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어도 외롭다 : 게이들의 새 전염병, 외로움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gay

“메탐페타민이 다 떨어지면 정말 신났어.”

내 친구 제레미의 말이다.

“있으면 계속 먹어야 되거든. 떨어지면 ‘와 좋다, 이제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하는 생각이 들어. 주말 내내 한숨도 안 자고 섹스 파티들에 가면 수요일까지 기분이 엉망이야. 2년쯤 전에 코카인으로 바꿨어. 코카인을 하면 다음 날 일을 할 수 있거든.”

제레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장소는 시애틀 병원 6층의 입원실이다. 그는 약을 과다 복용한 상황을 내게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낯선 사람이 앰뷸런스를 불러 주었고 일어나 보니 여기였다고만 한다.

나는 제레미와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마티니보다 더 독한 것을 사용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는 날씬하고 지적이며, 글루텐을 먹지 않는다. 무슨 요일이든 워크 셔츠를 입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크로스핏하기 좋은 곳을 아는지 물었다. 오늘 입원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와이파이가 없어서 업무 관련 이메일이 잔뜩 밀려 있다는 것이었다.

“마약은 지루함과 외로움이 합쳐져서 했던 거야. 금요일 밤에 잔뜩 지쳐서 퇴근해서 집에 오면 ‘이제 뭐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메탐페타민을 전화로 배달시키고 인터넷으로 어디 파티없나 찾아봐. 그러거나, 아니면 혼자 영화 보거나 둘 중 하나거든.”

내 게이 친구들 중 힘들어 하는 사람은 제레미(본명은 아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게이들 중 실명을 쓴 사람은 몇 명 뿐이다)만이 아니다.불안이 너무 심해서 일할 때 말고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는 맬컴이 있다. 저레드는 우울증과 신체 이형증 때문에 사교 생활이 점점 줄어들어 나, 체육관, 인터넷 즉석 만남 말고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내가 두 번째로 키스했던 남자인 크리스천은 32세에 남자 친구에게 실연당한지 2주 뒤 자살했다. 크리스천은 파티 용품점에 가서 헬륨 탱크를 사서 들이 마시기 시작했다. 전 남자 친구에게 집으로 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가 자기 시체를 발견하게 만들기 위해서 였다.

몇년 동안 나는 내 이성애자 친구들과 게이 친구들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절반은 결혼, 아이, 교외로 사라졌는데, 나머지 절반은 고립과 불안, 강한 마약, 위험한 섹스로 괴로워 한다.

내가 스스로에게 말했던, 내가 들어왔던 내러티브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나와 마찬가지로 제레미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도, 가족들에게 버림 받지도 않았다. 그는 호모(faggot)이라고 불렸던 기억조차 없다. 그는 서부 교외에서 레즈비언 어머니 손에 자랐다. “내가 12살일 때 엄마는 내게 커밍아웃하셨어. 그리고 그 다음 다음 문장은 엄마는 내가 게이라는 걸 안다는 말이었어. 난 그땐 잘 몰랐는데.”

gay

이건 내가 9살 때 찍은 가족 사진이다. 부모님은 내가 게이라는 걸 몰랐다고 지금도 우기신다. 다정하신 분들이다.

제레미와 나는 34세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게이 커뮤니티는 법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있어 역사상 그 어떤 인구집단보다도 더 큰 진보를 이루었다. 내가 사춘기일 때만 해도 동성 결혼은 먼 염원이었다. 신문에선 동성 결혼을 무서운 것으로 다루었다. 지금은 대법원에서 동성 결혼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었다. 동성 결혼에 대한 대중의 지지율은 1996년의 27%에서 2016년에는 61%로 올라갔다. 대중 문화는 ‘광란자’에서 ‘퀴어 아이’를 거쳐 ‘문라이트’까지 왔다. 이젠 게이 캐릭터는 너무나 흔해서, 결점이 있는 캐릭터가 있어도 될 정도다.

우리는 이 변화의 크기와 속도에 기뻐하고 있지만, 게이 커뮤니티 내의 우울증, 외로움, 약물 남용 비율은 수십 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여러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게이는 이성애자에 비해 자살할 확률이 2~10배 더 높다고 한다. 심한 우울증을 겪을 확률은 2배 정도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지난 번의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이 트라우마는 남성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뉴욕에 도착한 게이 남성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4분의 3은 불안이나 우울증으로 고통받거나, 마약이나 알코올을 남용했거나, 위험한 섹스를 하고 있었다. 이 셋 중 두세 가지를 동시에 겪는 경우도 있었다. ‘선택한 가족’이라는 말은 많이들 하지만, 게이 남성들은 이성애자나 게이 여성에 비해 가까운 친구의 수가 더 적었다. HIV 클리닉 종사자들의 조사에서 한 종사자는 연구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생명이 구할 가치가 있는지를 아느냐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내가 객관적인 척하지는 않겠다. 나는 대도시에서 PFLAG[주: Parents, Families and Friends of Lesbians and Gays.레즈비언이나 게이인 자녀, 가족, 친구를 둔 사람들의 단체] 회원인 부모님 아래서 자란, 언제까지나 싱글 게이인 남성이다. AIDS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모르고, 직접적인 차별을 경험한 적도 없고, 결혼, 말뚝 울타리, 골든 리트리버기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당연한 세상에서 커밍아웃했다. 또한 그라인더를 다운 받았다가 삭제한 횟수보다 세라피에 들락거린 횟수가 더 많다.

