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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민, 이주는 제법 오래된 역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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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미국 취업이민 노동허가(PERM) 승인을 받은 한국인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취업이민 신청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한 한국인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12 회계연도 1,200명이었던 노동허가 승인이 4년 만에 8,349명으로 600%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취업난, 실업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려는 시도는 지금만의 일은 아니었다. 과거 인류는 어떻게 이주를 해 왔는지 그 흐름을 짚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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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노족은 중국에서 쫓겨나 유럽까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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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는 흉노족으로 골치를 앓았다. 이전 진시황 때부터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한나라는 흉노족에게 승리를 거둔다. 남흉노는 한족에게 흡수되었다. 북흉노는 한에게 대패하여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도망을 친다. 이때 한나라는 자신들의 흉노 토벌 행위가 어떤 파급 효과를 유럽 사회에 가져올지 전혀 몰랐다.

“북흉노가 최종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떠나 흑해 방면으로 이주한 것은 2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이때가 되면 중국쪽 기록에서는 이들에 관한 소식이 차츰 사라지는 반면, 170년대에 쓰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에는 돈 강과 볼가 강 부근에 ‘훈(Hunnoi)’이라는 집단이 있었다고 언급돼 있다. 이들은 카스피 해와 흑해 북방의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유럽 역사에서 민족 대이동을 촉발시킨 주인공으로 유명한 훈(Huns)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이 훈족은 옛 민족 이동의 길을 따라 유럽, 근동, 남아시아로 들어가 침략과 약탈의 행진을 거듭한 하나의 선발대에 불과했다.” (책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 조일준 저)

2. 여러 곳에서 출몰한 바이킹족은 약탈자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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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역사에서 훈족의 침입으로 인해 게르만 족이 이동하면서 격변기를 맞이한다. 연쇄 반응이 대단했고, 무엇보다 그로 인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말았다. 그에 못지 않은 것이 바이킹족의 대규모 이동이었다. 이들의 야만적인 모습은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시기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동적인 해상 이주자들은 범 게르만족의 북방계인 바이킹(Vikings)족이었다. 8세기가 끝나갈 즈음,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노르인(norsemen,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이 갑자기 동남쪽 바다 건너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바이킹은 이들 해양 민족을 통칭하는 말이다. …. 바이킹 시대는 노르웨이에서 선사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계기였다. 유럽 남서부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바이킹들을 불과 칼로 쑥밭을 만들어놓은 잔인한 약탈자로 여기고 있지만 이것이 사실의 전부는 아니다. 바이킹들은 무역, 식민지 건설 등 평화로운 용건으로 접근했으며 새 땅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서도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발견했고, 그곳에 정착하여 공동체를 형성했다. 지금의 아이슬란드는 바이킹 정착지를 그대로 이어나간 형태다. 바이킹들은 빠르고 조종이 가능한 선박을 제작하여 수많은 원정을 떠났으며, 바다에서는 뛰어난 항해사들이었다.” (책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 조일준 저)

3. 아프리카 흑인 노예는 가장 비인간적인 강제 이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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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이주는 외부 요인이든, 내부 요인이든 비인간적으로 이루어진 이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흑인 노예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방식의 이주였다. 순전히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아무 힘 없는 흑인을 잡아가 혹사를 시켰다. 이주한지 6년이면 치사율이 100%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비인간적인 모습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연 시기와 일치한다. …. 대서양을 통한 노예무역의 규모가 실질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540년~1550년께부터다. 19세기까지 해마다 무수히 많은 아프리카 나자와 여자들이 아프리카 내륙에서 해안으로, 그리고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최악의 여건에서 이동했다. …. 노예제도는 1400년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중에도 가장 이윤이 많이 남고 규모가 컸던 지역이 신세계, 즉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 유럽인이 남북 아메리카에서 30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노예를 부리던 시기에 얼마나 많은 흑인이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서 대서양을 건너 팔려왔는지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학자은 적게는 930만 명에서 많게는 2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데, 통상 1000만 명으로 얘기한다.” (책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 조일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