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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는 한국 미술의 구세주인가 적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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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는 지금 난리다. 삼성가가 미술 사업에서 손을 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지난 6일 홍라희 리움 미술관 전 관장이 “참담한 심정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고 뜻을 밝히며 사퇴를 발표하자 미술계에서는 '홍라영 부관장을 통해 기획전을 이어가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8일 홍라영 부관장 마저 사퇴를 표했다.

이날 우려의 실체는 더욱 선명해졌다. "올해 예정한 기획 전시는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던 리움은 4월 중순 개막할 예정이던 삼성미술관 리움의 '김환기 회고전'과 9월 예고된 '필(筆)과 의(意): 한국 전통 서예의 미(美)'전도 전격 취소했다.

미술계의 공포가 가진 실체

일반 대중은 일개 사립 미술관 관장의 사퇴와 미술 전시회 두 개가 취소된 게 어째서 큰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미술계의 공포를 알기 위해서는 미술계에서 홍라희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홍라희 여사의 리움은 연간 100억 원 대 작품을 구매하는 초대형 컬렉터다. 그러나 홍 전 관장의 영향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따라 사기'라는 미술계의 습성 때문이다. '홍 여사가 산 작가'라는 소문이 돌고 나면 이내 그 작가의 작품값은 하늘을 치고 작품은 동이 난다. 작가들 사이에선 '홍 전 관장의 눈에 들었다는 건 로또에 당첨된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다.

그 영향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방법은 없지만, 화랑가엔 이미 비상이 걸렸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서울 인사동 노 화랑의 노승진 대표는 “리움이 있어서 한국 미술계가 이처럼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더는 사태가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런 공포는 일종의 학습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 미술계는 '홍라희 사퇴'를 경험한 바 있다.

2008년 4월22일 홍라희 당시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들끓는 여론 속에 관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불법 비자금으로 삼성가에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비롯한 수백억 원대의 해외 미술품들을 사들였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빌미가 됐다. -한겨레(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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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행복한 눈물’.

한겨레에 따르면 당시 리움은 신진 작가의 등용문이던 '아트스펙트럼'과 영국 거장 데미안 허스트 전 등의 기획전이 줄줄이 취소하고 2년 2개월 만인 2010년 8월 25일까지 상설전만을 여는 사실상의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바 있다. 미술계에서 '행복한 눈물 사태가 또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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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을 연구해 온 강남대학교 경제학과의 서진수 교수가 2006년부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규모를 측정해온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2007년(약 1천9백억 원)과 2008년(약 1천2백억 원)에 1천억 원대를 넘었던 경매시장의 규모는 2009년 이후 700억 원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미술계의 우려는 착시일 수 있다. 서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홍 전 관장의 사퇴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2008년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우리나라 역시 금융 위기를 겪은 시점이다. 홍 전 관장의 사퇴가 미술 시장을 위축시킨 하나의 요소일 수는 있으나 그 영향이 지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미술 시장의 추세와 가장 밀접하게 연동하는 건 세계와 국내 경제다"라고 답했다.

홍라희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미술계에 우려 섞인 목소리나 공포만 있는 것도 아니다. 홍 전 관장의 헤게모니가 오히려 한국 미술 발전의 위해요소였다는 진술도 있다.

강영민 팝아티스트는 허핑턴포스트에 "지금까지 창피하게도 리움이 자본을 바탕으로 작품을 픽업하면 이에 다른 이들이 따라 사는 습성이 미술계에 일종의 방향성을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미술에 대해 글을 쓰고 미술 작품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아니라 홍라희가 정한대로 흘러갔다"며 "리움이 문을 닫는 것도 아니고, 전문 큐레이터의 역량이 강화되면 더 좋은 기획을 할 수도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이번 사태가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었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만 망할 것이다. 거칠게 말해서 오히려 한국 미술의 다양성 측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인 강성원 씨 역시 "그동안 홍라희 씨의 취향이 아닌 것들은 제도권 미술 안에 흡수되지 않았다"라며 "손을 뗀다면 한국 미술에 엄청나게 큰 희망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 평론가는 "그러나 진짜로 물러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잡은 주도권인데, 절대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재벌이라는 편견과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휘두른 주도권의 칼을 빌미로 삼성과 리움 홍라희의 공을 과와 함께 묻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전 경향아티클 수석기자이자 미술 칼럼니스트인 서정임 씨는 "리움이 미술계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미술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표현하는 건 조금 지나친 해석일 수 있다"며 "홍라희 씨와 리움이 아트스펙트럼 전시회 등을 통해서 작가를 지원하고 세계 미술계와 국내 작가들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서진수 교수 역시 "리움의 역할을 미술 시장에서의 컬렉터로 국한 시켜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리움이 그간 해온 전시와 그 전시가 가진 교육적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서 교수는 또한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개개인의 미감을 결정한다"며 "리움 같은 미술관이 기획해 들여온 유수의 해외 작품을 보는 것이 바로 미감의 교육"이라고 답했다.

