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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이전, 보수적 미술계에게 충격을 줬던 3명의 화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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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아는 만큼 보이는 곳이다.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나고, 모르면 답답할 뿐이다. 화가들을 시대별로 ‘~파’ 혹은 ‘~주의’로 부르곤 한다. 그 중 인상주의(Impressionnisme)가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화운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1874년 봄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드가, 르누아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화가가 관선의 살롱에 대항하여 최초의 단체전을 파리에서 열었고, 한 신문기자가 모네의 출품작 ‘해뜨는 인상’을 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에 앞서서 세상에 저항하며 기존 회화의 문법을 깨뜨린 화가들이 있었다. 바로 쿠르베, 밀레, 마네가 그들이다. 저항하는 방식도 모두 가지가지였다. 흥미진진한 화가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edouard manet

1. 쿠르베

gustave courbet

쿠르베는 다른 화가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사나 영웅 등을 상상해서 그리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자신이 직접 본 풍경을 그리는 것에 몰두했던 이유다. 그러다 보니 기존 보수적인 화단과 충돌이 불가피했다. 심지어 출품을 거절 당하기도 하였고, 다소 민망한 그림을 그려 관람객 낯을 뜨겁게 하기도 하였다.

“’화가의 아틀리에(The Artist’s Studio) 역시 초대형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1855년의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이 이상한 화가가 또 헛짓했군’하는 생각으로 전시를 거절했다. 격분한 쿠르베는 행사장 바로 앞에 ‘사실주의 쿠르베 자작 유화 40점 전람, 입장료 1프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자비를 들여 개인전을 개최했다. …. 그의 개인전은 처음에 감히 만국박람회를 조롱한 화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몇몇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으며 제법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며칠 안 가 ‘볼 것 없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버렸다. 당황한 쿠르베는 급기야 입장료를 반값으로 내리기까지 했지만, 결국 이 반항의 전시회는 가뜩이나 가난한 쿠르베의 주머니를 탈탈 털게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반값이라는 희소식에 가볍게 전시장을 찾은 들라크루아만이 그의 ‘화가의 아틀리에’를 두고 당대의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쿠르베의 대담함은 가끔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길러보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발걸음을 옮기는 점잖은 사람들의 낯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라는 작품이 그러한데, 여성의 성기를 거의 있는 그대로 노출한 이 작품은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딱지가 없어서 코흘리개 아이들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 (책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 산책’, 김영숙 저)

2. 밀레

jeanfrancois millet

밀레의 작품은 미술 문외한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실제로 루브르 미술관은 ‘모나 리자’가 대표한다면, 오르세 미술관은 ‘만종’이 대표할 정도다. ‘만종’에서 느낄 수 있듯이 밀레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려고 애썼던 화가 중 한 명이다. 어려운 삶을 사는 농부들의 삶을 그림에 담아냈지만 밀레는 현실 참여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소재를 쓴 것만으로도 보수적 미술계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밀레는 마을의 농부들과 크게 교감하며 살지도 않았고, 그가 그린 수많은 농부화 중에서 그 자신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정도로 친밀한 농부는 하나도 없었다. …. 쿠르베에 비해서 그는 사회 참여적인 운동을 한 적도 없었다. 따라서 밀레를 마치 가난한 농부의 힘겨운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또 함께 체험한, 혹은 그들의 남루한 삶을 있는 그대로 고발함으로써 사회 변혁을 꿈꾼 신념에 불타는 화가로 분류하는 것은 다분히 과장일 수 있다. ….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든, 밀레는 쿠르베가 그랬던 것처럼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당당하게 화면의 주인공으로 부각했다. 미화를 했건 아니건, 그저 농부들의 일상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밀레는 당시 보수적 화단이나 기성 정치인들에게 불온하고 어딘지 전복적인 사고를 가진 위인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책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 산책’, 김영숙 저)

3. 마네

edouard manet

마네는 1863년 살롱전에 출품 후 떨어진 작품을 통해서 유명해졌다. 상당히 도발적인 소재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미술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로부터도 분노 어린 평가를 받았다. 출품을 했다가 떨어진 작품이 어떤 계기로 사람들 앞에 전시되게 되었을까?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살롱 데 레퓌제(Salon des Reluses), 즉 ‘낙선자 미술 전시회’는 1863년 살롱전에 무려 5천여 점 이상의 작품이 출품되었지만, 3천여 점이 낙선된 것을 계기로 개최되었다. 살롱전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은 하늘을 찌를 듯한데, 고루한 심사 기준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낙선시킨 것에 분개한 이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주최 측이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들어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 …. 그런데 사람들 심리는 멀쩡하게 살롱전에 입선한 작품들보다는 떨어진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 그런 낙선전에서 제일 히트한 작품이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다. 한가하게 소풍을 즐기는 점잖은 옷차림의 남자들 틈에 한 여자가 홀로 벗고 앉아 있다. 게다가 누드인 주제에 감히 관람객을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서양화에서 누드가 하루 이틀 제작된 것도 아니고 또 한두 번 보아온 것도 아니지만, 이 작품을 두고는 다들 발끈했다. 보통 마네 이전의 누드는 시선부터가 순종적이다. …. 하지만 풀밭 위의 여자는 그런 이상적인 몸매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마도 파리 시민들이 이 작품을 보고 분개한 이유는 여자를 벗겨놓고 저러고 놀고 있는, 벌건 대낮에 술판을 벌여놓고 무슨 옷 벗기기 내기라도 했을 법한 장면을 보는 것이 무척 불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 산책’, 김영숙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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