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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법'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연구되어온 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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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영국 데일리 메일에 콘돔을 낄 필요 없이 성관계 몇 분 전에만 먹으면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남성용 피임약이 개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물 실험을 거쳐 임상 결과 별 이상이 없으면 2021년께 상품으로 출시가 될 것이라 하니, 제품 개발이 성공하면 거의 300년 만에 콘돔이 필요 없는 피임의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18세기초 콘돔이 발명되기까지 숱한 난관을 뚫고 온 우리 인류다. 사실 피임의 역사는 문자가 발명되기도 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피임법은 인류의 시작부터 후대에 전승해오던 기초적인 지식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책에서 추려 모아보았다. 누가 뭐라 하건, 우리는 언제나 답을 찾아왔다. 즐거움과 안전을 함께 취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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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족사회: 해초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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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문자가 없는 미개사회에서도 임신·출산의 생리학적인 메커니즘은 숙지하고 있다. 따라서 피임기술도, 원시적이긴 하나 다방면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이스타 섬 원주민 사이에서는 질에 해초를 삽입하여 임신을 방지했으며,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서는 질외 사정도 행해지고 있었다. 또 폴리네시아 피지 섬 원주민은 내복용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로가수(樹), 사마로수(樹)의 잎이나 껍질을 벗긴 뿌리로 즙을 만들어 그것을 복용하였다. 대개 이 내복약은 주로 경험이 없는 임산부가 복용했는데, 경험이 있는 산부도 임신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 사용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피임법은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부족사회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존재했고, 전승되어왔다. 원시 부족들도 여성의 임신, 출산과 관련한 기초적인 메커니즘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질외사정 정도의 수준을 넘어 내복용 피임약이나 성 관계 전 집어넣는 해초 같은 원시적인 피임 도구들이 존재했다. 부족마다 피임의 방법들은 달랐다.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은 노련한 산파가 피임 마사지를 통해 자궁의 위치를 바꿔 임신을 예방했고, 후일 여자가 임신을 원하면 다시 마사지를 통해 자궁의 위치를 원상태로 돌려놓았다고 한다(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물론 부족들의 모든 방법이 다 효과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극단적인 경우 임신한 여성의 배에 돌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유산을 유도하기도 했다. 효과적인 피임법이 개발되기까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2.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악어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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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지’에서 이 같은 임상학적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 실증학적 견해는 분명히 효력이 있었다. 제정 로마시대의 여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역시 이러한 피임법을 숙지하고 있었다...고대 이집트에서는 임신을 막기 위해 삽입 좌약의 처방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린(Green, 1847-1929년)의 ‘피임의 세계사’에 의하면, 파피루스 문헌에는 “악어의 변과 꿀을 혼합하여 천연 탄산소다와 함께 질 내에 삽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처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피임법은 근대 의학에 비춰보아도 피임의 역할을 썩 그럴듯하게 해내는 과학적인 처방전이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예나 지금이나, 고급 정보와 첨단 학문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피임법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대 선진국이었던 그리스와 이집트에선 근대의학의 관점에서 봐도 상당한 효과를 가졌다고 평가 받는 첨단의 피임법이 개발되고 유통되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악어 똥과 꿀을 섞어 탄산소다와 함께 질 내에 넣으라는 설명이 파피루스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효과적인 피임법을 직접 개발해냈다. “자궁 내에 서양 삼나무기름, 또는 납이 함유된 연고, 혹은 유향(乳香)과 올리브기름을 섞어 넣을 것. 그러면 여자는 임신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동물지’에 적혀 내려온다. 재미있는 건 근대 의학의 연구 결과 삼나무 액체에 정자를 말살시키는 강력한 물질이 있음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나머지 물질은 정자 활동을 완만하게 해 줌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악어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만들어질 법도 하다.

3. 16세기 유럽: 공작부인은 스펀지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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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페서리(DutchPessary)나 콘돔이 발명되기까지는 유럽,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스펀지 탐폰(tampon, 면봉, 거즈봉)이 16세기경부터 널리 사용되었다...탐폰의 안내서에는 “스펀지에 브랜디 몇 방울을 적셔 자궁 입구를 막으면 된다”고 쓰여 있어 피임효과를 과대선전하고 있다..스펀지는 2.5cm부터 레몬 크기만한 것까지 여러 크기의 종류가 갖추어져 있었다. 모두 둥글고 가는 명주 끈이 붙어 있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콘돔이 발명되기 전, 성감을 반감시키지 않으면서 임신을 피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답은 자궁을 막는 방법이었다. 원시인들이 해초 등을 사용한 사실이나,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끈 달린 스펀지가 쓰였던 것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스펀지는 탐폰의 형태로 16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특이하게도 스펀지를 브랜디에 적셔 사용하였다. 브랜디는 알칼리성으로 정자를 말살시키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전처럼 대단히 안전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방법은 무려 20세기 초까지 널리 쓰인 피임법이었다. 실제 1826년 나온 칼라일의 ‘여성필독서’란 책에는 "어느 공작부인은 만찬회에 초대받아 외출할 때에는 절대로 스펀지를 잊지 않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여성은 스펀지를 허리에 동여매 항상 준비해 두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유흥을 즐길 때 즐기더라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정신은 분명 배울만하다.

4. 18세기 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양 창자를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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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 정확하게는 1706년, 위의 광고가 영국에 출현했다. ‘비교할 데 없는 콘돔 씨(氏)’, ‘반가운 발명’, ‘대영제국의 우수한 국민’으로서, 콘돔의 출현은, 남성은 물론 여성한테도 대단한 절찬을 받았다. ‘배불뚝이와 울며 보채는 아이’로부터 아내들은 해방되었고, 아가씨들은 미혼모 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남자는 창부들로부터 성병을 선물 받을 염려도 없어졌다. 일석이조뿐인가, 일석삼조, 일석사조의 축하할만한 ‘반가운 발명’이었다."(책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 후쿠다 카즈히코 저)

18세기, 드디어 피임사(史)에 한 획을 그은 발명이 이루어진다. 콘돔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전에 콘돔 비슷한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선 기름칠한 얇은 헝겊이 콘돔처럼 쓰이기도 했고, 일본이나 중국에선 부드러운 삼나무 종이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성감이 현저하게 반감된다는 이유로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성감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피임률을 높인 현대적 의미의 콘돔은 18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최초였고, 가히 혁명적인 발명이었다. 그 혁명의 재료는, 어린 양의 맹장이었다. 맹장을 꺼내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늘에 말린 후, 유지(油脂)와 밀겨로 비벼 부드럽게 한 물건이 최초의 콘돔이었고, 나중에서야 우리가 아는 고무 제품으로 바뀌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의 고무 제품 두께는 평균 0.075mm인데 비해, 양 창자로 만든 최초의 콘돔 두께는 0.038mm로 지금보다 훨씬 얇았다는 점이다. 한때 해가 지지 않았던 나라의 시대를 앞서갔던 첨단 기술이 참으로 감탄스럽다.

그렇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을 거치며 근대의학은 피임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1860년대 미국에서 출간된 ‘자연의 서’ 같은 책들은 피임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대중들에게 널리 배포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선 이른바 '순결 운동가'들이 '임신의 예방 혹은 낙태를 목적으로 고안된 물건'을 우편으로 배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1873년 통과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책 '아내의 역사', 매릴린 옐롬 저). 그러거나 말거나 피임법은 언제나 있어왔고, 날로 발전해 왔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피임법에 관한 앞으로의 전망이 밝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