“결혼 평등과 법적 지위 변화는 일부 게이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허탈해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에겐 이런 법적 지위가 있지만,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게 있다, 는 느낌이었다.” 뉴욕 대학교에서 게이와 이성애자 남성의 정신 건강의 차이를 연구하는 크리스토퍼 스털츠의 말이다.

이런 공허감은 미국에서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2001년에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네덜란드에서는 게이 남성들이 이성애자 남성들보다 기분 장애를 겪을 확률이 지금도 3배 더 높고, ‘자살적 자해’를 할 확률은 10배 높았다. 1995년에 시민 결합이, 2009년에 결혼이 허용된 스웨덴에서는 남성과 결혼한 남성은 여성과 결혼한 남성에 비해 자살율이 3배 더 높다.

참기 힘든 이 모든 수치들은 똑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른 남성에게 끌리는 남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아직도 위험할 정도로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유행병학자와 사회 과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그 이유의 이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gay

뱅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질병 통제 센터의 트래비스 샐웨이는 지난 5년간 게이 남성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연구해 왔다.
“과거 게이 남성을 규정짓는 요소는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의 게이 남성들이 커밍아웃을 했는데도 똑같은 고립을 느낀다.”

우리는 조그만 누들 바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11월이다. 그는 청바지와 오버 슈즈를 입고 결혼 반지를 낀 채 나타난다.

“동성 결혼했어요?” 내가 묻는다.

“심지어 1 대 1의 관계예요. 이 도시의 열쇠를 받을 것 같아요.”

샐웨이는 오하이오 주 셀리나에서 자랐다. 인구가 1만 명쯤 되는 낡은 공장 마을이다. 21세 아이들이 대학이냐 결혼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곳이라고 샐웨이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걸 알기도 전에 게이라고 괴롭힘 받았다. “여성적이고 합창단에 있었거든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그래서 그는 조심했다. 고등학교 거의 내내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셀리나를 떠나기 전까지 남성들을 피하려 했다. 로맨틱한 관계는 물론 플라토닉한 관계도 피했다.

2000년대 말까지 그는 사회복지사이자 유행병환자였다. 그리고 나처럼 자신의 이성애자 친구들과 게이 친구들이 점점 달라지는 것에 놀랐다. 그는 게이 남성과 정신 건강에 대해 늘 들어왔던 이야기가 불완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 건강의 이런 차이가 처음으로 주목 받았던 50년대와 60년대에 의사들은 이것이 동성애 자체의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동성애를 ‘성적 도착’으로 보았고, 정신 건강 문제는 그저 그것이 드러나는 여러가지 형태 중 하나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게이 인권 운동이 힘을 얻으면서 동성애는 정신 질환 목록에서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이 남성들은 자기 가족들에게 내쫓김을 당하고, 그들의 성생활은 불법이었다. 자살과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높을 만도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게이의 자살은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거나, 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춘기 남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샐웨이의 말이다.

그러다 그는 자료를 보았다. 문제는 자살만도, 비참한 십대만도, 동성애혐오로 얼룩진 지역에서 일어나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어디서나, 나이와 상관없이 게이 남성들은 심혈관계 질병, 암, 실금, 발기부전, 알레르기, 천식 등의 발병률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병이든 마찬가지였다. 샐웨이는 캐나다에서 여러 해 전부터 AIDS보다는 자살로 죽는 게이 남성이 더 많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아무도 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적이나 육체적으로 공격 받은 적이 없는 게이 남성이 전투에 참가했거나 강간당한 사람들과 비슷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다.” 펜웨이 연구소의 LGBT 건강 인구 연구 센터의 정신과 의사 알렉스 쿠로글리언의 말이다.

쿠로글리언의 표현에 의하면 게이 남성은 ‘거부를 당할 거라고 예상하는데 익숙하다’. 우리는 사교적 상황들에서 우리가 잘 어울리지 못할 상황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자기 주장을 하기 힘들어 한다. 사회적으로 저질렀던 실수들을 반복 재생한다.