지울 수 없는 리움의 의미

삼성가의 홍라희, 리움의 홍라희, 컬렉터로서의 홍라희가 미술계에 휘두른 주도권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리움이 한국 미술, 또는 대중의 미감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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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술관 리움.

우리가 간혹 화랑이나 갤러리와 헷갈리는 '미술관'의 전시 형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검색하면 이런 정보가 나온다. 이 조각품을 프랑스의 리옹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 이런 미술품은 당연히 비싸다. 너무 비싸서 사실 국가 기관이 소장해 대중에게 공개한다. 프랑스의 리옹 미술관도 국립,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도 국립,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도 국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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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간혹 돈 많은 개인 중에 비싼 미술품을 사고 건물을 지어 공간을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하는데, 리움이 그런 경우다. 서진수 교수는 "일본에 모리 미술관이 있고, 미국에 게티 센터가 있듯이 한국에는 리움이 있다"고 말한다.

미술관은 작품을 소장하고 소장 컬렉션을 바탕으로 공개 작품의 조합을 바꿔가며 전시를 연다. 이를 기획전시와 구분 지어 상설 전시라 하는데 리움의 상설 전시는 우리나라 사립 미술관 최대 규모다. 삼성문화재단이 2007년 밝힌 리움의 소장품 규모는 고미술, 현대미술을 통틀어 1만5천여 점. 이 가운데 한국 근현대미술품이 3천여 점, 외국 미술품이 800여 점으로 그즈음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이 소장한 7,460점의 두 배를 넘었다.

삼성이 미술품을 비자금 조성에 활용한다는 의혹이 있긴 했지만, 그것으로 이 정도 규모의 미술품을 수집해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발생하는 교육의 효과를 지울 수는 없다.

현 상황에서 더 중요한 건 기획전의 취소다. 소장품을 공개하는 상설전과는 달리 기획전은 작품을 빌려온다. 미술품을 빌리는 데 돈이 들고 나르는 데 돈이 들고 공간에 맞게 배치하고 꾸미는 데 돈이 든다. 게다가 아주 가끔은 기획전을 여는 조건으로 작가의 작품을 사야 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돈이 든다.

리움은 그간 아니시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등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현대 거장들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기획·수행했다. 이번 홍라희 씨의 사퇴는 삼성이 더는 기획전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한 눈물 사태 때문에 미술 시장이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년 2개월 동안 기획전이 사라졌었다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진수 교수는 "9월로 예정되었다가 홍라희 관장의 사퇴 이후 취소된 서예전은 가치 있는 전시였다. 그러나 인기가 없어 리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시였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벌인 일로 한국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이 절망을 '적폐를 청산하기 좋은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홍 전 관장의 사퇴는 이번 게이트의 끝자락에 있다. 지금까지 논의된 적 없고, 주요 언론에선 말도 꺼내지 않던 문제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이건 미술관과 화랑과 갤러리와 작가 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먹고사는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보고 사는지도 중요하다. 아마 홍라희처럼 많은 돈을 미술에 투자하는 개인 한 사람이 미술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도록 수많은 홍라희가 있어서 희석되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일 것이다. 아마 리움처럼 돈 많은 미술관이 기획전을 취소한다고 해도 발 돌릴 수많은 리움이 있어서 걱정 없는 게 가장 꿈같은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