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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도달 10초 전에 알면 사망자 90%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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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만드는 P파는 파괴력이 큰 S파보다 두배 빠르다. P파로 지진을 감지하면 S파가 오기 전에 대비할 여유가 생긴다. 10초만 먼저 알아도 사망자가 90% 준다. 세계 각국은 좀더 빠른 지진경보 시스템을 개발하려 애쓰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지진 발생을 알아채 먼 이웃에게 알리고, 반대로 지진정보를 미리 받아보는 ‘상생’도 시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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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30일 울산 태화강에서 숭어떼 수만마리가 일렬로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동영상에 잡혔다. 7월24일에는 부산 광안리에서 개미들이 떼지어 움직이는 광경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그 사흘 전에는 부산 해운대구 일대에서 가스냄새 소동이 빚어졌다. 9월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자 이들 사건은 ‘전조현상’으로 둔갑한다. 하지만 지진과 동물들의 행동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밝혀진 바 없고 지진 때 항상 일어나는 일도 아니어서 이상 현상이 과학적 예측 수단일 수는 없다.

지진을 예견할 수는 없지만 발생한 지진을 신속하게 알려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이른바 ‘지진조기경보’ 개념이 등장한 건 19세기 중엽이다. 1868년 미국의 제임스 쿠퍼 박사는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사설에 “아주 단순한 기계적 장치(지금의 지진계)를 샌프란시스코 주변에 깔아놓으면 파괴적인 지진이 전기신호를 일으켜 시 중앙탑에 달아놓은 비상벨을 자동으로 울리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120㎞가량 떨어진 홀리스터라는 지역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 과학자들은 지진파보다 전자파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진계로 지진을 감지해 전파하는 현대의 지진조기경보 시스템(EEWS)을 구상한 것이다. 하지만 쿠퍼의 아이디어가 실현되기까지는 1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지질물리학자 토머스 히턴은 1985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스캔’(SCAN)이라 이름지은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을 처음 소개했다. 그는 스캔이 컴퓨터 시스템이나 전력망, 천연가스 밸브, 철로 등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은 두가지 원리에 근거한다. 빛의 속도인 전자파가 지진파보다 빠르다는 것과 지진파의 파형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단층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지진은 속도가 다른 두가지 파형을 만들어낸다. P(primary)파는 초속 6~7㎞, S(secondary)파는 초속 3~4㎞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자연)이 분석한 한반도 상부지각의 P파 평균속도는 5.98㎞/s, S파는 3.42㎞/s이다. 지헌철 지자연 책임연구원(전 지진연구센터장)은 “종파인 P파에 비해 횡파인 S파는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킨다.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의 목적은 P파를 먼저 관측한 뒤 S파가 도착하기 전에 도달시간과 지진 규모를 예측해 미리 경보를 발령함으로써 피해를 줄이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

5초만 미리 알면 학생 100% 책상 아래 피신

일본 도쿄대 국제도시안전공학센터장인 메구로 기미로 교수는 지진 발생 이전에 경보를 발령하는 시간과 인명피해의 관계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지진조기경보를 받고 나서 지진동이 발생하는 시점까지의 ‘유여시간’이 2~20초일 때 사망·중상·경상·무상해가 발생할 확률을 계산했다.

경보가 없을 때 피해 100%를 기준으로 유여시간이 2초면 사망자 비율은 25%가 줄어 75%가 된다.

유여시간이 10초면 사망자 비율은 10%가 되고, 20초면 5%까지 떨어진다.

어느 도시로부터 100㎞ 떨어진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조기경보를 받지 못해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상황이라면, 조기경보가 발령돼 지진동이 도달하기 10초 전에 대비할 수 있을 경우 사망자가 10명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2초의 여유가 있으면 대피행동은 불가능하지만 머리 보호 등 안전 태세를 갖춰 부상을 줄일 수 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자동으로 가스와 전기를 차단할 수 있다. 5초가 주어지면 학교에서 훈련된 학생들은 100% 책상 아래로 피할 수 있고, 10초면 집안에서 밖으로 탈출이 가능하다. 20초면 가족들에게 대피하라고 얘기할 여유까지 생긴다.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을 처음 시도한 나라는 일본이다. 제이아르(JR)는 1960년대 고속철 신칸센 개통 때 지진이 발생하면 신호를 받아 수동으로 열차를 멈추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1970년대에는 자동으로 열차가 서는 장치로 업그레이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P파와 S파의 차이를 이용한 조기경보 시스템 ‘유레다스’(UrEDAS)를 개발했다. 이 시스템의 목적은 지진으로 인한 신칸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평균 20㎞ 떨어진 변전소마다 지진계를 설치해 1초 이내에 경보가 발령하도록 하는 것이다.