이 세 가지 증상에서 가장 묘한 점은 우리들 대부분은 그게 증상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살핀 후 샐웨이는 자살 시도 생존 게이 남성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왜 자살하려 했는지 물으면 대부분은 게이라는 것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연애 문제, 커리어 문제, 돈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섹슈얼리티가 자기 삶에서 가장 우선적인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살 확률이 10배는 더 높다.”

gay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소수 스트레스’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소수 스트레스의 가장 직접적인 형태는 간단하다. 소외된 집단의 일원으로 지내려면 노력이 더 많이 든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유일한 여성이라면, 대학 체육관에서 유일한 흑인 남성이라면, 다수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상사에게 맞선다면, 혹은 그러지 못한다면, 당신은 전형적인 직장 여성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테스트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게 당신의 인종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큰 오명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가능성들을 생각하다 보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게이라는 소수 지위가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게이들에겐 이 영향이 더욱 커진다. 남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우리는 12세 때 하면서 내면의 질문들에 답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친구나 부모에게 알리지도 못한다.

예일 대학교의 스트레스 연구자 존 파찬키스는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깨닫고 나서 남들에게 말하기 시작하기까지의 약 5년 동안이 폐해가 크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는 비교적 작은 스트레스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직접 트라우마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당신을 퀴어라고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그런 말을 듣는 걸 피하기 위해 행동을 조절하게 된다.”

제임스는 거의 커밍아웃을 한 20세다. 커밍아웃 전이던 12세 7학년 때, 학교 친구였던 여자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임스는 별 생각없이 “음, 남자 같이 생겼으니까 섹스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대답하고 곧 패닉에 빠졌다고 한다. “혹시 누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을까? 내가 그렇게 대답했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까?”

내가 사춘기였을 때도 그랬다. 조심하다가, 말 실수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곤 그걸 벌충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했다. 한 번은 워터 파크에 갔는데, 슬라이드에 줄 서 있다가 중학교 친구 하나가 내가 자기를 빤히 보는 걸 눈치챘다. “야, 너 지금 나 훑어본 거야?” 그가 말했다. 나는 간신히 “미안, 넌 내 타입이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뒤로 몇 주 동안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모든 괴롭힘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게이 남성의 트라우마는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된다. 트라우마 사건을 한 번 경험하면, 세라피를 4~6개월 받으면 해결될 수 있을 정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하지만 작은 스트레스 요인들을 여러 해에 걸쳐 경험하는 것(당신이 ‘이게 내 섹슈얼리티 때문이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소한 일들)이 더 나쁠 수 있다.” 성적 트라우머 연구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엘더의 말이다.

gay

엘더는 정체성을 숨기는 것을 누군가 당신의 팔을 계속해서 살짝 때리는 것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짜증이 난다. 시간이 좀 지나면 화가 치솟는다. 결국엔 당신은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걸 매일 겪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몸에 쌓인다.

게이로 성장한다는 것은 극도의 빈곤 속에서 성장하는 것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악영향을 주는 것 같다. 2015년 연구에서는 게이들은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호르몬 코티솔을 더 적게 분비한다는 걸 발견했다. 사춘기 때 몸이 언제나 너무 활서화되 었어서 성인이 되었을 때 몸이 둔해지는 것이라고 연구 공저자 케이티 맥러플린은 말한다. 2014년에는 연구자들은 이성애자와 게이 십대들의 심혈관계 질병 위험을 비교했다. 게이 청소년들이 ‘스트레스성 생활 사건’을 더 많이 겪지는 않았으나(즉 이성애자들에게도 문제는 있으나) 게이 청소년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신경계에 더 큰 손상을 주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안네사 플렌티에는 소수 스트레스가 유전자 발현에 주는 영향을 전공한다. 팔에 날아오는 주먹과 그에 대한 우리의 적응이 합쳐져, ‘30년이 지나도 도전을 받지도 꺼지지도 않는 자동적 사고 방식’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우리의 몸은 우리가 들어가 있던 옷장을 지닌 채 성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는 스트레스를 처리할 도구가 없고, 어른이 되었을 때는 그게 트라우마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컨설턴트로 일하다 2년 전에 그만두고 도자기를 만들고 애디론댁 산맥에서 어드벤처 투어 가이드를 하는 존의 말이다. “어렸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려는 게 우리의 본능적 반응이다.”

소수 스트레스를 이해하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바친 샐웨이조차 뱅쿠버에서 파트너와 함께 걸어다니는 게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아무도 그들을 공격한 적은 없지만, 개자식 몇 명이 공공장소에서 그들에게 몹쓸 말을 외쳐댄 적이 있다. 그런 일이 몇 번만 있어도 또 일어나지 않을까 신경쓰게 된다. 다가오는 차를 보면 심장이 조금 빨리 뛰게 된다.

