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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고려대 교수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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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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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이며 이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한겨레21>은 최 교수를 만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정치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물었다. ‘세계적 쇼크’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대해서도 분석을 부탁했다.

안수찬 편집장과의 대면 인터뷰는 11월10일 오후 2시간여 동안 진행됐고, 이후 송채경화 기자가 전화통화와 전자우편으로 여러 차례 보강했다. 장문의 인터뷰를 3개 기사로 나눠 온라인에 먼저 싣는다. 더 자세한 인터뷰는 다음주에 발행될 1138호에 게재한다.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 위에서 통치해왔다면 법률적 (유죄) 판단이 이뤄지기 전에도 퇴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퇴진할 수 있다. 이제 국회가 통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 청와대가 지금 마비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가는 작동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이걸 대체할 수 있는 제도나 기구는 국회다.

이론적으로도 그렇다. 대통령도 국민이 선출하고 국회를 구성하는 대표인 국회의원도 국민이 선출한다. 둘 다 국민의 대표기구다. 기능이 다를 뿐이다. 하나는 행정과 집행부의 최고수반이고 국회는 법을 만드는 입법부다. 미국 헌법에서도 연방국가를 만들 때 헌법 논쟁에서 많이 논의됐던 문제다. 둘 다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고 할 때 힘이 충돌하면 누가 대표하나, 이런 논쟁도 있다. 그럴 때 국회는 엄연히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그래서 집행부가 마비됐을 때는 국회가 이를 충분히 대행할 수 있다. 때문에 국회가 중심이 돼서, 국회의 중심적 행위자는 정당이기 때문에, 각 정당들이 협의 또는 합의해서 내각을 구성하고 집행부를 구성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국회가 할 일은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다.

탄핵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대통령이 퇴진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헌법에 있는 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을 거부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국회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단 청문회를 해야 한다. 청문회와 더불어 국회가 독자적으로 조사 기구를 만들든지 특검법을 활용하든지 해서 독자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청문회는 매우 좋은 제도다. 지금까지 헌정사를 보면, 덜 중요한 사소한 것도 전부 국회 청문회 대상이 됐다. 이번 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관련 당사자를 국회가 소환해서 청문회를 해야 하는데 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청문회를 병행해야 한다고 보나?

물론이다. 시민들, 정치인, 정당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좋다. 청문회 과정을 통해 소통하고 대안도 발견하고 문제의 소지가 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 판단의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국회가 정당간 합의를 통해 조사기구를 구성해서 독자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검찰은 대통령의 권력 기구였고, 그동안의 행태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충분히 얻기 어렵다. 검찰이 대통령의 위법·범법 행위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국회의 청문회는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국회가 독자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 결과와 국회의 조사 결과가 나타나면 이걸 기초로 해서 탄핵의 절차에 들어갈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 가운데는 대통령 스스로 퇴진 입장을 밝히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대통령 퇴진보다도 대통령 탄핵이 더 중요하다. 왜 탄핵이 중요한가. 탄핵은 헌법에 있는 절차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법을 제대로 시행하는 경험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 온정주의적인 한국 문화에서 적당히 정치적으로 넘어가면, 조사가 제대로 안 될 거다. 어떻게 결과가 나와도 좋으니 국회와 정당들이 정식으로 헌법에 있는 탄핵 절차를 제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탄핵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스스로 퇴진하면 하는 거고, 탄핵소추를 했음에도 (헌법재판소에 의해) 법적으로 안 된다고 하면 안 할 수도 있고…. 어찌됐건 법적으로 절차를 밟는 과정을 경험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진전이 되겠느냐. 그런 측면에서 국회가 탄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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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보수적이어서 실제 탄핵 소추의 실효가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헌재가 (대통령의) 명백한 범법 행위, 위헌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린다면, 헌법재판소의 도덕성과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지 않겠는가. 이런 문제들은 다음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대선 이슈가 돼야 하고 다음 정부까지 그 문제는 지속돼야 한다고 본다. 아마 헌법 개정 논의가 있다면, 그때 헌재의 역할은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헌법 개정을 해서라도 그럴 경우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개선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 개헌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이 사태와 맞물린 개헌에는 반대한다. 헌법 개정은 다음 정부에도 가능하고 필요하면 할 수 있다. 다만 1987년 헌법이 잘못된 게 재판부의 구성을 정한 부분이다. 헌재, 선관위, 대법원장의 임명 절차를 보면, 대통령이 임기 내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법부의 인사에 대해 대통령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것은 집행부 권력으로의 권력집중을 초래하는 중요한 제도적 결함의 하나였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안 되는 거다.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 얘기도 나온다. 거국 내각으로는 정부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나 탄핵 절차가 종결되는 것과 더불어서 조기 대선이 가능하다. 탄핵이 돼서 대통령이 궐위가 되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타임스케줄을 국회가 주관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와 광장의 힘은 어떻게 보나.

