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버지가 아들의 유골함을 묻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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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무력한 이 아비 원망하며 끝까지 지켜보라고….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지냅니다.”

세월호 참사 1000일(9일)을 닷새 앞둔 지난 4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열일곱살 꽃 같은 아들 승현(당시 단원고 2학년 8반)이를 잃은 이호진(59)씨를 경기도 안산시 자택에서 만났다. 그 역시 여느 유족처럼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고, 여전히 승현이를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빠끔히 열린 현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냉기가 감돌았다. 이씨는 “우리 집 좀 춥죠? 우리 승현이랑 함께 지내려면 온도도 습도도 잘 유지해야 합니다”라고 먼저 설명했다. 그는 ‘손님 오셨으니 인사라도 해야지…”라는 표정으로 승현이 방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3평(9.9㎡) 남짓한 승현의 방은 온기는 없었지만, 침대와 책상, 승현의 명찰과 학생증이 놓여 있고 커튼이 처진 창문 아래에는 교복도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바싹 말라버린 꽃과 승현이가 한둘 모아 둔 커다란 동전통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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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방 안에는 승현이도 있었다. 책상 옆에 마련된 제단 위에 반듯이 놓인 하얀 유골함이 낯선 이를 지켜봤다. 성모상과 십자가, 묵주에 둘러싸인 승현이는 아무 말 없었지만, 바로 위에 걸린 자신의 생전 사진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 녀석은 사고 보름 만인 2014년 4월30일 새벽 3시43분에 아비한테 올라왔지요. 그때부터 지금껏 제 방을 지키며 식구들과 함께 여기 있어요….”라며 이씨는 말끝을 흐렸다. 침묵과 함께 이씨의 눈두덩은 금세 발갛게 변했다.

열린 아들의 방문을 거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씨는 “주변에서 ‘이제 보내줘라. 언젠가는 잊어야 할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기에 처음엔 저 녀석과 함께 있는 게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인생 중 가장 잘한 결정은 우리 승현이를 이렇게 가까이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입을 뗐다. 그는 “승현이를 이대로 보내고 가슴에 묻고 나면 그날의 진실 역시 묻힐 것 같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억울하고 원통하고, 한이 맺어서 지금껏 보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아이가 살 수 있었기에 저는 세월호를 단 한 번도 ‘사고’라는 말과 함께 써 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한 학살이었습니다”라며 세월호 참사를 정의했다.

이어 이씨는 “학살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3000리가 넘는 길을 걷기도 했고 교황님도 만났지만, 솔직히 아직도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자신의 맏딸이자 승현의 누나 아름(28)씨와 2014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경기 안산 단원고~전남 진도 팽목항~서울 광화문을 오가며 도보순례와 삼보일배 등의 ‘대장정’을 한 바 있다.

최근 다시 현안으로 떠오른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논란과 관련해 이씨는 “침묵하는 자에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게 진실이라는 것 아닙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등진 아이들을 대신해 누군가 꿈틀 거려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가끔 승현이가 꿈속에 왔다 가곤 한다는 이씨. 그는 “지금처럼 승현이와 함께 사는 것이 부질없다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아니기에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절대로 승현이를 보낼 수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살며시 열린 승현이 방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갔다. 승현이와 함께 자고 놀았던 ‘초롱이’이라고 했다. 그 녀석은 이날도 승현이가 숨 쉬던 침대 위에 폴짝 뛰어 올라가 웅크리고 앉았다. 1000일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다. 취재진을 배웅나온 승현이 누나 아름씨는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했던 제 동생 승현이와 그 친구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없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9일로 참사 1000일이 되지만, 여전히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가족들 상처를 후벼 파는 고통도 전혀 치유되지 않았고, 분노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다만, 진실과 함께 세월호만 바닷속 깊이 가라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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