그러나 소수 스트레스는 게이 남성들이 그토록 폭넓은 건강 문제를 겪는 이유를 전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첫 피해는 커밍아웃 전에 오지만, 더 강렬할 수도 있는 두 번째 피해는 커밍아웃 이후에 오기 때문이다.

gay

아무도 애덤에게 여성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나처럼, 우리들 대부분처럼, 그러지 않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나는 내 가족이 동성애혐오적일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는 담요를 드레스처럼 몸에 두르고 뒷마당에서 춤추곤 했다. 부모님은 그게 귀엽다고 생각하셨고, 영상을 촬영해 할아버지 할머니께 보여드렸다. 다같이 그 영상을 볼 때 나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소파 뒤에 숨었다. 그떄 나는 6~7살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에는 버릇을 관리하는 법을 굉장히 잘 익혀서, 아무도 그가 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숨기고 있는 게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세상 속에서 외로운 요원처럼 움직여야 했다.”

그는 16세 때 커밍아웃했고, 졸업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HIV 예방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해결해 보려고 “섹스를 아주 많이 했다. 섹스는 게이 커뮤니티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이다.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있을 때면 친밀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한다. 그러다 거기에 지나치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는 오래 일했다. 지친 상태로 집에 와서 대마초를 조금 피우고 레드 와인을 한 잔 따른 다음, 앱을 통해 놀러오라고 할 사람을 찾았다. 남성 두세 명을 연달아 부른 적도 있다. “한 명을 보내고 문을 닫자마자, 지금 사람은 별로였어, 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찾았다.”

몇 년 동안을 그렇게 지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는 부모님 댁에 돌아갔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섹스를 해야겠다는 충동적인 필요를 느꼈다. 마침내 근처에 사는 한 남성이 만나겠다고 하자, 그는 부모님 방으로 달려가 혹시 비아그라가 있나 서랍을 뒤졌다.

“그럼 그때가 최악의 순간이었나요?” 내가 물었다.

“세 번째, 네 번째쯤 돼요.”

애덤은 이제 섹스 중독 치료 12단계 프로그램을 밟고 있다. 마지막으로 섹스를 한 건 6주 전이다. 이 프로그램 전에는 길어봤자 사나흘 정도였다.

“즐겁기 때문에 섹스를 많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괜찮다. 하지만 나는 섹스 안에 없는 것을 끄집어내려고 섹스를 행주처럼 쥐어짜곤 했다. 사회적 지원이나 동료애 같은 것. 난 그런 식으로 내 삶을 대면하기를 피했다. 이게 문제라는 걸 계속해서 부정했다. 나는 ‘난 커밍아웃했어. 샌프란시스코로 왔어. 다 끝났어. 나는 게이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거야.’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했다.”

심리학자들도 수십 년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게이 남성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중요한 단계들은 모두 커밍아웃 전이고, 마침내 자기자신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면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연구자들은 적응하기 위한 분투가 더욱 강렬해진다는 걸 발견했다. 2015년의 연구에 의하면 커밍아웃하지 않은 남성들보다 최근 커밍아웃한 남성의 불안과 우울 비율이 더 높았다.

“커밍아웃을 하여 옷장 밖으로 나올 때, 당신은 마치 나비처럼 변신하길 기대한다. 그런데 게이 커뮤니티의 호된 경험은 당신이 이상주의를 버리게 만든다.” 애덤의 말이다. 그는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 “웨스트 헐리우드에 갔다. 나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정말 무서웠다. 성인 게이들이 만든 곳이고, 어린 게이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어머니 집에서 나와서 게이 클럽에 갔는데,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이게 내 커뮤니티야? 빌어먹을 정글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gay

“나는 17세 때 커밍아웃했다. 게이 씬에서 내가 있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화 속 이성애자들처럼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기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어찌나 심했던지 나는 걸어서 10분 거리 가게 대신 40분 거리에 있는 식품점에 갔다. 게이 거리를 걸어가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폴의 말이다.

폴을 비롯해 모두가 썼던 말은 ‘다시 트라우마를 받았다 re-traumatized’였다. 외로움을 지닌 채 살아가며 마음의 짐을 쌓아왔는데, 이제 드디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겠구나 생각하며 카스트로, 첼시, 보이스타운 같은 곳에 간다. 막상 가보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마음의 짐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갑자기 더 이상 게이라서 거절 당하는 게 아니라, 체중, 소득, 인종 때문에 거절 당하게 된다. “어렸을 때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들이 커서 이제 남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폴의 말이다.