거리와 광장의 에너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보다 더 민의의 소재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에 있겠는가?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 알 수 있고, 심층적으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데 그것은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리·광장의 힘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어도 해결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정당과 국회에서 해야 한다.

광장에서의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일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라고 만든 게 정당이고 국회다. 지금 국회와 정당, 정당 정치인들의 문제는 광장에서의 시민들의 대응과 분노의 정도에 의존해서 따라가는데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미 충분히 의사 표현을 했다. 정당 정치인들은 이것을 기초로 논의해서 대안을 만들 수 있다. 그걸 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현재 단계에서 문제는 정당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등 야당 지도자들이 비판을 받는 것 같다.

동감이다. 야당이 이 문제를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헌정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여기에 정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더구나 대선이 가까이 온 시기여서 대선 후보라고 하는 주요 정치인들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주요 정치인과 정당들이 이 문제에 대해 비전이 있어야 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에 대한 의견을 별로 볼 수가 없다.

지금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작금의 문제에 대해 자기의 대안을 얘기하면서 이걸 공론에 부칠 수 있어야 한다. 대선 경쟁의 차원에서라도 이것을 자신의 선거 공약이나 미래 정부의 구성, 정책 내용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은 과거의 대선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모든 시스템과 국가운영의 원리인 박정희 패러다임이 붕괴된 이후 시기, 박근혜 이후 시기에 어떤 정치질서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비전을 갖지 않고서 대선에서 주요 경쟁자가 될 수 있겠나.

정치 지도자들이 그런 일에 나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계기가 없다고 한다면, 뭐랄까, 낭만적으로 끝나고 만다. 광장의 목소리는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 시민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정당과 정치인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허망하다. 그렇게 된다면, 의도하지 않은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사태가 나타나기 전에,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정당과 주요 정치인들이 여기에 대해 이성적·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역사적 소임을 다한 이후의 문제를 고민하라는 말이다. 다시 박정희 패러다임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이를 반복한다면 정치인과 정당은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정당, 정치인을 가지고 우리가 무슨 이슈로 대선을 치르겠나. 대선에서 설사 정권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그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지금은 87년 민주화 때보다 더 좋은 계기다.

지금이 왜 1987년보다 더 좋은 계기인가.

1987년 민주화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고 권위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거리로 뛰어나왔다. 그때 내걸었던 구호가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이었다. 그것이 민주화가 얻은 최대의 효과이고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결과가 지금 박근혜 정부로 나타났다.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정권교체도 하고 개혁정부의 실패를 지켜봤고 정당체제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도 경험하면서 이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그러니 지금이 87년 민주화 때보다 훨씬 좋은 기회라고 본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정부 형태로의 전환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과거의 사이클을 다시 반복하게 된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실망, 좌절, 무관심 또는 분노다. ‘정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냉소주의와 실망이 뒤따라온다. 이런 것도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박정희 패러다임’이 다시 다른 형태로 부활할 것이다.

여러 저술에서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정치적 가능성의 시공간이라 여기는 것 같다. 지금과 비견될 공간이 과거에 있었을까.

