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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 어느 트랜스젠더의 한 마디는 10대 소녀에게 용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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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2016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 영화 ‘꿈의 제인’은 우연한 만남이 일으킨 강렬한 위로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가출팸(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을 전전하는 소녀 소현(이민지)이다. 청소년 쉼터를 거쳐 연인을 만났던 소현은 그 연인마저 자신을 버리자 자살을 시도한다. 그때 소현의 모텔방을 찾아온 건,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이다. 제인은 피가 흐르는 소현의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고, 그날 이후 소현은 제인이 만든 가출팸에서 생활한다. 그녀가 보기에 이 가출팸은 이전에 경험했고 들어보았던 가출팸과는 공기가 다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밤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서로의 과거를 강압적으로 묻지도 않는다. 그렇게 드디어 따뜻한 가족을 만났다고 생각할 때쯤, 이 가족마저 와해되고 만다. 소현은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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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인’은 단편 ‘서울집’을 연출했던 조현훈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더 이상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으로만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출 청소년과 성소수자와 같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청소년 쉼터를 찾아가 떠도는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났다. “의외로 아이들은 경계가 심하지 않았다. 본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라본 그들의 생활은 가혹했다. ‘꿈의 제인’은 그런 아이들에게 감독 자신이 해주고픈 한 마디를 담은 영화다. “지금은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 않나.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어른이 아닌 어른은 많은 것 같다. 자신만의 경험과 단순한 생각으로 아무말이나 막 하는 사람이 많고, 또 그런 말에서 치유를 찾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실제 집을 나온 아이들을 만나보면 그들에게는 세상이 살만한 곳도 아니고 온정이 남아있는 곳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누구의 입을 통해 전해주어야 할까. 이 고민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트랜스젠더 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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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제인은 소현과는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세상의 그늘에 살고 있고, 그 또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처지다. 하지만 그는 소현보다 먼저 가혹한 세상을 경험했고, 그래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녀는 오갈 곳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해 “인생이 시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이 이어지는데, 행복은 요만큼. 아주 조금. 올까말까 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힘든 인생, 혼자 살아 뭐하겠어. 이왕이면 다 같이 사는게 좋지."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다함께 연대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사람은 4명인데, 이렇게 케익이 3조각만 남으면 말이야,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차라리 다 안 먹고 말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조현훈 감독은 ‘꿈의 제인’을 준비하며 집을 나온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러 트랜스젠더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상상한 건, “남의 인생에 대해 따뜻한 진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어른”이었다고 한다. “처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너무 익숙하고 만연해서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분들은 일반적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갖고 있더라. 그렇게 만난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에 제가 평소 존경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투영시켜 제인이라는 인물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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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청소년과 트랜스젠더. 세상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을 그리는 영화지만, ‘꿈의 제인’이 그들을 통해 사회의 그늘을 고발하는 이야기인 건 아니다. 물론 조현훈 감독이 실제 만난 이들의 삶은 상상보다 더 참혹했지만, 그들을 대상화해서 전시하듯 보여주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소현이라는 가출 청소년을 그리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영화는 소현을 통해 가출 청소년의 현실을 조망하는 대신 소현의 표정과 반응을 묘사한다. 흥미로운 건, 관객의 지지를 받아야 할 이 인물 또한 그리 호감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현을 불쌍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답답하게 생각해도 틀린 게 아니다. 소현은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지만, 자신이 먼저 나서지 못하고, 사실상 누군가가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품어주기를 바란다. 조현훈 감독은 소현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거처가 정해지지 않은 거리의 동물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떨까. 소현은 지금 생존이 중요한 아이이기 때문에 그의 반응도 일반적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극중의 소현이 보여주는 예측불허의 반응은 ‘꿈의 제인’의 영화적 형식과도 맞닿아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꿈의 제인’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곧 이야기의 흐름이 소현이 가진 공포와 욕망, 그리고 바람이 뒤섞인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제인과 만나 가족처럼 살았던 따뜻한 기억, 그리고 새로운 가출팸에 들어가 살게되며 겪는 무서운 기억들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악몽인지, 혼돈스럽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 길을 찾고 나면 소현과 제인이 나누는 대화의 감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영화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드러낼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관객은 끔찍한 경험을 통과한 소현이 그래도 또 다른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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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꿈의 제인’이 던지는 위로는 사실 매우 냉소적이다. 극중의 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마 전 계속 외롭게 살겠죠. 계속 불행한 채로.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행복한 날도 가끔씩 있으니까요. 그럼 됐죠 뭐. 여러분, 우리 오래오래 살아요, 불행한 얼굴로."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소현과 같은 상황의 아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었을까. 너가 먼저 다가서면 그에 따른 댓가가 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니, 더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온다. 영화 속 제인은 그런 헛된 희망을 주는 대신 가혹한 삶을 버틸 수 있는 태도를 이야기해준다. 어쨌든 인생은 불행하고, 행복은 가끔씩 찾아오는 것. 불행한 얼굴로 오래오래 살다보면 가끔의 행복도 경험할 수 있는 것. 이는 단지 가출 청소년과 성소수자에게만 용기가 되는 말이 아니다. 2017년의 한국을 사는 이들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처럼 어느 정도의 ‘체념’과 또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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