“특히 게이 남성들은 서로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다.” 어드벤처 투어 가이드 존의 말이다. “대중 문화에서 드랙 퀸은 못된 사람으로 나오곤 하는데 그건 그냥 웃어넘길 일로 묘사된다. 하지만 서로에게 못되게 구는 건 거의 병적이다. 우리 모두는 사춘기 상당 부분을 혼란스러운 상태로, 혹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보냈다. 그러나 그걸 남에게 보이는 건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준 걸 남들에게 보인다. 그건 바로 심술궂음이다.”

내가 아는 모든 게이 남성은 다른 게이 남성들이 자신에게 한 못된 말과 행동들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데이트를 하러 갔는데 상대 남성이 나를 보자마자 내가 사진보다 키가 작다고 말하며 바로 바람을 맞힌 적이 있었다. 시애틀의 피트니스 강사 알렉스는 자기 수영 팀의 남성에게 “콘돔 안 끼고 해주면 네 얼굴은 무시해 줄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포틀랜드에 사는 영국인 마틴은 포틀랜드에 간 뒤 4~5kg 정도 체중이 늘었다. 크리스마스에 그라인더로 “너 전에는 참 섹시했는데. 그렇게 망가지다니 참 안 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다른 소수 집단들의 경우는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역 사회에 살면 불안과 우울이 낮아진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정반대 효과가 있다. 게이들이 모인 지역에 살면 위험한 섹스를 하고 메탐페타민을 사용할 확률이 높아지며 자원 봉사나 스포츠 등의 지역 사회 활동을 덜 하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2009년 연구에서는 게이 커뮤니티에 긴밀하게 연계된 게이 남성들이 연애 관계 만족도가 낮다는 결과가 있었다. “게이 및 양성애자 남성들은 게이 커뮤니티가 삶의 중요한 스트레스원이라고 말한다.” 파찬키스의 말이다. 이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집단 내 차별’이 다수 집단 일원에게서 거절당하는 것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이성애자를 무시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기는 쉽다. 어차피 그들의 인정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게이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은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찾을 유일한 방법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를 밀쳐내면 마음이 아프다. 나에겐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 본 연구자들은 게이 남성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서로에게 이런 상처를 준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설명은 내가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인데, 게이 남성들이 서로에게 못되게 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남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성의 시험은 남성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확대된다. 남성성이란 불안정하다. 끊임없이 규정되거나 방어되거나 다시 얻어져야 한다. 이를 보여주는 연구들도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성을 위협하면 어떤 멍청한 짓들을 하는지 보라. 남성들은 공격적으로 행세하고, 금전적 위험을 감수하고, 아무거나 때려 갈기려 한다.”

이것은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적인 남성들에 대한 오명이 퍼져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듀크 대학교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연구자인 데인 휘커에 의하면 대부분의 게이 남성들은 남성적인 사람을 사귀고 싶다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도 보다 남성적으로 행동하길 원한다고 한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남성적인 남성들이 이성애자 사회에 섞여 들어가기 더 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면화된 동성애 혐오일 수도 있다. 아직도 여성적인 게이 남성은 항문 섹스를 할 때 삽입 당하는 쪽인 바텀이라는 편견이 있다.

2년에 걸친 장기 연구에 의하면 게이 남성이 커밍아웃을 한지 오래 되었을수록 두 역할을 다 하거나 탑(삽입하는 쪽)인 확률이 높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보다 남성적으로 보이려고 일부러 노력하고 다른 섹스 역할을 하는 이러한 훈련은 게이 남성들이 ‘성적 자본’을 얻으려고 서로에게 압력을 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건 마치 운동을 하거나 눈썹을 다듬는 것과도 비슷하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유일한 이유는 탑으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마틴의 말이다. 그가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 그는 자기가 너무 마르고 여성적이라 바텀들이 자기를 바텀으로 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짐짓 지나치게 남성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 남자 친구는 얼마 전에 내가 술을 시킬 때면 아직도 목소리를 한 옥타브 낮춘다고 말했다. 커밍아웃한 직후의 몇 년 동안의 행동이 남은 것이다. 그때 나는 크리스천 베일이 배트맨일 때 내는 것 같은 목소리여야 데이트 상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롱 아일랜드에서 자랐고 지금은 헬스 키친에 살고 있는 21세 그랜트는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양손을 엉덩이에 얹고, 한쪽 다리를 살짝 기울인 모습이 마치 로켓 무용단 같았다. 그래서 2학년 때 남성 교사들을 보고 따라하며 일부러 다리를 벌리고 서고 팔은 내렸다.

