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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살펴본, 역대 대통령이 연설문을 만들었던 방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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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안보기밀문서, 외교상 보안을 요하는 문서까지 한 미간인 pc에 담겨 있었다는 믿지 못할 얘기들이 하나의 '팩트'로서 연일 보도되고 있다. 처음 시작은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 고쳤다는 보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고 따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비록 네티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아마 이후에 보도되었던 국정 개입 문서들에 비해 연설문 수정 정도는 '인정해도 괜찮은' 일로 받아들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통령 연설문은 그리 간단하게 취급될 성질의 문서일 수 없다.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라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연설문을 어떻게 만들고, 대했는지를 알려주는 책 속의 문구들을 찾아 모아보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쓰다 보면 친구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대목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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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그 바쁜 와중에도 연설문만은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고쳐서 되돌려 주었다. 한 자도 고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연설문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했다. 혹여 수정한 내용을 연설비서실에서 알아보지 못할까 봐 다음 글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화살표로 표시하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했고, 자신이 고친 것을 재수정할 때는 화이트(수정액)을 쓰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있는 데다, 한자를 약자로 흘려 썼기 때문에 이를 해독하는 데 애를 먹곤 했다." (책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

"...무슨 일이든 내가 잘 알아야 남을 설득할 수 있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은 일종의 공부였고, 현안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설문은 진실해야 했다. 말의 유희나 문장의 기교에 빠지면 나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의지가 없어지고 만다. 나는 내 연설문을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래서 늘 진지했다" (책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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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에 대한 열의는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연초부터 1년 동안의 연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신년연설부터 시작해 3.1절, 4.19, 5.18, 현충일, 광복절로 이어지는 주요 계기마다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 미리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연설문은 연설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고치고 또 고치고, 생각에 새로운 생각을 더한다. 광복절 경축사와 국회 연설문이 특히 그랬다...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문에 관한 한 지치지 않았다. 끊임없이 더 나은 연설을 하기 위해 고민했고, 대충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책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

"김(대중) 대통령은 먼저 의견부터 듣기 시작했다. 광복절 연설의 경우, 두어 달 전부터 경축사에 담았으면 하는 내용이 전 부처와 각종 위원회에서 올라왔다. 청와대 안팎의 사람들을 모아 식사를 하면서 직접 청취하기도 했다...그런 후 각종 자료를 검토했다...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모두 읽었다...그리고 각고의 시간 끝에 연설문이 완성되면 직접 서서 읽어본다. 그저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입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혼자 해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이희호 여사를 앞에 두고, 또 어느 때는 손녀처럼 생각했던 관저 비서팀의 장옥추 씨(현재 김대중 평화센터 국장)에게 들어보라며 연설을 했다. 그러다가 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면 수정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이렇게 퇴고하는 시간이 더 걸릴 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책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

"2004년 3월 1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은 진노했다. 3.1절 기념식 당일 행사보고를 받으면서 본 연설문 초안에 지시한 메시지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대통령은 놀라운 순발력으로 메모지 한 장에 연설할 내용을 정리해 행사장으로 떠났다...대통령은 행사에서 돌아와 경위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이 취한 조치는 의외였다. 대통령과 연설비서실 간에 소통이 잘될 수 있는 근본적인 조치를 지시했다. 연설비서관실을 공보수석실 소속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고, 사무실도 비서동이 아닌 본관 대통령 집무실 옆방으로 옮기라는 지시였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하는 연설비서실부터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책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

"노 후보 캠프에서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노 후보 자신이 글에 대한 안목과 인식이 깊은 데다 어느 경우에도 똑같은 문장의 반복이나 수사적 표현을 거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후보 이후 100여 편이 넘는 각종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을 맡아 해냈지만, 원문이 수정 없이 통과된 적은 ‘매일경제신문’이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서 행한 연설문 딱 한 번이었다." (책 '박정희의 나라, 김대중의 나라, 그리고 노무현의 나라', 이병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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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얘기 하나. 노태우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연설문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유엔에 가서 영어로 연설할 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유엔 총회에 가서 연설하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공중파 방송이 생중계를 하고 야단법석을 부렸다. 노태우 대통령도 연설 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연설 당일,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낭독본을 출력하면서 마지막 한 장을 빠트리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은 영어 연설을 무사히 끝마쳤다. 셀 수 없이 연설문을 읽고 또 읽은 덕분에 완전히 외워버렸던 것이다." (책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