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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개입'이 의심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당시 반대 의견을 냈던 증권사는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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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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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되는 과정에 부당한 외부 입김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당시 합병을 지지했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당혹스러운 입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작년 5월26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가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을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과 합병하기로 결정하고 52일 만인 7월17일 양사 주총에서 합병안을 가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양사 주총에서 합병안이 무난히 통과하긴 했지만 합병 과정에서는 찬반 논쟁이 격렬했다.

삼성그룹 입장을 지지했던 합병 찬성파와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책정된 합병 비율을 문제 삼은 반대파가 강하게 대립했다.

그때 합병 찬성 여론을 조성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던 전문가 집단은 바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작년 합병 추진 과정에서 관련 리포트를 냈던 국내 증권사 22곳 중 21곳이 합병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중복된 사업 부문 통합에 의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거나 삼성물산의 지주사 지위 강화 등이 주된 찬성 논거였다.

상장을 앞두고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최대주주로서의 제일모직 가치에 대한 평가도 찬성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나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문제로 지적한 합병 비율(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에 대해서도 국내 증권사 연구원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ISS나 엘리엇이 한국 건설업의 경쟁력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며 삼성물산 주주에게 다소 불리하게 결정된 합병 비율의 적정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합병에 찬성하는 쪽으로 압도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탓에 유일하게 합병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한화투자증권의 리포트가 '별난 의견'으로 화제의 중심에 설 정도였다.

당시 긍정적인 리포트를 냈던 한 연구원은 "지금도 양사 합병이 옳았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자꾸 정치적인 논란으로 엮이는 분위기여서 곤혹스럽다"고 덧붙였다.

역시 합병을 지지했던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물산 건설사업부가 독자적으로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점을 고려할 때 합병안이 부결됐다면 삼성물산 주가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떨어졌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잘된 합병이라는 견해를 고수했다.

그는 "애널리스트는 기업 펀더멘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라며 "지금도 합병이 삼성물산의 펀더멘털 제고에 도움이 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뒤늦게 합병 결과를 놓고 논란이 재연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합병 비율의 공정성 문제가 부각되는 것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합병 찬성의견을 냈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이 정한 절차대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잘못됐다고 한다면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증권사 보고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증권사들은 거의 다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취지의 부정적인 리포트를 썼음에도 국내 증권사들은 재벌, 특히 삼성 측 눈치를 보다 보니 그렇게 찬성하는 보고서를 썼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원한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에서 돈을 뺀다고 했을 때 버틸 수 있는 국내 증권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알아서 대기업 눈치를 보는 관행이 너무 일상화돼 있다"며 "소신 있는 리포트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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