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었던 이정미 재판관의 6년 전 인터뷰는 꽤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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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오늘 오전 퇴임했습니다. 취임사에서 “소수자와 약자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지 6년 만입니다.

취임 당시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래 두 번째 여성 재판관, 비서울대 출신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퇴임 직전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적인 선고의 주인공이 됩니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서 ‘2016 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 심판을 이끌었던 그는 선고 당일이었던 지난 10일 출근길에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머리에 꽂은 것을 잊은 채 차에서 내렸습니다. 다른 7명의 재판관과 함께 그가 얼마나 이 선고에 공을 들이고 집중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떠난 이 권한대행의 인생을 잘 보여주는 인터뷰가 있습니다. 헌재 재판관 취임 100일을 맞아 2011년 7월 <법률신문>과 한 인터뷰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드러나기도 하고, 여성 법조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노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 권한대행의 퇴임을 맞아 인터뷰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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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이 바꾼 진로

학창시절 수학 선생님을 꿈꿨던 이 권한대행은 1979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사망한 10·26 때문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집 근처에서 과격한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 사회 모습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생각하다가 법대에 진학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권한대행은 1980년 고려대 법과대학에 들어가 8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87년 법관으로 임관했습니다.

여성 법조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

대전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한 이 권한대행은 서른을 넘겨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늘 보따리를 들고 다니고 애들이 자면 이후에 일을 하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띄었다.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여성 법조인에 대한 평가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2010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거친 그는 2011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됐습니다.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었습니다.

판결에 대한 소신

그는 “헌법재판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담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판사로 있을 때보다 언론에 노출이 더 많이 되기 때문”이라는데요, 6년이 지나 돌아보니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소신도 밝혔습니다. 2011년 당시 이동흡 전 재판관을 포함한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연수원 기수가 가장 낮았던 이 권한대행은 “기수가 낮거나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이 권한대행은 퇴임 뒤 특별한 계획 없이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데요, 6년 전 인터뷰에서는 “큰 틀에서 공익적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그 쪽으로 활동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했습니다. 큰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이 권한대행의 앞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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