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회 사세요, 편의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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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편의점은 3만3000여곳. 차별화 전략은 살아남으려는 편의점의 몸부림이다. ‘고작’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을 먹으러 가는 편의점이 아닌, “편의점이 이랬어?” 감탄이 나오는 편의점을 둘러봤다.

산 오징어가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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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금슬금 봄이 오다 갑자기 겨울로 돌아간 지난 18일, 강원 평창군의 스키장 휘닉스평창엔 막바지 겨울을 즐기려는 스키어들로 붐볐다. 스키장 한가운데 상점들이 몰려 있는 센터플라자 지하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편의점 씨유. 매장 안 수족관에 산 오징어 수십마리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CU’라는 간판을 보면 분명 편의점인데, 수족관이라니!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회를 떠서 파는 편의점이다. 스키장이 있는 봉평면의 유일한 횟집이기도 하다.

입구에 서서 가만히 지켜봤다.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이게 뭐야?”, “대박!”, “오징어네?!”라고 외쳤다. 한 아이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오징어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오징어회를 파는 ‘신박한’ 생각을 해낸 것은 휘닉스평창의 퇴직 직원이라고 한다. 차로 한 시간 가면 오징어가 많이 나는 강릉 주문진항이 있지만, 스키를 탄 뒤 사람들이 지쳐 이동하기 싫어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게 벌써 15년 전인 2002년 일이다. 스키어·보더들 사이에서 이 편의점은 유명세를 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최근엔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평창 편의점의 클라쓰” 같은 수식어가 달린 글도 제법 올라온다.
이곳은 ‘숍인숍’ 형태로 편의점 안에 횟집이 입점해 있다. 횟집 매출의 일정 부분을 편의점 쪽에 수수료로 떼어준다. 회 가격은 시세에 따라 다르다. 오징어가 많이 잡혔을 땐 오징어만 따로 팔았는데 요샌 어획량이 줄어 광어랑 섞어 주고 있다고. 이곳 대표인 김광도(45)씨는 “인근 주문진에서도 오징어가 안 나온다. 지금 파는 오징어도 서울 노량진에서 받아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오징어와 광어를 섞은 한 접시에 1만7000원. 둘이서 소주 한잔하기에 딱 좋은 양이라고 한다. 초고추장과 고추냉이까지 함께 싸준다. 영락없는 횟집이다.

김씨는 오후 스키가 끝나는 4시 정도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감은 편의점 영업시간에 맞춘 새벽 2시. 여름 휴가철과 겨울 스키철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편의점 관리인인 황성준 휘닉스평창 계장은 “회는 매출 효자 종목이다. 휴가철에는 동해안으로 나가도 비싸기 때문에 여기서 많이들 사 먹는다”고 말했다.

호텔 같은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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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삼성동엔 더는 고급스러울 수 없는 편의점이 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지에스(GS)25 파르나스타워점이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 호텔 로비에 있어 국내 최초로 5성급 호텔에 입점한 편의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4일 찾아가보니 간판이 없으면 편의점인지 모를 정도로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공항 면세점 같았다. 인테리어 마감재를 친환경 인증 제품으로 사용했고, 에너지 절감을 위한 인버터 냉장고와 엘이디(LED) 조명을 적용했다.

점포 안팎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트-인’(Eat-in) 공간이 있는데, 근사한 노천카페 분위기다. 외투나 재킷 등의 옷을 살균·건조할 수 있는 의류관리 기기도 설치돼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직장인들이 옷을 벗어 이용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무인택배함도 있는데 일반 편의점에선 보기 힘든 대형 택배함이었다.
판매 물품도 차별화했다. 매장에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대형마트에서 신선 상품을 판매하는 다단 오픈 쇼케이스다. 이곳엔 신선 과일, 샐러드, 유제품, 디저트 등 신선 먹거리를 진열했다. 한쪽엔 베어브릭, 레고 같은 피규어 판매대도 있다. 웬만한 편의점에서 보기 힘든 ‘조니워커 블루’ 같은 고급 양주도 눈에 띄었다. 편의점 자체가 작은 쇼핑몰인 셈이다. 정구민 지에스리테일 편의점사업부 대리는 “직장인과 호텔 투숙객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판매 상품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카페야, 편의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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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중국대사관에는 편의점인지 카페인지 구분이 안 가는 곳이 있다. 세븐일레븐 중국대사관점이다. 21일 찾아간 편의점. 1층은 ‘그냥 편의점’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가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한쪽엔 커피와 푸딩, 치즈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파는 바가 있다. 이곳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해 42개의 좌석 가운데 하나에 앉아 먹으면 된다. 인테리어도 카페와 다를 바 없었다. 화장실도 있고, 심지어 흡연실까지 있다. 커피는 단돈 1000원.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성비 좋다”고 소문이 나 점심시간엔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11월 이곳을 열었다. 명동을 찾는 중국·일본 관광객과 주변 직장인이 주로 이용한다.

근처 남대문시장 쪽엔 이와 비슷한 콘셉트의 남대문카페점이 있다. 관광객보다는 근처 백화점 등에 다니는 직장여성이 주 고객층이다. 김슬기(29) 남대문카페점 점장은 “손님의 60%가 여성이다. 이에 맞춰서 바나나 같은 과일 비중이 다른 매장보다 높다. 남자들은 햄버거나 삼각김밥을 많이 먹고, 여성들은 과일이나 샐러드를 끼니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카페형 매장은 상품의 매출 순위를 바꾸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세븐일레븐 일반 점포의 담배 매출 비중은 40%에 육박해 부동의 1위지만, 카페형에선 음식 매출 비중이 16.3%로 담배(11.3%)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편의점 변신’의 이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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