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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 국가를 다스렸던 역사 속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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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KBS가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 시절 최태민의 종교행사에 참여한 동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종교인 최태민-최순실 부녀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오래된 관계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새삼 부각되면서, “박근혜-최순실 둘 사이는 주술적, 샤머니즘적 관계"(정두언 전 의원)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가운데, 국가 지도자가 특정 종교에 의지해 국사를 처리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신정국가'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고대 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점'을 통치원리로 활용했을까. '점'이 실제 역사 속에서 국가 지도자의 통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분이 말씀하신 '우주의 기운'과 이 '우주의 기운'이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비교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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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로 황제(고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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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혜성이 출현하자 걱정이 된 네로는 발빌루스에게 무엇을 해야 좋을지를 물었다. 그러자 발빌루스는 네로에게 "혜성이 심상치 않은 사태를 예고하고는 있지만 다수의 거물급 인사들을 처단한다면 그런 기운이 당신을 비껴갈 것"이라고 충고했다...이처럼 귀족들을 희생시키는 조치는 애석하게도 혜성이 출현할 때마다 반복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혜성은 국가에 재난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했다."(책 '점성술로 되짚어보는 세계사'. 벤슨 보브릭 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점성술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통치기는 "로마 엘리트 계급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점성술을 받아들이는 시대”(책 '점성술로 되짚어보는 세계사'. 벤슨 보브릭 저)였으며, 아우구스투스가 숨진 후 왕위를 이어받은 티베리우스는 본인이 직접 별점을 봐주는 점성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성술에 의지하는 이러한 통치 방식은 결국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네로 황제 대에 가서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된다. 혜성이 나타나자 불안에 떠는 네로에게 본인의 정적을 숙청하려는 목적을 가진 신하 발빌루스가 "거물급 인사들을 처단하면 불운이 닥치지 않을 것"이란 건의를 올린 것이다. 이를 받아들여 네로 황제는 혜성이 나타날 때마다 피의 숙청을 벌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강제 폐위였다.

2. 레온티우스(비잔티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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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가라고 해서 모두 정확하게 예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설익은 지식을 가지고 점성가인 체하는 사람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기원후 484년에 동로마 제국 황실 소속 2명의 점성가는 레온티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야망이 큰 한 귀족에게 제노 황제를 축출하고 황제 자리에 앉으라고 부추겼다...쿠데타가 성공하는 듯이 보였던 것은 한 순간이었고, 레온티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참패를 당해 도주해야만 했다." (책 '점성술로 되짚어보는 세계사'. 벤슨 보브릭 저)

점을 이용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진행하다 큰 코 다친 사례는 네로 황제만은 아니다. 실패하면 삼대가 멸족되는 그 무서운 '역모'를 꾸미면서도 점성가 의견을 믿고 일을 진행하다 결과를 그르친 사례도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야심 많은 귀족 레온티우스는 황실 소속 두 명의 점성가가 자신에게 “하늘의 기운이 당신에게 기울어져 있다.”고 한 말을 믿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참패를 당해 도주해야만 했다. 4년에 걸친 도주 끝에 결국 레온티우스는 잡혀 참수 당했지만, 잡히기 전 헛된 꿈을 꾸게 만든 점성가 두 명을 붙잡아 무참하게 살해함으로써 본인의 복수는 완성한다. 점쟁이가 미래를 모호하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3. 제노 황제(비잔티움 제국)

"동쪽의 비잔틴 제국 사람들도 서쪽 세계와 마찬가지로 점성술 열기에 들떠 있었다. 비잔틴 제국 초기에 몇몇 황제들은 점성술을 규탄하기도 했었지만, 대부분의 황제들은 점성술에 의지하거나 궁중에서 점성술을 육성하는 것을 허용했다.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점성술로 해석한 행성들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재해가 초래되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전해지는 바로는 새로 건설할 수도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서 콘스탄티노플 도시 건설을 착공하기에 가장 상서로운 시간을 선택해줄 것을 점성가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책 '점성술로 되짚어보는 세계사'. 벤슨 보브릭 저)

그렇다고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들이 점성술을 등한시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점성술은 기독교를 믿은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 또한 중요하게 참고했던 자료 중 하나였다. 대표적인 것이 자연재해를 예측하거나, 상서로운 '길일'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레온티우스의 역모를 물리친 제노 황제는 권력유지를 위해 점성가들을 불러 "황제의 권좌를 노리는 정적들의 운세를 분석"하도록 했다고 하니(책 '점성술로 되짚어보는 세계사'. 벤슨 보브릭 저), 권력자들이 불안한 심리 상태를 점을 통해 안정시키고자 시도해온 것엔 의외로 깊은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심리적 안정' 과 '심리적 조종' 사이 벽 또한 의외로 얇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4. 엘리자베스 1세(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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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다노의 맞수가 될 만한 인물은 1527년에 태어난 존 디였다...당시 암울했던 시절에 그는 엘리자베스의 별점을 쳐보고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녀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을 때 디가 대관식을 거행할 가장 상서로운 일시를 결정했다. 디는 또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여왕이 장기간 명예롭게 통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여왕의 "비밀 첩보원"으로 활동했고, 해외 영토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했으며, 새로 발견된 해외 영토에 여왕의 명성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고, 여왕의 첩보기관에서 사용할 암호집을 작성했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방법으로 여왕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었다." (책 '점성술로 되짚어보는 세계사'. 벤슨 보브릭 저)

과거의 점성술사들이 마냥 엉터리였던 건 아니다. 아직 학문이 세밀히 분화되지 않았던 시절, 점성술사들은 천문학, 수학 등에 열정을 가지고 있던 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엘리자베스 1세를 보좌했던 존 디다. 그는 천문학, 수학, 지리학, 항해술, 연금술, 히브리 신비 철학을 두루 섭렵했던 당대의 대학자였다. 점성술은 그가 별에 대한 신비를 캐기 위해 선택했던 하나의 학문 수단이었다. 별점을 통해 엘리자베스 1세의 대운을 예언하며 신임을 얻어 핵심 보좌진 중 하나가 되었지만, 오히려 디가 업적을 남긴 분야는 별점이 아닌 첩보 분야였다. 수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암호집을 만들었고, 그 유명한 ‘007’이란 명칭을 가진 첩보원들을 길러 해외에 파견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국의 그레고리력 채택을 위해 새로이 천문학적 계산을 정비하기도 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그를 가까이 한 이유는 '점'을 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훌륭한 통치를 위한 인재 등용의 측면이 컸을 것이다. 점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도 지도자의 능력에 따라 그 모습이 천양지차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