이런 남성성의 기준은 남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영향을 준다. 여성적인 게이 남성은 자살, 외로움, 정신 질환의 위험이 더 크다. 한편 남성적인 게이 남성들은 불안을 더 많이 겪고, 위험한 섹스, 마약, 담배를 더 자주 한다. 왜 게이 커뮤니티에서 살면 우울증이 커지는가를 조사한 한 연구에서는 남성적인 게이 남성들에게만 그런 영향이 있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게이 커뮤니티가 소속원들에게 독특한 스트레스원이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거부하는 이유가 아니라 방식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통적인 게이들의 공간(바, 나이트클럽, 목욕탕)들이 사라지고 소셜 미디어로 대체되어 왔다. 현재 게이 남성들의 최소 70%는 그라인더와 스크러프 같은 데이팅 앱을 사용해 만난다. 2000년에는 게이 커플들의 20% 정도가 온라인에서 만났다. 2010년에는 그 수치가 70%에 달했다. 한편 친구를 통해 만난 게이 커플의 비율은 30%에서 12%로 떨어졌다.

가장 인기있는 앱인 그라인더의 사용자들은 평균 하루에 90분 정도를 그라인더에 사용한다. 게이의 삶에서 데이팅 앱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충격적일 정도라는 이야기는 호들갑을 떠는 매체 기사에 주로 등장한다. 살인자나 동성애혐오자가 앱을 통해 피해자를 찾는다거나, 런던과 뉴욕에 등장했다는 ‘켐섹스 chemsex’(마약을 사용하고 하는 섹스)들에 대한 기사다. 이것이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앱의 진짜 영향은 더 조용하고 소리소문없이, 그리고 더 깊이 일어난다. 여러 게이 남성들에게 있어, 앱은 다른 게이들과 만나는 제 1의 방법이 되었다.

gay

“혼자 바에 가는 것보다 그라인더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쉽다. 특히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한 경우, 데이팅 앱이 곧 사교 생활이 되기란 너무나 쉽다. 사교적 상황을 찾는 것은 노력도 많이 들어가고 더 어렵다.” 애덤의 말이다.

“누가 나에게 욕망을 품는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그라인더를 켤 때가 있다. 상의를 벗은 사진을 올리면 내가 섹시하다는 메시지들이 온다. 그 순간의 기분은 좋지만, 아무것도 이뤄지지는 않고, 며칠 지나면 메시지도 오지 않는다. 가려운 곳을 긁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사실 이건 옴이다. 온 몸으로 퍼질 것이다.”

그러나 앱이 가장 나쁜 점은 우리가 많이 쓴다는 게 아니다. 이것은 게이 남성과 이성애자 남성의 건강 차이와도 연관이 있다. 이 앱들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갖는 부정적인 믿음들을 분명히 보여주기에 거의 완벽한 형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연구자 엘더가 2015년에 게이 남성들을 상대로 진행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의 90%는 키가 크고 젊고 근육질이며 남성적인 백인 파트너를 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저 조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데이팅 앱은 자신이 못생겼다고 느끼기에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폴은 앱을 열 때마다 ‘거부를 기대하며 짜릿해진다’고 한다. 전직 컨설턴트인 존은 27세고, 키가 183cm고 울 스웨터를 입어도 배의 식스팩이 보인다. 그런데 존조차도 메시지를 보내면 거의 답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앱을 통해 만나서 커피를 마시거나 데이트를 하는 시간에 비해 앱을 쓰는 시간이 10배는 된다고 한다.

유색인종 게이 남성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샌프란시스코 공공 보건국에서 흑인과 라틴계 남성들에게 카운셀링을 하는 빈센트는 앱들이 소수 인종들에게 두 가지 종류의 피드백을 준다고 한다. 거절(“미안, 난 흑인 남성은 안 좋아해.”)과 페티시(“안녕, 나 흑인 남성 진짜 좋아해.”)다. 시애틀에 사는 대만계 이민자인 파이한은 자신의 그라인더 메시지함을 보여주었다. 내 함과 비슷하다. 대부분 그가 대답하지 않은 ‘안녕’들이다. 그가 받은 메시지 중에는 ‘아시아이이이이이인’이란 게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1980년대부터 사회적 고립에 대한 글을 써온 심리학자 월트 오데츠는 게이 남성은 지금 그라인더에서 힘들어 하는 것과 똑같이 게이 사우나에서 힘들어 했다고 말한다. 젊은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차이점은 “만약 누가 게이 사우나에서 당신을 거절한다 해도 그뒤에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그 결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최소한 긍정적인 사교 경험이 될 수 있다. 앱에서는 누군가 당신을 성적 혹은 로맨틱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당신은 그냥 무시 당한다.” 내가 인터뷰했던 게이 남성들은 데이팅 앱에 대해 이성애자들이 컴캐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듯 나쁘지만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 “작은 도시에선 앱을 써야 한다. 게이 바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온갖 편견을 다 드러낸다는 단점이 있다.”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이클 무어의 말이다.

