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 셀프디펜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링에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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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에서는 'Self-Defense' 코너를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의 강인함을 단련할 수 있도록 '자기방어'를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평소 '힘이 약하고, 근력이라곤 하나도 없던' 허핑턴포스트의 여성 에디터 두 사람이 직접 '자기방어' 훈련에 도전했습니다.

selfdefense

우리가 '자기방어' 훈련에 도전한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비슷했다.

- 김현유 에디터

늦은 시간 집으로 가는 길,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나를 쫓아오고 있다. 쌔한 촉, 뒷덜미에 소름이 끼쳤다. 뒤에서 웬 남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흐리멍덩한 눈빛과 술 냄새. "저, 너무 예쁘셔서 저기서부터 쫓아왔거든요. 술 한 잔만 해요."

남자는 나보다 키가 꽤 작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 남자를 발로 차겠는가 주먹을 날리겠는가 어쩌겠는가? 수많은 '여성 대상 묻지마 범죄' 기사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 남자가 내일 마스크를 쓴 채 기자들 앞에서 "키가 작다고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나 죽였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셀 수도 없이 비슷한 일들이 있었으니까. 내 손목을 붙잡고 같이 한 잔만 하자던 아저씨, 집에 따라 들어오려던 할아버지, 말없이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가려고 하던 남학생, 기타 등등.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일했다.

뿌리치고 냅다 도망가는 것!

키도 웬만한 남자만큼 크고 덩치가 작은 것도 아니지만 어떤 남자라도 여자인 나보다는 물리적인 힘이 셀 테니까, 답은 도망뿐이었다. 지금까지는 도망의 성공률이 100%였다만, 다 사실은 운이 좋았던 덕분이다.

아침 회의 시간에 한 달간 복싱을 배워 볼 여성 에디터분이 있냐는 제안을 들었을 때, 그래서 번쩍 손을 들었다. 언제까지나 무서워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으니까. 뭐든 배워 두면 좀 낫겠지.

annoying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중, 범인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 윤인경 에디터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셀프 디펜스 기획을 진행했고 강인하고 용감한 여성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그들은 심하게 멋있었고 운동할 때도 즐거워 보였다. 기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여성은 몸이 강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이 단단해져야 비로소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지만 나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매번 마음속으로 치부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면 이상한 사람을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콩콩 뛰는 가슴을 안고 콩콩 발걸음은 매번 빨라졌다. 설마 누군가가 나를 육체적으로 공격하지는 않겠지 - 이 근거 없는 자신감과 긍정은 내 유일한 무기였다.

내 몸은 중력의 힘을 빌려 먹고 자고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복싱 제안을 들었을 때 해맑게 손을 번쩍 들었다.

복싱 뭐 많이 어렵겠어? 내 몸 굴려서 하는 건데…

그런 계기로, 손을 번쩍 들어 복싱을 시작하게 된 우리의 기본적인 스펙은 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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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날이 시작됐다.

관장님이 설명해 준 일과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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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웨이트가 무엇이 있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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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서 상체/하체로 나누어 하루에 4동작 정도 하면 된다. 그러나 복근운동은 매일 해야 한다고 했다.

아, 밥은 평소대로 먹어도 됐다. 다만 절반에서 1/3 정도의 양으로.

"7시 이후는 금식하시고요, 술은 절대 안 돼요."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물론 술을 끊을 수가 없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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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유 에디터의 흔한 여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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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경 에디터의 흔한 평일 오후.

어쨌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첫날 일과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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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반이 흘렀다.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그저 웃었다. 서로를 격려하거나 응원하는 그런 미소는 아니었다.

칼 같은 관장님은 첫날부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저 일과표를 그대로 수행했다.

얼굴에 피가 쏠리고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 시야를 가렸다.

“수건으로 닦고 하셔도 돼요.”

하지만 수건을 가지러 갈 에너지조차 아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힘들 건 각오했던 바다. 힘들었지만 웃음은 지을 수 있었으니까.

제일 견딜 수 없는 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다른 것보다도 스스로의 포즈가 너무 어색한데, 그 모습을 거울로 계속 마주해야 했다.

텔레비전에서 가끔 본 복싱 선수들은 강렬한 눈빛과 날카로운 주먹, 재빠른 스텝을 자랑했었다.

거울 속 우리는 관절이 고장 난 캥거루 같았다.

관장님은 거울 속 나를 째려보라는데, 생전 해맑은 미소만 짓고 살아서 누구를 째려본 적이 있어야지...

요가나 필라테스는 아파도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 되는데, 이건 관장님이 보여주는 포즈를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 해도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캥거루였다. 캥거루 포즈를 한 주제에 계속 거울을 노려보고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셀프 디펜스를 했나 스스로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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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엉엉 엉엉엉엉

은 사실 땀을 닦는 사진이다.

체육관 문을 나서자 밝은 햇살이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무척 오랜 시간 어둠 속에 갇혔던 사람들처럼,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볕이 어색했다. 이렇게 밝은 곳이 있던가 싶었다.

몰랐는데,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곳이었다.

둘 다 절뚝거리며 걸었다. 줄곧 발꿈치를 떼고 있던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에 비해 훨씬 욱신거렸다. 불현듯 푸하하 하고 둘 다 웃음이 터졌다. 그랬더니 배가 아팠다. 그냥 온몸이 다 아팠다. 그런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 어이가 없었다.

'진짜 사나이'를 찍는 연예인들의 기분이 이럴까.

우리가 대체 얼마나 저질 체력인 걸까.

인체의 신비란, 기름칠을 조금이라도 쉬면 순식간에 온 몸의 근육이 녹슬어 버리는 모양이다.

거울 속 관절이 고장 난 캥거루들이 계속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멋있고 늠름한 캥거루는 거울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또 허허, 하고 웃었다.

셀프 디펜스는 무슨, 이러다 내가 죽게 생겼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단련하자는 취재였지만, 순간 힘든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 날 밤, 힘도 약하고 근력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우리는 지독한 근육통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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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을 완화한다는 팩을 붙이고 잠들었지만,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