1987년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낫다고 본다. 당시에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무엇이지 몰랐고,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운동을 강하게 하면 개혁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민주화의 열기가 투표로 나타나서 대통령이 개혁의 조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주화할 때 많은 사람들은 권위주의가 물러나고 운동을 강하게 하고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면 좋은 민주주의가 된다고 믿었다. 이 전제는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실천하는데, 절반밖에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사전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보면서 터득하게 된다. .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도 민주주의지만, 정권교체를 통한 새로운 정부가 내용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시민 투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정부를 운영하는 방식도 민주주의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어떤 정부를 구성해서 잘 운영할 것인지, 어떤 정책을 만들어서 사회가 변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은 정당이든, 개인 정치인이든 정치 능력, 실력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선출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실은 ‘데모크라시’라는 말 자체가 번역이 잘못됐다. 데모크라시는 데모+크라시, 즉 민중에 의한 정부다. 여기서 크라시는 통치 체제, 즉 정부를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일본사람들이 ‘민주주의’로 번역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정부 형태는 없어지고 이념이나 가치체제로 이해되는 방향으로 수용된 측면도 정부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했던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민주화 투쟁에서도 입증되고,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에 관한한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힘이다. 그러나 이 힘을 사용해서 좋은 정부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민주화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있었다. 두 번을 통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경험을 했다. 이제 세 번째 기회를 맞이해서 똑같이 반복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정부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를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촛불의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도록 만들 중요한 행위자로 정당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은 아직 유능한 정당을 목격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는 정당이 먼저 있고 리더가 여기서 나온다. 우리는 정당을 조직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분화·다원화 되지 못했다.

권위주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민정당과 민주당 등 보수적 정당들이 제도화됐고, 이들이 민주화 이후에 전면에 나섰다. 기존의 정당 체제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운동의 힘으로 기존의 정당 체제를 해체해서 새로운 정당 체제를 만들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정당을 조직하는데 운동은 한계가 있다. 운동만으로는 지속이 어렵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어렵다. 문제제기나 투쟁에는 적합한데 지속적으로 활동하기에 좋지 않은 것이 운동의 조직 형태다. 따라서 정당으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다.

물론 최근의 서구를 보면, 전통적인 정당의 역할이 약화되는 추세에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현상을 통해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서구사회에서는 정당이 약화되고, 다른 형태의 운동, 결사체, 매체들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런 정당조차도 조건이 취약하고 자원이 부족하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상태에서 정당의 지지 기반을 조직할 수 있는 환경도 안 된다. 이데올로기적 폭이 좁아 정당 조직이 강화될 수 있는 조건이 안 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의 헌정 공백은 한국 민주주의 제도에 있어 상당히 전환적인 시점이다. 세계적으로 보자면, 정당이 일관된 정책 프로그램을 가지고 내용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도 정당 없이는 안 된다. 그래서 정당을 강조하긴 하는데, 한국에선 정당의 조건이 너무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정당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다. 좋은 정당이 없어도 민주주의가 굴러갈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의 이익이 대변되기 어렵다. 그래서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정당보다는 정치 리더 한 사람을 바라보고 정치적 지지를 보내왔다. 이 시기 정치적 리더라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행동해야 할까. 

한국 정치에서 리더의 역할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바뀐다. 지금과 같은 대중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카리스마적 리더는 구시대적인 것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제는 개인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정치를 주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역할을 집단이 한다. 20세기 후반의 정치 체제의 특징은 개인의 역할이 줄어들고 조직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당이다. 정당이 중심 행위자가 됐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라는 개념은 독일의 나치체제 패퇴와 더불어 유럽에선 안 쓰는 말이다. 그래서 그 용어는 안 쓰는 게 좋긴 하지만, 여전히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이럴 때는 지도자의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비루투(virtu·용기·담대함·능력)를 갖는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비루투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우리 사회에 너무 희귀하다.

이번 위기에도 리더들은 광장 시민들의 동향에만 집중하고 있다. 자신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지도자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빈궁하다. 이런 힘을 조직해내고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지도자가 없다. 정당이 먼저 있고 그 속에서 지도자가 나오는 게 보통의 유형이지만 우리 현실이 이러니 그런 좋은 지도자를 바라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미치광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기 신념이 굉장히 확실해서 그것이 틀리든 맞든 제쳐두고 언론이 뭐라든 온 세계가 뭐라든 내 할 건 내가 한다고 해서 된 거다. 굉장히 희귀한 비루투를 가진 정치인의 승리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자질을 갖는 지도자가 없고 남의 눈치만 보고 여론만 본다. 언론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보도하는지에만 자꾸 신경 쓴다. 정치인들이 전부 그런 일만 하고 있다. 언론에 의해 인도되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려면 언론이 정치하지 뭐하러 정당이 있나.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고 지금은 그런 정치인이 기대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그런 지도자의 등장을 위해서라도 정당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당 체제의 재편성의 계기이기도 하다. 재편성 돼야 한다. 정치적 잣대, 즉 정치적 패러미터가 바뀌면 그걸 토대로 해서 정치권력, 정당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 이미 나타나고 있지 않나. 새누리당 안에도 친박과 비박이 있고. 제3지대도 있고, 국민의당도 있다. 이미 정당 체제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당 구분 아닌 형태로 훨씬 분화된 형태를 갖고 있다. 민주당도 안 바뀐다는 보장이 있겠나?

