브리핑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7월까지'가 '연말까지'로 변한 뒤 별다른 소식이 없던 2016년 11월11일, 정부는 공식적으로 연내 인양은 어렵게 됐다며 인양방식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애초 입찰 당시 나머지 업체들이 냈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1년 동안 시간을 허비한 셈이었다.

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인 정성욱씨는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인양을 못했던 겁니까? 안 했던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둘 다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 정성욱> 글쎄요. 일단 저희가 보기로는 열심히 한 것은 맞아요. 계약을 했으니까 열심히 했다고 보기는 하는데. 기술력으로 해야 되는 거지, 사람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배가 올라오는 게 아니라 기술이 뒷받침이 돼야 배가 올라오는 건데 솔직히 그렇게 본다면 상하이 샐비지가 돼서는 안 됐던 거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3월23일)

정부는 일정이 지연되면서 12월까지였던 상하이샐비지와의 계약을 2017년 6월까지로 연장했다. 계약금액은 916억원으로 불어났다. 인양 지연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2017년 1월~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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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 방식을 바꾼 이후,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불과 4개월이 걸렸다. 3월7일,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4월초에 있을 소조기에 맞춰 세월호 인양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한 번 구체적인 인양 시점이 예고된 것이다.

이후 인양작업은 정부의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한 차례 인양 시도가 무산된 뒤 세월호 참사 1072일째인 22일에 시험 인양을 시작으로 본인양이 시작됐다.

다음날인 23일 새벽, 마침내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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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세월호 인양 시점 사이의 연관성은 분명하지 않다. 인양 방식을 변경한 덕분에 인양작업의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박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이후 정부가 갑자기 속도를 낸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탄핵안 가결 시점과 탄핵안 인용 시점은 각각 인양 방법 변경 시점과 정부의 '4월 인양' 발표 시점보다 앞선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정부 및 인양업체의 실책과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음은 분명하다.

정부가 조금 더 일찍 인양을 결정했더라면, 정부가 인양업체 선정 예산을 조금 더 높였더라면,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조금 더 빨리 인양 방식을 변경했더라면.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양을 서둘렀다면. 만약 그랬다면 세월호는 조금 더 일찍 모습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고의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데 실패했다. 구조, 진상조사, 인양 등 세월호 참사 전 과정을 거치며 커져왔던 정부에 대한 불신. '정부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인식. 곳곳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어쩌면 바로 그게 가장 비싼 '세월호 참사 비용'일지도 모른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물론, 온 사회가 고통스럽게 지불해야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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