파찬키스는 세계 최고 꼬마 남자 아이 가설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앱들은 이 가설의 성인 버전을 강화 혹은 가속화한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아이로서 자라면서 우리는 바깥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에 우리의 자존감을 집중하게 된다. 운동을 잘한다거나, 학교 성적이 좋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성인이 되면 우리의 커뮤니티가 우리에게 더 큰 압력을 준다. 외모, 남성성, 섹스 솜씨 등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남성적-도미네이트-탑 이상을 손에 넣는다 해도, 우리는 언젠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잃게 될 때 무너지도록 스스로를 조건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타인들의 눈을 통한 삶을 살곤 한다. 우리는 남성을 연달아 갖고 싶어하고, 더 많은 근육과 지위, 잠시라도 우리가 인정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뭐든 갖고 싶어한다. 그러다 40살에 지친 상태로 눈을 뜨고 이게 전부인가?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울증이 찾아온다.” 게이 남성들의 수치와 사회적 인정에 대한 어려움을 담은 책 ‘벨벳 분노 The Velvet Rage’의 저자인 심리학자 앨런 다운스의 말이다.

gay

NYU의 페리 할키티스 교수는 1990년대 초부터 게이와 이성애자들의 건강 차이를 연구해왔다. 그는 게이 문화에 대한 책을 4권 썼으며 HIV로 죽어가는 남성들, 마약에서 회복되어 가는 남성들, 자기 결혼식을 계획하느라 힘들어 하는 남성들을 인터뷰했다.

그래서 그의 18세 조카 제임스는 2년 전에 떨면서 그의 집을 찾아왔다. 제임스는 할키티스와 남편을 소파에 앉혀놓고 자기가 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축하해. 멤버십 카드와 웰컴 패키지가 옆방에 있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너무 긴장해서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다.” 할키티스의 말이다.

제임스는 퀸스에서 자랐다. 그의 대가족은 애정이 넘치고 진보적이다. 그는 커밍아웃한 아이들과 함께 공립학교에 다녔다. “그런데도 감정적 혼란이 있었다. 그는 이성적으로는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정체성을 숨긴다는 건 이성적인 게 아니라 감정적이다.”

여러 해 동안 제임스는 절대 커밍아웃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관심을 받기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기도 싫었다. 그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걸 어떻게 남들에게 설명한단 말인가? “TV에서 전통적인 가족들을 보았다. 동시에 나는 게이 포르노를 잔뜩 보았다. 포르노에서는 다들 엄청나게 근육질이고 싱글이고 언제나 섹스를 했다. 그래서 나는 둘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동화 같은 인생, 로맨스란 없는 게이의 인생.” 제임스의 말이다.

제임스는 커밍아웃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기억한다. 10살, 11살 정도였고, 부모님을 따라 롱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다. “나는 우리 가족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난 결코 이건 못 가질 거야.’라고 생각하곤 울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 나이때 똑같은 느낌을 받고 똑같이 슬퍼했던 게 기억났다. 제임스는 2007년에, 나는 1992년에 겪었던 일이다. 할키티스는 1977년에 겪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조카 나이인 사람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데 놀라서, 다음 책은 옷장의 트라우마에 대해 쓰기로 했다.

“지금도, 뉴욕에서도, 다 받아주는 부모 밑에서도, 커밍아웃이란 힘든 과정이다. 앞으로도 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결혼법이나 증오범죄 금지를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법들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연구 중 하나는 2004년과 2005년에 게이 남성들 사이에서 불안과 우울이 치솟았음을 밝힌 연구다. 이 두 해는 14개 주가 결혼은 남녀 사이의 것이라는 헌법 수정 조항을 통과시킨 해였다. 이 주들의 게이 남성들은 기분 장애가 37%, 알코올 중독이 42%, 범불안장애가 248% 증가했다.

이 수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주들에 사는 게이들의 법적 권리가 실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수정 조항 통과 전에 우리는 미시건에서 결혼할 수 없었고, 통과 뒤에도 결혼할 수 없었다. 이 법은 상징적이었다. 다수가 게이들에게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알리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헌법 수정 조항이 통과된 주에서만 불안과 우울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각 주 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전국의 게이들 사이에서 늘어났다. 우리를 괴롭히려는 계획은 성공했다.

그리고 게이 커뮤니티가 지난 20년간 이뤄온 모든 성취를 공개적으로 뒤엎길 고대하는 오렌지색 마왕이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걸 생각해 보라. 이것이 게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 특히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려 애쓰는 가장 어린 게이들 - 은 이보다 더 명확하고 무서울 수가 없다.

