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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직장 밖에서 알게 모르게 하는 '노동'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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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식당에 ‘물은 셀프’, ‘반찬은 셀프’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주유소도 셀프 주유소가 하나 둘씩 늘어났다.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2011년 처음 등장한 셀프 주유소는 그 숫자가 꾸준히 늘어 2016년 2월 기준 전체 주유소 1만 2022개 중 2186개(18%)를 차지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서 직접 물을 가져다 먹거나, 기름을 넣는 일 등이 우리의 삶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진짜 그럴까? 저자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1981년 처음 발표한 개념인 ‘그림자 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가 없이 우리에게 떠넘겨진 보이지 않는 일의 의미다. 굉장히 억울하고 분한 일이다. 대가도 없이 나의 여유를 그림자 노동에 바쳤다니 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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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부모들은 자녀 학습을 돌보느라 바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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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학생들은 자기가 숙제를 했다.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숙제를 해 주지도 않았고 숙제를 ‘도와주지도’ 않았다. 숙제는 학생과 교사 간의 일이고, 학생의 숙제에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일이 학습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과학전람회 참가 같은 특별한 프로젝트도 직접 해냈다. 교사들은 학생이 스스로 해낸 숙제를 받았지 학생이 쓰기는커녕 이해하지도 못할 정도의 문장들을 조립해 낸 부모와 멘토들의 숙제를 받지 않았다. …. 실제로 숙제나 과학 프로젝트를 대신 해 주는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의 타고난 능력을 믿지 않으며, 부정행위도 괜찮으며,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성공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심어 준다. …. 부모가 점점 더 학교 교육에 관여하는 데는 두 가지 사회 변화가 깔려 있다. 첫 번째는 미국 공교육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어서 부모들이 학교 교육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충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 두 번째 변화는 사회적 규범이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여를 인정하거나 심지어는 권장하는 쪽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저)

위의 글은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이야기다. 아마 우리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입시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엄마의 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등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대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농담이 우리 사회에 유행한지 꽤 지났다. 그만큼 가족들의 노력이 필요해 졌는데 예전에 없던 노동과 시간 투여이니 대가 없이 나에게 떠넘겨진 그림자 노동임에 분명하다.

2. 인터넷 여행 사이트는 여행객에게 일을 떠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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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여행사들의 정보 틈새시장을 약화시키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여행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몇 가지 요인이 여행사 감소 현상에 작용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자 노동을 하는 여행객의 등장이다. …. 인터넷은 익스피디아, 오비츠, 카약닷컴 같은 여행 사이트를 탄생시켰다. 고객들은 이 사이트를 방문하여 여행 목적지와 날짜를 입력한 뒤, 요금을 비교할 수 있었다. …. 인터넷 여행 사이트의 증가는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한 때는 여행사 직원에게 신뢰성을 안겨 주던 독점적인 전문 지식의 대중화이고, 두 번째는 여행객이 처리해야 할 수많은 그림자 노동이다. 인터넷 여행 사이트의 등장은 탈중개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저)

과거 같으면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행 예약이 확실히 복잡해지긴 했다. 여행 사이트 몇 군데를 비교해 보고, 가장 좋은 조건으로 나와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옵션을 설정할 경우 어떻게 가격이 변하는지도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더 소요된다. 몇 시간 더 걸려서 적게는 몇 만원 정도 아끼게 되는데, 진짜 이득을 보는 행동을 한 것인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확실히 인터넷 비즈니스의 발달은 우리에게 그림자 노동을 떠넘기기 쉽게 만들었다.

3. 제조업체들은 사용자 문제 해결을 다른 사용자에게 떠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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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들은 더 나아가 사용자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다른 사용자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애플 온라인 ‘커뮤니티(discussion.apple.com)’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다양한 매킨토시 데스크톱 컴퓨터 같은 애플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아이큔스나 애플 페이 같은 대부분의 애플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을 위한 포럼을 포함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그러한 포럼에 가입하여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 겪은 어려운 문제들을 물어볼 수 있다. 동료 사용자들은 발 벗고 나서서 해답을 찾아주려고 하는데, 물론 돈은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심지어 포럼 의장도 고급 사용자에 불과한 경우가 흔하다. 이 사용자 참가자들은 상당한 양의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퀴큰(Quicken,개인용 재무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등의 업체에도 그림자 노동을 하는 고객들의 전문 지식을 이용하는 비슷한 지원 포럼이 존재하며, 그러한 고객들은 대개 기술적으로 상당히 수준이 높다.”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저)

기업들은 충성도 높은 고객을 좋아한다. 제품 구매를 꾸준히 해 줄 뿐만 아니라, 다른 고객들에 대한 고객 지원 업무까지 담당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질문에 대한 응답 수준도 높다. 학습된 내용을 이야기해 주는 고객 지원팀 직원보다 제품에 대해 해박한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이런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자신들의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좋아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역시 그림자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