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선고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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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문을 읽었던 22분 동안, SNS상에서는 ‘그러나’란 접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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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 얼마나 거대한 긴장감을 가져다 주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문화체육관광부 노 국장과 진 과장이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노 국장은 결국 명예퇴직하였으며, 장관이던 유진룡은 면직되었고,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제1차관에게 지시하여 1급 공무원 여섯 명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그 중 세 명의 사직서가 수리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유진룡이 면직된 이유나 김기춘이 여섯 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한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아니합니다.

세계일보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사실과 피청구인이 이러한 보도에 대하여 청와대 문건의 외부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이고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하며 문건 유출을 비난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 분명하지 않고 피청구인이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선고문을 들으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선고문의 한 단락이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선고문’의 이러한 구성에 대해 ‘죽이고 싶은’을 연출하고 ‘조선마술사’의 시나리오를 각색했으며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연출한 조원희 영화감독은 아래와 같은 트윗으로 평가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선고문에는 정말 영화흥행의 법칙이 숨어있는걸까? 조원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이 선고문의 플롯은 할리우드의 영화시나리오와 비슷합니다. 초반 플롯 포인트에서는 주인공이 장애물을 만납니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게 이루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장애물을 만나는 거지요. 이 선고문의 ‘그러나’가 바로 그런 포인트입니다.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그런 플롯포인트를 여러개 쌓으면서 게임의 규칙을 만듭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을 연마하겠죠. 그런 과정이 지나간 후, 바로 클라이막스 직전... 일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런데’플롯 포인트가 등장합니다. 이 선고문에서는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라는 말 앞에 ‘그런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명쾌한 결말이 등장합니다. 결말은 명쾌할 수록 좋습니다.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렇게 나온 거죠. 정말 완벽한 구성의 시나리오입니다. 대부분 흥행한 영화의 시나리오가 가진 구성이지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선고문을 두고 두고 읽어보는 게 좋겠다.

*관련기사
-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을 읽어보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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