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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에게 커밍아웃했고, 할머니는 다행히 돌아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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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요일 밤,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인도 식당에서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 몇 년 만의 만남이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그 시간동안 그는 커밍아웃을 하고 결혼도 했다고 한다.

그는 채소 사모사와 난을 먹으며 그의 가족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커밍아웃하지 못했다"며 "들으면 놀라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전했다.

“나이가 정말 많으시거든. 다른 세대 사람이야. 이해 못 하실 거야.”

그는 왼손 넷째 손가락에 은으로 된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는 반지를 끼고 있으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파트너를 '정말 좋은 친구'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할머니에게 커밍아웃하면 놀라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며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내가 커밍아웃을 한 후 들었던 동성애 혐오적이며 공포스러운 잘못된 생각 중 하나였다.

엄마는 내게 “할머니한테 말하면 돌아가실 거야. 감당 못 하셔. 할머니한테는 안 해도 돼.”라고 말했다.

나는 왜 이기적으로 굴어야 하나? 할머니는 88세다. 할머니는 이걸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이런 메시지들이 내 머릿속에서 녹음된 것처럼 계속 반복됐고, 나는 그걸 내면화했다.

몇 년 전부터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하지만, 지금도 명석하고 중요한 건 다 기억하신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나누던 대화를 까먹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내 공포와 불안은 더해졌다. 할머니는 기억도 못 하실 텐데, 이야기해봤자 무슨 소용이람?

나는 결심했다. 할머니에겐 내가 게이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4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나는 할머니와 프로스펙트 공원의 벤치에 함께 앉아있었다. 5년 전 그날, 18세 때 나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했다.

쌀쌀하지만 햇살이 좋다. 우리는 가까이 앉아 손을 잡는다. 어머니는 차를 댈 곳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보통 때처럼 “일은 어때?”, “광고 일이라고 했지?”라는 말 이후 내가 늘 두려워하던 질문이 나왔다.

“그래서, 얘야… 여자 친구는 있니?”

여러 해 동안 나는 몇 가지 대답을 반복해 왔다.

“아뇨 할머니, 여자 친구 없어요.” “아직요. 그냥 느긋하게 지내요.” “지금은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늘 이렇게 답하셨다.

“그래도 외출은 하지? 춤추러 가니?” 나는 할머니가 아직도 사교 활동을 ‘춤’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늘 참 좋았다.

“네 할머니, 춤추러 가요.” 나는 내가 춤추러 가는 곳이 화려한 드랙 퀸들이 무대에서 마돈나의 ‘Into the Groove’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게이 바라는 건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얘야… 여자 친구는 있니?” 이번에는 할머니 목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렸다.

"할머니, 저 여자 친구 없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뇨.”라고 답했다.

그러자 새로운 질문이 나왔다.

“왜, 얘야… 너 여자 안 좋아하니?”

내 머리는 “지금 돌아가시면 어쩌지?”에서 순식간에 “이 진실을 모르고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는 프로스펙트 공원의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숨을 내쉬며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남자 친구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더니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그 남자는 유대인이니? 이름이 뭐야? 오늘은 뭐한대?” 나는 할머니의 질문에 답했고, 우리는 잠시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이런 식의 유대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안녕!” 어머니가 우리를 향해 오며 손을 흔드셨다. 대화 주제는 날씨로 바뀌었다. 봄의 나무 색깔. 예뻐해 달라고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 무릎 위로 뛰어오른 비글.

어머니는 곧 할머니와 일어나 화장실을 찾으러 갔다. 나는 벤치에 앉아 플로리다에 있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

그의 목소리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려도 된다는 허락과도 같았다.

“방금 할머니한테 커밍아웃했어! 아주 잘 됐어.” 나는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내뱉었다.

그는 내가 자랑스럽다며, 할머니에게 말씀드릴 용기를 내서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직전에 전화를 끊었다.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할머니?” 나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고, 우리는 햇볕을 받으며 차가운 바닐라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물가에 서서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 뒤로 1시간 동안 어머니는 내 여동생에 대한 중매 전화들을 몇 번 받았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울 때마다 나와 할머니는 이야기를 더 나눴다.

다음 날 나는 누나에게 이메일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누나는 '아들의 커밍아웃에 대한 어느 아버지의 반응' 기사를 보내주었다.

나는 할머니와 이런 식으로 연결된 것이 정말 후련했다고 썼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 말을 듣고도 멀쩡히 살아계셔서 안심했다고 썼다.

“우와. 할머니에게 말하기로 결정했고, 결과가 그랬다는 게 난 정말 기뻐. 언제나 진실과 영혼을 따라야 한다는 게 증명됐네.” 누나는 바로 답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누나의 이메일을 읽었다.

“’유대인이니?’ 그거 정말 멋지다. 나는 엄마가 너한테 할머니가 못 받아들일 거라고 하는 게 늘 싫었어. 난 할머니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너는 할머니의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지. 할머니가 우리 곁에 안 계시게 돼도 그걸 위안으로 삼을 거야. 할머니가 너를 아셨다는 걸.”

나는 심호흡을 했다. 누나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우와. 내 용감한 동생. 사랑해.”

또 심호흡.

“그나저나. 할머니한테 계속 커밍아웃을 하고, 하고 또 해야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지?”

sdf

2013년 4월 14일. 프로스펙트 공원에서 할머니와 나.

 

허핑턴포스트US의 'The Time I Came Out To My Grandmother And She Didn’t Di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