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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팔아 재벌에게 돈을 뜯은 사람이 최순실 말고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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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21일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퍼스트레이디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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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

아,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말인가? 틀렸다.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의 40여년 전의 모습에 대한 묘사다. 중앙일보가 발굴한 신흥종교 연구가 탁명환 씨의 1988년 기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탁씨가 1973년 처음 만났을 당시만 하더라도 '원자경'이라는 이름의 큰무당 노릇을 하고 있던 최태민은 1975년 '대한구국십자군'이라는 걸 창설하면서 스스로를 '목사 최태민'이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관련기사] 40년 전의 최태민은 무당들도 설설 기는 '큰무당'이었다

영애 박근혜의 적극적인 참여로 구국십자군의 세력은 점차 강력해졌다. 최태민 또한 "도지사나 경찰국장에게 전화로 호통을 칠 정도로" 세도를 부렸다. '축재'가 빠질 수 없었다:

탁 소장은... “최태민은 ‘구국’에는 구호뿐이지 사실은 축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재벌급 기업인들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 일과였다”고 증언했다. (중략)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서 오만하게 앉아 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 이어서 탁 소장은 “(최태민이) ‘명예총재인 영애께서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협조 부탁한다’고 하면 상대편에서 꼼짝 못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11월 4일)

어째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게 없다. 약간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협조'를 직접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 [관련기사] 박근혜가 직접 재벌 회장들에게 '최순실 재단'에 자금 출연을 요청했다 한다

최태민은 권력을 이용해 측근의 '민원'을 해결하고 수수료를 챙기기도 했다. 주변의 목사들에게 "교인들을 통해 돈이 될 만한 건수를 물어오면 그것을 해결하고 돈을 받아 선교회 사업에 쓰겠다"고 말했다는 것. 탁씨는 "최태민은 돈이 되는 일이면 어디든지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썼다고 중앙일보는 전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최태민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는 게 통설이지만 적어도 최태민의 대한구국십자군을 체제 유지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74년은 엄혹한 유신 시절이었다. 당시 기독교계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저항 세력이었다. 최태민이 총재를 맡았던 대한구국십자군의 창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탁 소장은 “최태민이 박 대통령의 영애 근혜양을 만나면서부터 당시 저항 세력이었던 기독교계의 저항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대한구국십자군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던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기독교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근혜양을 통해 최태민씨의 구국선교단 십자군사령부의 창설 건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 11월 4일)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살해당한 이후 최태민도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후인 오늘날과는 좀 다르다. 탁씨는 최태민은 박근혜를 방패막이으로 삼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수사본부에서 한 달간 수사를 했다. 거액의 행방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최태민은 예금통장 등 모든 걸 근혜양에게 책임을 돌리고 발뺌했다. 수사진은 대통령의 자녀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수사 결과도 발표하지 못하고 말았다" (중앙일보 11월 4일)

이번은 상황이 다를 것이다. 20대 초반의 '영애' 박근혜와 60대 중반의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지위와 책임의 차이는 그 세월의 차이보다도 더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