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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나타난 시대별 '패션피플'의 '잇' 아이템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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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장소에서, 핫한 옷차림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뭘 좀 아는' 언니 오빠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패피', 즉 '패션 피플'이다. 패션잡지들이 이러한 '패피'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핫한 패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만의 현상일까?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곳은 늘 있어왔다. 그런 곳에서 본인의 개성과 멋을 자랑하고자 했던 길거리 '패피'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소설을 통해 '홍대 패피', '강남 패피'를 넘어선 '19세기 조선 패피' 혹은 '혁명기 빠리 패피'들의 패션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그들의 '잇'아이템이 당신을 사로잡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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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48-1951년의 파리 패피 : 페티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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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분홍색 리본이 달린 커다란 밀짚 모자를 뒤로 넘겨 쓰고 있었다. 모자의 검은색 끈은 그녀의 긴 눈썹 끝을 감돌아 아주 낮게 드리워지며 갸름한 그녀의 얼굴을 다정하게 누르는 듯했다. 작은 물방울 무늬가 점점이 찍힌 화사한 모슬린 드레스는 주름이 많이 잡힌 채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에 수를 놓는 중이었다. 오뚝한 코, 턱, 그녀의 모든 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떠올랐다." (책 '감정교육',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

1840년대 프랑스 혁명기 여성 패션을 설명하는 단어는 '페티코트'와 '크리놀린'이다. 당시는 사진처럼 넓은, 아주 넓은 스커트 치마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이런 스커트의 넓은 너비를 유지하기 위해 '페티코트'라 불리는 치마 아래 받쳐 입는 속옷이 '최소' 12겹은 필요했고, 넓고 둥근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말 털을 넣고 풀을 먹인 '크리놀린'이라 불리는 특수 원단들이 이 옷들에 쓰였다(책 '패션의 역사2', 막스 폰 뵌 저). 그러고서도 마지막으로 모슬린 등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덧입었으니, 당시 여성 패피들이 길을 나서기 위해 행했던 단장이 얼마나 고단한 과정이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가능한 일이다. 1848-1851년 혁명기 파리를 배경으로 쓰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교육'에서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첫 모습은 "작은 물방울 무늬가 점점이 찍힌 화사한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마 여자의 우아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그 우아함을 위해선 적어도 12벌의 옷 무게를 견디는 고충이 있어야만 했다.

2. 조선시대 패피 : 녹의홍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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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서울 사는 큰 부자 춘풍이 수천 냥을 싣고 뒷집에 왔단 말을 추월이 먼저 듣고, 춘풍을 호리려고 창문을 반쯤 열고 표연한 태도로 녹의홍상을 입고 새치름하게 앉은 거동, 춘풍이 얼른 보니 그 얼굴 태도는 맑은 하늘에 뜬 흰 달이요, 아침 이슬을 머금은 모란화였다. 절묘한 저 맵시는 물 찬 제비 모양이요, 녹의홍상 입은 거동은 병풍 속의 그림이요, 아리따운 저 얼굴은 월궁의 계화 같고, 복숭아꽃과 오얏꽃의 맑은 빛과 밝은 달이 한강수에 떠오는 듯하였다."(책 '계우사/이춘풍전 : 이춘풍전', 작자미상)

녹의홍상은 말 그대로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뜻한다. 이 같은 차림은 전통적으로 신부가 혼인식 때 입는 예복으로 쓰였지만, 꼭 그렇게만 사용되진 않았다. 조선 후기 풍요로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흥'이라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녹의홍상이 당시 여성 패피들에 의해 젊음과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잇'아이템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에서 수 천냥을 가진 이춘풍을 "호리려고" 들었던 기생 추월이 입은 비장의 무기가 바로 '녹의홍상'이었고, 춘향전에서 이도령을 반하게 만든, 광한루에서 그네 타던 춘향이가 입었던 옷 또한 '녹의홍상'이었던 데에서 알 수 있듯 말이다. 녹의홍상은 이처럼 조선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유혹의 아이템'으로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마 연령별로 입을 수 있는 옷의 색깔과 코디가 정해져 있었던 조선시대에, 녹의홍상이란 옷 자체가 '젊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옷이란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나이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잇'아이템이 있는 법이다.

3. 1930년대 경성의 패피 : 양산

"전차가 약초정 근처를 지나갈 때, 구보는, 그러나, 그 흥분에서 깨어나, 뜻 모를 웃음을 입가에 띠어본다. 그의 앞에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자기의 두 무릎 사이에다 양산을 놓고 있었다. 어느 잡지에선가, 구보는 그것이 비(非)처녀성을 나타내는 것임을 배운 일이 있다. 딴은, 머리를 틀어 올렸을 뿐이나, 그만한 나이로는 저 여인은 마땅히 남편을 가졌어야 옳을 게다. 아까, 그는 양산을 어디다 놓고 있었을까 하고, 구보는 객쩍은 생각을 하다가, 여성에게 대해 그러한 관찰을 하는 자기는, 혹은 어떠한 여자를 아내로 삼든 반드시 불행하게 만들어주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여자는 능히 자기를 행복되게 해줄 것인가. 구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온갖 여자를 차례로 생각해보고, 그리고 가만히 한숨지었다."(책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저)

1930년대 조선은 양장이 보편화된 시기였다. 학생, 교사, 사무원 등을 중심으로 서양식 복장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패션에 신경을 쓰는 '모던걸'들 또한 등장하게 된다. 자연스레 '모던걸'의 양장에 어울리는 소품들 또한 핫한 아이템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양산, 금시계, 그리고 핸드백이다. 그 중 양산은 특히 큰 인기를 끌었는데, 양복과 한복을 가리지 않고 쓰일 수 있는 패션 소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책 '현대패션 110년', 금기숙 외 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가 양산을 무릎 위에 놓은 여자를 보며 뜻 모를 웃음을 짓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양산의 색깔이나 모양이 때로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남편이 있는 부인은 재회색을 썼으며, 학생은 검은색, 그리고 기생들은 무늬가 있거나 수를 놓은 검은색 양산을 쓰곤 하였다. 보편적인 양산의 사용은 일종의 '표식'으로서의 기능 또한 담당하였다.

4. 1980년대 후반 10대 패피 : 진, 스포츠 캐주얼 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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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아, 하고 목에 걸리는 소리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었지만 꼭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여자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미니에 컬러스타킹은 그녀의 제복인 듯, 오늘은 짧은 청스커트에 붉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나는 뚫어져라 보고 있었던 그 그림을 잠시 그녀에게 보여주었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책 '아담이 눈뜰 때', 장정일 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한국 '패피' 역사에서 10대가 중요한 소비자층으로 등장하게 된다. 1983년부터 교복 자율화가 전면 시행되었고, 컬러 TV가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되었으며,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뱅뱅', '화이트호스', '죠다쉬', '리바이스' 등등의 캐주얼 웨어 브랜드들이 청소년을 상대로 한 패션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책 '우리 생활 100년:옷', 고부자 저). 이 때 10대들에게 유행한 건 진, 스포츠 캐주얼 웨어 등이었다. 서울 올림픽 직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 등장하는 10대 여자 '현재'는 짧은 미니와 민소매 셔츠, 혹은 청스커트와 원색 스타킹을 '제복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으로 나온다. '녹의홍상'이 '스커트'가 되기까지, 패션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지만 그 옷을 입는 '패피'들은 변함없이 있어왔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