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의 '아무말 대잔치'에 대한민국은 우왕좌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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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LERSON
U.S. Secretary of State Rex Tillerson (L) looks at South Korean Foreign Minister Yun Byung-Se during a news conference in Seoul, South Korea March 17, 2017. REUTERS/JUNG Yeon-Je/Pool | POOL New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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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성공한 기업가인지는 몰라도 외교관으로서의 수완은 분명 부족하다. 외교관의 말 한 마디가 갖는 파급력에 대해 아직 조심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국내에서 큰 논란이 됐던 '만찬 거절' 소동에 대한 발언이 그렇다. 대부분의 국내 매체가 '따로 만찬 협의를 진행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틸러슨 장관이 한국 측의 만찬 요정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는데 국내 영자 매체인 코리아헤럴드가 '피로'를 이유로 틸러슨 측이 만찬을 거절했다고 보도한 게 국외에서 논란이 됐다.

틸러슨의 이번 순방에 유일하게 동행한 미국 언론사 '인디펜던트 저널 리뷰(IJR)'는 틸러슨이 중국으로 향하는 도중 처음으로 인터뷰를 가졌는데 '만찬 논란' 대한 둘의 문답은 뭔가 몬티 파이튼의 부조리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기자 한국 신문에서 당신이 피로해서 만찬을 취소했다고 하면서 당신이 일본 측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틸러슨 한국 측은 우릴 만찬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다 막판에 아무래도 대중들이 보기에 좋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피곤해서 만찬을 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냈다.

기자 그럼 그들이 만찬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틸러슨 그게 아니라 그냥 그들의 설명이 그랬다는 거다.

기자 알겠다.

틸러슨 난 어제 저녁을 먹었다. (IJR 3월 18일)

틸러슨의 화법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묘한 뉘앙스를 갖고 회피하는 외교관의 화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냥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내던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방한하자마자 찾았던 비무장지대(DMZ)에서 벌어졌다. 한국의 핵무장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냐는 폭스뉴스의 질문에 "어떠한 옵션도 논외로 하지 않았다"라고 답한 것. 폭스뉴스는 '틸러슨이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군비 증강과 심지어 핵무장까지도 고려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하여 한국 언론에는 다시 '핵무장'에 대한 예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틸러슨 장관이 이날 인터뷰에서 “(북핵) 상황 전개에 따라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상황 인식과 관련이 있다. 북한이 미 본토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동안 금기시돼 온 한국 자체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북 정책의 대원칙을 뒤흔드는 모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북한의 핵 위협이 심각해졌다는 뜻이다. (동아일보 3월 20일)

그런데 폭스뉴스의 보도가 나간 뒤에 이뤄진 IJR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말 틸러슨의 의도가 국내 언론이 이해하는 것과 같은지 의문이 든다:

기자 당신은 어제 폭스에 한반도의 핵무장에 대해서 '어떤 옵션도 논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무장관 인사 청문회 때에는 한국과 일본은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나. 북한 문제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특히 일본은 필요할 경우 빠르게 핵무기를 완성할 수 있어서 당신의 입장이 바뀐 것인가?

틸러슨 아니다. 나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고, 미국의 정책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다. 비핵화된 한반도는 일본이 핵무기를 가질 필요나 생각을 모두 무효로 만든다. 우리는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다. (IJR 3월 18일)

이쯤되면 그냥 '아무말 대잔지'다. 아무리 우리가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더라도 정책은 어떠한 원칙을 갖고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목적이라면 한국이나 일본이 핵을 개발하도록 해선 안된다. 분명 그 옵션만큼은 논외가 돼야 한다.

그런데 DMZ에서는 핵무장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것도 고려의 대상'이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하더니 다른 기자가 인사 청문회 때 했던 발언과 다르다고 지적하자 곧바로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고 말을 바꾼다. 어째 '만찬 논란'에 대한 대응과 비슷하지 않은가?

한국의 기대와는 달리 틸러슨은 중국에서는 사드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향후 한반도 정세의 전망은 방한 전보다 방한 이후에 더 예측이 어려워졌다. 미국 외교 수장의 아무말 대잔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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