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영화 '문라이트'를 보러 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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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를 온라인에서 검색해 보면 놀랄 것이다.

영화 리뷰를 모으는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스에서 ‘문라이트’는 2016년에 가장 호평 받은 세 영화 중 하나로, 98%로 평가되었다. 내셔널 리뷰 등에서 일부 부정적 리뷰를 냈지만, ‘문라이트’에 대한 평단의 엄청난 찬사는 정말이지 압도적이다.

팔리델피아 인콰이어러는 ‘문라이트’를 ‘진정한 미국의 명작이며 최근 10년 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했다. 마이애미 헤럴드는 ‘마이애미 최초의 진짜 명작’이라고 지칭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완벽한 영화’라 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걸작 – 남용되는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고 했다. 토론토 스타는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완전히 신선한 사례’라고 했다. 토론토 선은 ‘너무나 훌륭해서 영화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 줄 수 있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의 A. O. 스콧은 “이게 올해 최고의 영화인가?”라고 물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문라이트’는 이미 1월에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분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음악상, 남우조연상, 여우 조연상, 편집이다. ‘컨택트’와 같은 수이며, 이보다 많은 분야에 후보로 오른 작품은 아카데미 상 맞춤이나 다름없는 LA 배경의 뮤지컬 ‘라라랜드’ 뿐이다.

평론가와 헐리우드는 ‘문라이트’를 사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안 볼까?

‘문라이트’는 11월에 개봉한 뒤 2천만 달러밖에 벌어들이지 못했다. 제작 비용이 5백만 달러 밑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독립 영화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문라이트’는 로튼 토마토스에서 2016년에 가장 높은 평을 받은 영화 7위 안에 든다. ‘주토피아’, ‘라라랜드’, ‘컨택트’, ‘정글 북’이 ‘문라이트’보다 몇 배나 더 높은 수익을 올린 건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케이시 애플렉의 ‘맨체스터 바이 더 시’는 이제까지 4500만 달러를 벌었다. ‘문라이트’의 두 배가 넘는다. 서부 범죄 스릴러인 ‘로스트 인 더스트’는 2700만 달러를 벌었다.

‘문라이트’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박스 오피스 순위 106위다. 심지어 ‘주랜더 2’보다도 본 사람이 더 적었다.

여러 해 동안 이토록 호평을 받은 영화가 많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적었던 것에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이 영화에는 스타가 나오지 않는다. 리뷰의 독자들에게 극장에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리고 보기 전부터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충분히 배포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문라이트’가 가장 많이 개봉했을 때는 극장 1,100곳에 걸렸지만, 11월 말 개봉 후 거의 4~600곳 정도에서 상영되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시’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문라이트’를 보고 싶었지만 못 본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비슷한 조건인데도 박스 오피스 성적은 더 좋은 영화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문라이트’보다 1년 먼저 나온 칙칙하고 평은 좋았던 ‘브루클린’은 개봉 기간은 짧았는데도 미국 내에서만 3800만 달러를 벌었다. 제작비는 1100만 달러였다.

‘문라이트’가 마이애미 극빈 지역에서 태어난 샤이론이라는 흑인 게이 소년의 이야기라는 걸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샤이론의 세상엔 희망이 없다. 작고 수줍음이 많은 샤이론에겐 구조적 지원이란 게 없다시피 하다. 그의 어머니는 크랙 코캐인 중독자이다. 아버지는 없다. 학교에서는 그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아이는 단 하나뿐이다. 집에 오는 길에는 괴롭힘 받거나 무시 당한다. 작고 지저분한 아파트에서 몸을 씻으려면 부엌 싱크대에서 물을 받아다 욕조를 채워야 한다.

마약 중독으로 괴로워하는 그의 어머니는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 샤이론을 아끼는 것 같은 유일한 두 사람은 마약 딜러와 그의 여자 친구이다. 샤이론이 갈 곳이 없어지자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지내게 해준다. 여전히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그는 기차에서 자거나 혼자 해변에 갈 때도 있다.

샤이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백인 미국인들이 알고는 있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세계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샤이론 같은 아이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기란 불편하다. 특히 부유한 백인은 더욱 그렇다. 흑인 게이 소년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뒤처진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그보다도 더 불편하다. 슬프고 힘들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로스 앤젤레스의 언덕에서 즐겁게 뛰노는 걸 보는 게 훨씬 편하다.

고슬링과 스톤이 연기한 세바스챤과 미아처럼 샤이론도 가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샤이론의 상황은 가상이 아니다. 현재 미국 어린이 5명 중 1명은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흑인 어린이의 경우 거의 5명 중 2명 꼴이다. 수치스러운 숫자다. 하지만 더욱 수치스러운 것은 그들을 무시하려는 우리의 태도다.

부모가 두 명 다 있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난 운 좋은 사람들은 배가 고픈 게 어떤지, 두려운 게 어떤지 진정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의지할 사람, 함께 웃을 사람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다. 미국의 문제가 샤이론처럼 어느 한 소년, 소녀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란 늘 불편하다. 동성애혐오, 인종차별, 괴롭힘, 빈곤, 마약 중독, 예산이 부족한 공립 학교의 피해자로 태어난 아이들이 미국엔 존재한다.

이 아이들, 특히 유색인종 게이 어린이들은 잊혀지기 쉽다. 미국 사회와 문화의 변방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라이트’처럼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영화는 지금도 드물고, 백인 미국인들은 자신이 공감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낯설게 느낀다.

그러나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뉴스는 당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수 있지만, ‘문라이트’ 같은 영화는 직접 느끼게 해준다. 로저 에버트는 “영화는 모든 예술 중 가장 강력한 공감 기계다. 위대한 영화를 보러 가면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잠시 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다른 젠더, 인종, 경제적 계급이 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다른 시대에 사는 게, 다른 믿음을 갖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문라이트’는 굉장히 강력한 공감 기계다. 샤이론의 공포, 침묵, 피로, 도움에 대한 조용한 필요는 뉴스를 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 준다. ‘문라이트’는 보편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당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는 영화다. 그리고 돌아온 당신은 달라져 있다. 짧은 순간이나마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강렬한 공감 기계다.

샤이론을 통해 배리 젠킨스 감독과 그가 만든 놀라운 공감 기계는 정치적 개념을 손에 잡히는 것으로 끌어내려 준다. 미국의 기회의 사다리에 대한 논의는 샤이론과 같은 사람이 미국에서 번영은 고사하고 생존을 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막대한 장애물들에 비하면 시시해 보인다. 샤이론은 힘든 세계에 살고 있다.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마약과의 전쟁, 손상된 교육 제도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없는 세계다. 그렇지만, 아무리 작고 드물다 할지라도 세상에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친절함도 있다.

영화에서 라라랜드와 같은 탈출구를 찾고 싶어하는 욕구는 이해할 만하다. 잠시 우리 자신을 잊게 만들어 주는 환상적인 순간을 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 자신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내일의 침묵 속에서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당신은 왜 ‘문라이트’를 보지 않았는가? 어떤 어린이들은 평생 겪는 일을, 2시간 동안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였는가?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없었는가?

허핑턴포스트US의 What Stopped You From Seeing ‘Moonligh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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