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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는 "한국 교회만 걷는 '십일조'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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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평화나무교회 설교봉사 안용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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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에서 ‘십일조 헌금’은 신앙의 척도다. 자신의 수입에서 10%를 떼어 다니는 교회에 헌금하는 십일조는 신자들의 의무다. 교회 주보엔 십일조를 낸 신도들의 이름이 인쇄되고, 일부 교회에서는 십일조 금액까지 공개한다. 형편이 어려워 십일조를 못 내는 신도들은 죄책감에 사로잡히거나, 슬그머니 교회를 포기하기도 한다. 대부분 교회는 신도들의 십일조로 운영된다.
그런 십일조를 비성서적이라서 더 이상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사가 있다. 안용수(64]) 목사는 최근 낸 <십자가에 못박힌 십일조>(책평화 펴냄)를 통해 십일조가 한국 교회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신학대를 졸업하고, 영국 애버딘대학에서 성서석의학(고대문헌해석학)을 전공했다.

지난 10일 안 목사를 서울 강남의 ‘사랑의 교회’에서 만났다. 그는 십일조에 대해 국내 처음으로 명쾌한 해석을 했다고 주장했다.

안 목사를 굳이 사랑의 교회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다. 십일조를 많이 걷어 성장한 대표적인 교회라는 것이다. 강남 금싸라기 땅에 자리잡은 이 교회는 한국 초대형 교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제 목사들은 ‘교회 왕’으로, 신도들은 ‘십일조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목사들은 십일조를 내면 부자가 되고 복을 받는데, 십일조를 안내면 벌 받고 지옥 간다고 대놓고 이야기합니다. 중세시대 교회가 돈을 주고 팔던 면죄부를, 한국에서는 십일조가 생생히 대신하고 있어요.” 안 목사는 대부분 나라에서는 사라진 강제적인 십일조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한국이라고 했다. 그리고 목사들이 신도들에게 십일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몇 가지 논리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십일조 이행을 믿음의 평가기준으로 삼았어요.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는데,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십일조를 낸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구원-십일조의 연결고리를 만든 거죠. 또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재산을 떼어먹는 날도둑으로 규정했어요. 십일조를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기준으로 삼아, 장로·안수집사·권사가 되려면 십일조를 일정 금액 이상 내야 해요. 십일조를 내는 행위는 아름다운 것이라며 명단과 금액을 공개하는 문화를 만들었어요. 가난해 소액을 내거나 아예 내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당 문 밖의 사람으로 취급해요. 물론 십일조 헌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전혀 공개하지 않지요.”

안 목사는 이런 십일조 문화가 그릇된 자본주의, 부패한 경제논리,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를 뒤섞은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십일조에 대해 성서적 의문을 갖고 목사에게 질문하는 이는 모두 ‘교회당의 반동분자’로 몰려 왕따를 당하고, 목사들은 신학교 다닐 때 십일조를 받으라고 배웠다며 징수 책임을 신학교 교수들에게 떠넘기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교인들은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신도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게 됐고, 정작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무관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안 목사는 우선 십일조의 개념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성서에서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는 전쟁을 치른 뒤 예루살렘의 왕 겸 제사장에게 감사의 표시로 십일조를 바쳤다는 대목이 딱 한차례 나온다. 그때 십일조는 전리품이었다. 화폐제도가 있었지만 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십일조도 정확히 수입의 10%가 아닌 상징적인 수준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존경과 복종의 표시로 자율적으로 십일조를 바치곤 했다. 그 이후 신앙고백의 의미로 농·축산물을 십일조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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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목사는 ‘출애굽기’ 등에 십일조의 기록이 나오지 않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홍해를 건너는 절체절명의 위험한 사건을 치르고도 십일조를 바쳤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 십일조가 거론된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의 구절 역시 믿음과 정성이 가득 담긴 농축산물이지 결코 현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제사장들은 십일조로 들어온 재산을 어려운 이들과 나눌 뿐 유산도 없었고, 지금처럼 대형 교회의 건축비 등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목사가 된 것은 “종교인밖에는 길이 없어서”였다. 1970년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형이 월북자 누명을 쓰게 되면서 중학생이었던 그를 비롯해 온 가족이 연좌제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교직에 있던 부친은 해고당해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그 자신도 서울교대를 나와 초등교사로 일하다 80년 해직됐다. 총신대 종교교육학과를 다시 졸업한 그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입학 뒤 여권신원조사제도 폐지 덕분에 뒤늦게 영국 유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끈질긴 진상규명 노력으로 43년만인 2009년 ‘베트남전 국군 포로 1호 안학수’로 형의 납북을 인정받았다.

요즘 세미나룸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안 목사는 작은 공동체 ‘평화나무교회’에서 설교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교회가 대형화하다 보니 가장 손쉬운 십일조에 목사들이 매달릴 수 밖에 없고, 생활비나 자녀 유학비, 교회 건축비 등으로 유용하게 된다”며 “자유로운 종교 생활을 위해서라도 십일조 헌금을 폐지하고 정성을 다해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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