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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나라를 바꾸는 데 동참했던 사례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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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엄중하다'는 말이 와 닿는 요즘이다. 11월 5일 서울에선 현 시국을 걱정하는 시민 20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있었고, 12일에는 무려 100만 명이 모였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10대 청소년들의 참여였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에게 좋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11월 5일엔 엄마부대 대표가 시위에 참여한 청소년의 뺨을 때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 '너희가 뭘 안다고'라는 마음으로, '선동 당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나 보다. 그렇지만 '청소년'과 '정치'의 조합이 그리 어색한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 속에서 청소년들이 정치의 선두에 서서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했던 사례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 모습을 그린 몇 가지 사례를 모아보았다. 우리 중 누구도, 아무리 어린 청소년이라고 해도, 낯 모르는 이에게 뺨을 맞아야 할 정도로 비정치적인 존재는 없다. 그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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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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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내 나이 열일곱이었다...상놈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에게 동학에 입도만 하면 차별대우를 없앤다는 말이나, 이조의 운수가 다하여 장래 새 나라를 세운다는 말에는 더욱 지난해 과거시험장에서 겪었던 슬픈 기억이 떠올랐다...내가 상놈인 만큼 상놈들이 동학에 많이 들어왔다...이때 황해도와 평안도의 동학당 가운데 어린 접주로서 가장 많은 수의 연비를 가졌다고 하여 '아기접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책 '(올바르게 풀어 쓴)백범일지', 김구 저)

청소년은 시대에 따라 단순한 '참여자'가 아닌 정치 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로 나서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백범 김구다. 비리투성이인 과거 시험에 낙방하며 최초로 사회의식을 가진 백범 은 '양반 상놈 차별 없는 세상'을 설파하는 동학에 매료되었고, 열 여덟 살 때 이미 수백의 무리를 거느린 '아기 접주'가 되었다. 이들과 함께 수 차례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청소년의 정치 운동이 자질이 아닌 기회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한 일화다.

2.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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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회는 광주지역 중등학교에서 최초로 조직된 학생 비밀결사로서 이후 사회과학 연구모임에 기반을 제공한 조직이었다...성진회 출신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고보와 농교에는 사회주의 연구를 위한 독서 모임이 계속되었다...독서회 중앙부는 종전에 계획된 바 있던 소비조합의 결성도 추진했다. 소비조합을 통해 동지를 규합하고, 독서회 운영자금을 조달할 목적이었다...1929년 말까지 광주지역 전 중등학교에 비밀 독서회가 결성되었던 경험은 유사시 강한 조직력을 발휘하는 근간이 되었다..." (책 ‘1929년 광주학생운동', 김성민 저)

우리에게 '학생의 날'로 알려진 11월 3일은 광주에서 중, 고등학생들에 의해 항일 운동이 벌어진 날이다. 통학 열차에서 붙은 시비가 급속도로 확대된 '우발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기 쉽지만, 이는 계기였을 뿐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사건 전부터 광주의 각 학교에는 '성진회'라는 이름의 사회과학 연구회가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있었고, 발각되어 강제로 해산 당한 뒤에도 핵심 멤버들이 비밀 독서회를 만들며 항일독립운동의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었다. 이처럼 10대 청소년들이 광주에서 만들어낸 치밀한 '정치조직'은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 학생들의 분노를 하나로 수렴하는 '지도부'의 역할을 담당했고, 11월 12일 2차 투쟁을 성공시켜 단발성으로 끝날 수 있었던 시위를 전국으로 확대시킨다. 당시 10대 청소년들은 가장 앞선 정치조직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집단이었다.

3. 유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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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학교 2학년 이건영 민청학련사건 가담/교장은 물론이거니와/담임도 물론이거니와//중앙정보부 지하실 수사관도 물론이거니와/세상의 어른들까지도/요놈 보게 네가 무얼 안다고/네가 무얼 안다고/거기 빨갱이소굴에 함부로 뛰어들어/신세 망치느냐고//호통치거나/개탄해 마지않았다 요놈 보게//이런 어린 싹이 곧 민주주의의 싹이었다면/사람들아/함부로 민주주의를 말하지 말라/거기에는/네가 무얼 안다고/네가 무얼 안다고/그 청소년의 용기와 풋풋한 고행도 있어야 했던 것을" (책 '만인보11:이건영', 고은 저)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 헌법 이후 만들어낸 대규모 용공 조작 사건이다. 대학생과 재야 인사들이 벌이던 반유신활동을 제어할 필요를 느꼈던 당시 정권은 '민청학련이란 조직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시위를 벌였다'는 발표와 함께 1024명을 검거, 이중 180여명을 구속 기소하기에 이른다. 인상적인 것은, 그 중에 이건영이란 고등학교 2학년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은 이미 1973년 '학생의 날'을 폐지하는 등 '학생의 정치세력화'를 대놓고 억압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그들이 누구보다 '정치적인 존재'일 수 있음을 인정해준 정권이었다. 그런 그들의 두려움을 입증해 준 한 청소년이 있었던 것이다.

4.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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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라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누구는 '성숙'하고 누구는 '미성숙'하다는 것을 누가 정하는가?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하며, 성숙하고 완전한 인간은 없다. '합리적인 인간'은 신화일 뿐이다. 보통 청소년들이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비해 경험의 양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경험의 양이 많은 게 반드시 더 '완전'하거나 '성숙'하다고 할 수는 없다...'정치적 권리'는 '합리적'이거나 '성숙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일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사회의 일을 결정할 때는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결정과 의견반영의 권리야말로 정치적 권리의 근본이다..." (책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 공현 외 저)

지금도 어른들이 거리에 나온 10대들을 보며 70년대와 비슷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 '너희가 뭘 안다고!' 그러나 정치는 '뭘 알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당사자'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이라고 정치에 예외적인 존재일 수는 없다. "그 청소년의 용기와 풋풋한 고행"은 곧 '민주시민 양성'이란 학교 교육 목적 실현의 한 방법이기도 하니깐. 과연 그들이 어른들을 향해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야'하는 존재인 걸까? 그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