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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여,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자'라는 조언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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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h-anne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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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앨리슨 셰이퍼는 심리상담가이자 저자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이런 착각을 한다. 시험 성적이나 승부와 상관없는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이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할 거라고 믿는다.

또 이런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을 뿌듯하게 여긴다. 자기의 등을 '탁탁' 치며 백점짜리 범생이를 고집하는 부모, A를 받으면 용돈을 더 주겠다는 부모, 경기에서 우승하면 탕수육을 사주겠다는 부모 등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와 거리가 멀다고 자족한다(정말로 이런 부모들이 있다).

그런데 만약에 당신도 느긋한 편이고, 당신의 아이도 노력형이 아니라면?

과제를 더 꼼꼼히 읽고 글씨에 더 신경을 쓰면 영어 성적이 훨씬 나아질 텐데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부모를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거다. 즉, 아이가 최선을 안 한다는 사실.

자기의 시간과 잠재력을 낭비하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다음과 같은 몹쓸 생각을 때론 하게 된다.

1. 우리 아이는 성실하지 못해.
2. 태도가 나빠.
3. 개을러.
4. 관심이 없어.

그런데 이런 평가가 정말 정당한가 말이다.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기부여의 핵심을 이해하면 부모가 늘 외치는 "최선을 다하자"라는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젠 그런 심리적 구호를 걷어찰 때다.

"최선을 다하자"는 그릇된 구호다

어른들은 자신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과 멀다. 난 한 번도 완전히 내 잠재력에 부응해 살아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세계 최고의 바순 연주자가 못 되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런 바순 연주자가 아니다. 그럼 게으른 탓인가? 태도 탓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난 매일매일 넘치는 일과를 다 못 처리할 때가 더 많다. 끊임없이 시간을 조율하고 어느 부분을 타협할 것인가, 더 큰 그림이 뭔가를 고민하며 상황에 따라 내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한다.

어제 저녁만 해도 그렇다. 내가 만약에 식사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면 해동한 새우에 타이 소스를 뿌려 먹는 것으로 저녁을 때우지는 않았을 거다. 시간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었다. 태도의 문제였나? 게을렀나? 그렇지 않다.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다. 저녁 준비에 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결정이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의 예를 들어보자. 대학교에 다니는 딸 이야기다. 이런 과제를 앞두고 있다. 성적의 30%를 좌우하는 시험, 성적의 40%를 차지하는 논문, 그리고 성적 5%에 해당하는 퀴즈. 딸은 공부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교수들이 이 세 가지 과제를 이번 주에 한꺼번에 안 냈다면 딸은 "최선"을 다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을 거다. 그러나...

딸은 또 공부에 치이지 않으려고 쉬는 시간도 따로 계산해야 하며 기계가 아니므로 친구와 가족과의 관계 유지에도 유념해야 한다. 공부하는 기계, 또는 공부벌레가 되면 그에 따른 문제도 만만치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자"라는 구호는 오히려 번뇌를 자초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정도면 돼"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 보자. 당신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가?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게 현실이라면 우린 우리 자신에 너무 실망해 참지 못할 거다.

사실 대다수 가정에서는 자녀 교육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정도면 돼"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살 때 우리 삶이 더더욱 윤택해진다고 난 믿는다. 다툼이 줄어들고 일상이 더 즐거워지며 서로에 대한 이해심도 높아진다. 그 부가가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자, "최선을 다하자"라는 개똥철학을 버리고 더 건설적인 각도로 아이 동기부여에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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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CA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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