정당 재편성의 방향은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  

이번 사건으로 충격이 가해지면서 우선 여당이 바뀔 수밖에 없다. 박정희 신화, 박정희 헤게모니는 이미 무너졌다. 자신들 스스로가 살기 위해서라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정당이 돼야 한다.

민주당은 다음 정권이 우리에게 넘어오는 아주 좋은 조건이 됐구나 하며 좋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작금의 문제를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것이다. 민주당도 안이하게 사태에 대응한다면 희망이 없다. 설사 집권한다고 해도 무엇을 그 정부에 기대할 수 있겠나.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임기 후반때마다 레임덕, 비선실세, 친인척 부패 등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필연적이다. 국가 권력이 비대한데 그런 것들이 안 생기면 이상한 거다. 현재의 정부구조 아래에서는 이것이 반복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국민의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까지 국민의당이 표출한 특성으로 보면, 온건한 보수의 느낌이다. 새누리당이 좀 더 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한다면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연대를 못하리란 보장이 없다. 정당체제의 지형의 변화가 흥미롭게 나타났으면 좋겠다. 정당들이 새로운 조합이나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정당 재편 과정에서 진보 정당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지금 한국 진보정당의 미래는 어둡다. 진보 정당은 민주당과 비슷한 정당으로 병존하는 느낌을 준다. 진보 정당의 공간이 생기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고 본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중도와 좌의 공간이 열려있지 못한 정당체제다. 이런 구조가 변해야 한다.

보수 세력이 관치주의가 시장에 관여 하지 않는 자율적 시장을 주장한다면 이것이 개혁적 보수, 자유주의적 보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보수 공간이 열릴 때 병행해야 할 것은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배제됐던 노동자들이 민주정치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노사 관계가 그냥 껍데기로만 허용됐을 뿐 내용적으로 허용이 안 됐다.

따라서 박정희 패러다임 해체의 중심적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기업군들이 국가 권력의 울타리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시장경제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민주적 틀 안으로 들어와 노사관계가 민주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박정희 패러다임 해체의 두 조건이라고 본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노동자 정당이 안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노동운동도 어떻게 기업과 협력해서 기업 이익을 증대하는데 기여할수 있느냐하는 태도 변화나 가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온건한 개혁세력인 민주당의 더 왼쪽에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뭔가가 만들어 질 수 있는 공간 생기지 않을까.

샌더스처럼 노동자를 포함한 계급 문제를 대변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과 독일 사민당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정당이 출범하는 시나리오. 두 가지 경로 가운데 어떤 게 더 바람직한가. 더 현실적 모델은 무엇인가. 기존 정당 중심의 정당 재편 이후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

노동자 정당이 별도로 진보 정당의 형태로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다. 그것은 전개되는 상황 속의 변수이지 미리 기획되기가 어렵다. 노동자들이 꼭 정당이 아니라도 정당과 연대할 수 있는, 표의 결집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된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노동운동이 다른 여러 정당들과도 연대가 가능하다. 그런 방법이 열려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과연 노동자 정당이 독자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것은 노동운동, 진보 정치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역량과 정치 기술의 결과일 것이다.

한국은 워낙 지역주의가 강고하고 박정희 패러다임에 지배당하는 유권자가 여전히 상당하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새누리당이 다시 콘크리트 지지층을 규합할 것이라는 예측을 해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온존할 수 있을까.

그대로 온존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이 사태가 어떻게 귀결되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한다든가 스스로 퇴진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권력 퇴진이 의미 있게 해석될 수 있고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가 중요하다고 보는 건 그것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효과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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