2004년 10월23일 신칸센 선로 인근에서 규모 6.6의 주에쓰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가까운 변전소의 유레다스 시스템에 감지됐다. P파가 관측된 지 1초 만에 경보를 발령해 운행중인 열차의 전원을 차단했다. 열차의 속도가 줄고 있는 사이 S파에 의해 선로가 심하게 훼손되고 일부 객차가 탈선했다. 신칸센 운영 40년 만에 처음 있는 탈선이었지만 승객 155명 가운데 다친 사람이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전원이 차단되지 않았다면 탈선 사고뿐만 아니라 반대편 열차가 구간 안으로 들어와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쿠퍼 박사의 아이디어를 일반대중에게 처음 서비스한 나라는 멕시코다. 판 경계부인 멕시코 서부 해안에서 1985년 9월19일 규모 8.1의 지진이 발생했다. 320㎞나 떨어진 멕시코시에서 1만여명이 사망하고 3만여명이 부상했다. 멕시코시는 호수를 메워 만든 도시여서 연약층에서 지진파가 증폭돼 막대한 피해가 일어난 것이다. 멕시코는 이를 계기로 조기경보 시스템(SAS)을 구축했다. 멕시코시 남서쪽으로 280㎞ 떨어진 지진 다발 지역 게레로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뒤 멕시코시에 큰 지진동이 오기까지 90초가량 걸린다. 사스는 60초 이내 조기발령하는 시스템이어서 멕시코시에서는 30초의 여유가 생긴다.

1995년 9월14일 게레로주 코팔라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스는 멕시코시에서 큰 지진동이 일어나기 72초 전에 라디오방송을 통해 경보를 발령했다. 50초 전에는 지하철을 정지시키고, 학생들을 계획대로 모두 대피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 등 서해안에는 2015년 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샌앤드레이어스단층’이 있다. 대륙판인 북미판과 해양판인 태평양판이 맞닿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미지질조사국(USGS)은 2008년부터 조기경보 시스템 ‘셰이크얼러트’를 개발하고 있다. 2012년 실험판을 내놓은 지 4년 만에 지난 2월 시제품(프로토타입) 단계까지 진전됐다. 시스템이 완성되면 시민들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몇 초 뒤에 지진이 자신의 위치에 도달할지 초 단위로 볼 수 있게 된다.

리처드 앨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지진연구소 소장은 “(셰이크얼러트 등) 미국 서부해안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5년 동안 1억2천만달러(1320억여원)가 투여됐고 운용비로 해마다 1600만달러(176억여원)가 들어간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향후 30년 안에 캘리포니아에서 규모 6.7의 지진을 겪을 확률이 99%인 점을 고려하면 이른 시일 안에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을 완성해야 한다”고 <네이처>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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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내관측소 314곳…10초내 경보 가능”

지진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면 조기경보를 받지 못하는 지역 곧 ‘블라인드 존’을 최소화해야 한다. 지진경보가 50초 만에 발령되면 S파의 속도를 초속 3㎞라고 했을 때 블라인드 존은 150㎞에 이른다. 하지만 조기경보를 10초 이내로 당길 수 있다면 블라인드 존은 30㎞까지 줄어든다.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부산이나 대구에서는 지진동이 오기 전에 미리 지진 발생 사실을 알고 대처할 최소한의 시간이 확보된다는 얘기다.

한반도에도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경주지진 규모 5.8은 1978년 기상청이 계기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것이다. 하지만 역사지진은 차치하더라도 한반도와 인근에서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던 기록들이 있다. 국민안전처가 2012년 작성한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보고서를 보면, 북한 조선지진연구소가 발간한 조선지진목록에 1960년 10월8일과 1977년 3월9일 규모 6.8의 지진이 북한 북동부와 접한 러시아 앞바다에서 발생했으며, 1975년 6월29일에는 동해에서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했다. 내륙에서도 한국전쟁 중인 1952년 평양 인근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던 것으로 미국·일본·중국 등 지진연구소들은 파악하고 있다.(<한겨레> 9월23일치 8면 참조) 경주지진은 한반도와 주변에서 발생하는 대지진에 대비한 조기경보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진조기경보 도입은 2007년 오대산 지진이 계기가 됐다. 그해 1월20일 저녁 8시56분 53초에 규모 4.8의 지진이 강원 평창군 북북동쪽 39㎞ 지역(오대산)에서 발생했다. 지진동은 서울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컸다. 하지만 기상청의 지진속보는 지진 발생 2분 뒤에 발표됐으며, 텔레비전에 자막이 보이기 시작한 건 12분이 지나서였다. 기상청은 2008년 지헌철 박사에게 의뢰해 ‘국내 최적 지진조기경보체제 구축방안’을 마련했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지진 관측 50초 안에 조기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해 현장에 도입한 조기경보 시스템은 올해 울산과 경주에서 발생한 세차례의 규모 5.0 이상 지진 때 처음으로 경보를 발령했다. 현재의 지진조기경보 시스템은 6개 지점의 지진계로부터 지진파가 중앙서버에 보고되면 알고리즘(프로그램)에 의해 분석에 들어가 20초 뒤 관측소 15개 이상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으로 분석되면 자동으로 200여개 재난기관, 지방자치단체, 방송사 등에 정보가 보내진다. 울산지진 때는 관측 뒤 27초가 걸렸고, 경주지진 때는 26~27초가 걸렸다. 지진 발생 시점 기준으로는 울산은 38초, 경주는 31초(전진)와 29초(본진)가 걸렸다. 발령 시점에 이미 지진동은 100㎞ 지점까지 다다른 셈이다.

기상청은 2018년까지 내륙 지진의 경우 관측 뒤 발령 시간을 10초 이내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김남욱 기상청 지진화산관리관은 “현재 206개의 지진관측소를 314개까지 전국에 촘촘하게 깔아 최초 관측 시간을 줄이고 알고리즘을 개선해 10개 이하의 관측소 값만으로도 정확한 지진 규모와 피해 지역을 분석하면 블라인드 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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