게이 정신 건강에 대한 모든 논의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부터 다루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기관에서도 진보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겐 위험한 곳이다. 장차 남학생 사교 클럽 회원이 될 거친 아이들, 무관심한 교사들, 역행적 정책이 가득하다. 괴롭힘에 반대하는 단체인 GLSEN의 연구 담당자 에밀리 그레이탁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성적 지향 때문에 괴롭힘 당했다는 십대들의 비율은 전혀 내려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LGBTQ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괴롭힘 방지 정책이 있는 교육구는 미국 전체에서 30%에 불과하다. 수천 곳의 교육구는 교사들이 동성애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막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제한 때문에 아이들이 소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하지만 다행히 모든 교사와 모든 십대가 하룻밤만에 게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다. 마켓 대학교의 연구자 니콜라스 헥은 게이 고등학생들을 위한 지원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게이 고등학생들이 동급생들, 교사, 부모와 교류하는 것을 돕고, 십대들이 다들 겪는 스트레스와 섹슈얼리티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를 구분하는 걸 돕는다. 그가 돕는 학생 중 하나는 부모님이 금융이 아닌 예술을 전공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그들의 부모님의 의도는 좋지만(그들은 동성애혐오자를 덜 만날 분야로 진출하라고 하는 것뿐이다) 아이는 이미 불안을 느낀다. 금융을 포기한다면 그건 오명에 항복하는 것일까? 예술계로 가도 괴롭힘을 당한다면,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헥은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터놓고 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소수 스트레스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가 회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복도에서 차별적 발언이 들려서 다른 복도로 가거나 이어폰을 끼거나 한다. 교사에게 도와달라고 했다가 별 도움을 받지 못해, 안전한 성인을 찾는 걸 아예 그만둬 버린다. 하지만 헥은 이 연구의 대상인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할 때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미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주위 환경을 바꿀 수 없다 해도, 자기 탓으로 돌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걸 익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있어 목표는 소수 스트레스를 몰아내고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소수 스트레스를 내면화한 사람들에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퀴어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30, 40대인 사람을 위한 그와 같은 것은 없다.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샐웨이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정신 질환, HIV 예방, 약물 남용에 대해 완전히 별개의 인프라를 만들어 놓은 게 문제라고 한다. 모든 증거를 보면 이 세 가지가 따로 떨어진 유행병이 아니라 하나라고 한다.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약물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러면 위험한 섹스를 할 가능성도 커지며, HIV에 옮을 가능성도 높아지며, 그러면 더욱 거부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

지난 5년 동안 이런 연관성의 증거가 계속 쌓이며, 일부 심리학자와 유행병학자들은 게이 남성들 사이의 소외를 ‘syndemic’, 즉 두 개 이상의 질병이 결합돼 퍼지는 유행병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건강 문제의 한 무리로, 그 자체만으로는 치료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gay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파찬키스는 미국 최초로 ‘게이 긍정’ 인지 행동 무작위대조시험 세라피를 했다.수년 간 감정적 회피를 해온 많은 게이 남성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문자 그대로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의 파트너는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음, 난 팬케이크를 사랑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사귀던 남성이 자기 집에 칫솔을 두고 갔다는 이유로 헤어진다. 혹은 내가 이야기해 본 많은 남성들처럼, 그들은 스스로의 두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처음 보는 남성과 콘돔 없이 섹스한다. 파찬키스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감정적 무심함이 팽배하며, 그가 연구한 많은 남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완벽한 몸을 갖는 것, 동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잘 하는 것, 주중에 이상적인 그라인더 상대를 만나는 것)이 거부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강화한다는 걸 몇 년 동안이나 모르고 지냈다.

이런 패턴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결과가 있었다. 파찬키스의 환자들은 3개월 만에 불안, 우울, 마약 사용, 콘돔 없는 섹스가 줄어들었다. 그는 이제 더 많은 도시, 더 많은 참가자, 더 긴 기간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장래가 촉망되는 해결책들이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다. 나는 이성애자와 게이들의 정신 건강 차이가 완전히 없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제나 이성애자 아이들이 게이 아이들보다는 더 많을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들 사이에서 소외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어느 정도로는 가족과 학교와 마을에서 홀로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주류 사이의 거리가 우리에게 괴로움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의 위트, 회복력, 공감력, 옷 입고 춤추고 가라오케를 더 잘하는 재능의 원천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법과 환경을 위해 싸울 때, 또한 서로를 더 낫게 대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폴이 내게 했던 말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AIDS 전염병이 끝나면 우린 괜찮아질 거라고 늘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AIDS가 사라지자, 우리는 결혼할 수 있게 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결혼도 가능해진 지금은 괴롭힘이 사라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계속 기다린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다르다. 이젠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고 해결할 때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e Epidemic of
Gay Loneliness
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수정 사항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