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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 문화를 이끈 기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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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표현은 김영삼 정부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지금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의 모습과 방향을 정확히 담고 있기도 하다. 비단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거의 전세계 국가들이 세계화의 흐름에 올라탔다. 이런 현상에 대해 극과 극의 견해로 엇갈린다. 세계화 찬성론자는 세계무역이 활발하게 된 1970년 이후 여러 나라들의 평균 소득이 증가했음을 내세운다. 세계화 반대론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집단의 환경을 개선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주장을 편다. 세계화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올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흐름에 대해 평가함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화를 이끈 기술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그 기술들에 대해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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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팩시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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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캐스트에는 팩시밀리의 시초가 전화보다 무려 30년이나 빠른 1843년에 발명된 영국의 전기학자 알렉산더 베인(Alexander Bain)의 화학식 전신기다라고 설명이 나와있다. 생각보다 꽤나 빠른 시기에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1960년대였다. 팩시밀리는 지구촌을 촘촘하게 연결해주는 세계화에 큰 공헌을 했다.

“1960년대 마그나복스(Magnavox)와 제록스(Xerox)는 일반용 아날로그 팩시밀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팩시밀리는 전송 속도가 느린 만큼 통신료가 많이 청구되어 판매가 아주 저조했다. 게다가 통일된 기준이 없어 대부분의 팩시밀리 기기들은 자사 기기끼리만 작동했다. …. 1968년 규제 변화(카터폰 Carterphone 결정)로 이런 제한이 완화됐고 1978년에는 팩시밀리가, 이후 컴퓨터 모뎀까지 전화 시스템에 직접 연결될 수 있었다. ….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 표준의 탄생으로 팩시밀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 1980년대 팩시밀리는 가격 리스트나 제품 정보 전송 등 주로 기업 활동에 쓰였으나, 유럽의 중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문화적 용도로 팩시밀리를 사용할 수 있는 재미있는 가능성을 포착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일부 기자와 정부관료의 네트워크는 팩시밀리 기술을 창의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기술사용을 명확히 이론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팩시밀리! 프로그램(Fax! Programmes)’에 가입한 중학교 학생들은 유럽 전역의 학생들과 함께 팩시밀리를 사용해 하루 만에 기사를 조합한 후 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 인터넷 포화상태인 현시대의 관점으로는 국제학생신문을 출간한다는 아이디어가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 생각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팩시밀리!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점은 기업 활동에 쓰였던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문화적 유형을 탄생시켰던 학생들의 능력이다.” (책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토머스 J. 미사 저)

2.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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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면이 있지만, 기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맥도날드다. 맥도날드는 세계화의 상징이다. 세계 어디서든 배고픈 여행객이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을 때 맘 편히 들어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맥도날드일 정도다. 심지어 맥도날드가 세워진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희망 섞인 가설까지 있다.

“맥도날드의 첫 해외사업은 1970년 네덜란드에서 시범 벤처사업으로 시작됐다. 5년이 지나지 않아 맥도날드는 일본, 호주,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영국, 홍콩으로 뻗어 나갔다. ….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1971년 일본에서 최초의 맥도날드 영업이 시작되었다. 푸시킨 스퀘어와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극적인 상황은 없었으나 일본의 복잡한 정치와 역동적인 문화 내에서 맥도날드의 존재감도 점점 커갔다. …. 맥도날드는 분명 아시아인들의 식습관을 변화시켰다. 맥도날드는 1971년 도쿄, 1975년 홍콩, 1984년 타이페이, 1988년 서울, 1992년 베이징에 상륙했다. 본래 소고기를 즐겨 먹던 한국을 제외하고는 맥도날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햄버거는 문자 그대로 미지의 음식이었다. 대만에서 젊은 사람들은 순전히 맥도날드 때문에 감자튀김을 열광적으로 섭취했다. 일본에서는 ‘서서 먹기’가 금기시되었으나 맥도날드 개장 이후 사라졌다.” (책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토머스 J. 미사 저)

3. 인터넷(월드와이드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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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세계화를 이끈 일등공신은 인터넷이다. 전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국경의 개념도 상당 부분 무너졌다. 현지에 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과거처럼 이민을 간 친구, 유학을 떠난 친척과 연락이 끊기는 일도 쉽지 않아졌다. 또한 해외 친구들을 펜팔로 어렵게 사귈 필요도 없어졌다. 모두 인터넷 덕분이다. 웹의 아버지인 팀 버너스 리는 어떤 생각으로 처음에 웹을 구상하게 되었을까?

“웹의 글로벌 성격은 창시자 팀 버너스 리(Tim Burners-Lee)의 비전과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 시작부터 버너스 리는 웹에 글로벌한 요소들을 포함했다. 이 요소들은 설계의 아주 깊은 단계부터 반영되었다. 그는 최근 웹 설계에 관한 에세이에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플랫폼, 네트워크 인프라, 언어, 문화, 지리학적 위치, 물리적 정신적 장애와 상관없이 전 세계 어디서나 접근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웹 설계의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 버너스 리는 ‘웹의 기본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창조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웹에 대해 좀 더 야심 찬 꿈을 꾸고 있었다. 사람 간 지식 공유라는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한 후 두 번째 목표는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 공유였다.” (책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토머스 J. 미사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