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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와 아야, '성 소수자가 자기 존재 드러내면서 변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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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대까지는 ‘남성 직장인’으로 살았다. 30대가 돼서 그는 ‘여성 정치인’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자신과 사회, 모두를 ‘바꾸어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사회가 금기한 것들을 평등과 자유의 이름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 ‘그녀’는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22일 오후 4시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후에서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4선 의원인 가미카와 아야의 자서전 <바꾸어나가는 용기>(한울엠플러스)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엔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가미카와 의원은 일본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출마해 당선된 정치인이다.

세타가야구는 도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그는 이곳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많은 정책을 만들어내며 변화를 이끌어냈다. 구청장과 구의회를 설득해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는 자치구 훈령을 만들었고, 기업들이 사원이나 고객을 대상으로 복지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동성 부부를 가족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그의 노력은 구에만 머물지 않고 일본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들을 하나씩 설득해 성 변경을 인정하는 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현재 도쿄에서는 점점 더 많은 자치구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는 조례나 훈령을 제정하고 있다. 통신사는 동성 가족들에게도 가족할인을 하고, 많은 회사들은 동성 결합 가족에 대해 가족수당과 각종 휴가 혜택 등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일본도 처음부터 좋은 환경이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1968년 남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몸에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번듯한 직장까지 다니던 1995년 더이상 남자로 살기를 포기한다. 27살이던 그때 그는 일본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본은 그때까지 성전환 수술을 금기시하고, 트랜스젠더를 괴물처럼 여겼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뒤 1998년부터 일본에서 다시 여성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서 여성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던 과거를 숨기고, 그에 따른 각종 불편함을 감수했을 때 가능했다. 모든 공적 서류에는 그가 남성임을 증명하는 기록들로 가득했다. 그는 구청에서 주민표의 성별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일본연금보험 사무소에 찾아가 공적연금표상의 성별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고, 후생성에 의료보험의 성별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디도 꿈쩍하지 않았다.

소송도 했지만 2002년 패소했다. 행정부도 사법부도 움직이지 않자 그가 기댈 곳은 입법부뿐이었다. 정치인들을 찾아다녔지만,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어렵게 만난 이가 자신이 ‘후천성면역결핍증(HIV) 감염자’라는 것을 밝히고 국회의원이 된 이에니시 사토루 민주당 의원이었다. 의원은 그에게 “당사자가 뒤에 숨어 움직여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만나주지 않는다면 직접 정치인이 되라”고 출마를 권유했다. 구의원 선거까지 두달여 남은 시점이었다. 가미카와 의원은 그렇게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상황은 바뀌었다. 극심한 반대와 저항도 있었지만, 언론은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정치인부터 시민들까지 귀를 기울였다. 투표일에는 그의 당선 여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으로 그의 방이 가득 찼다. 당선하자마자 유명 토크쇼에 출연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현실은 여전히 성소수자에겐 힘겨웠다. 여성으로 출마하기 위해 서류 제출 때부터 선거관리위원회와 투쟁을 해야 했다. 의회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 의원 한명 없었다. 대신 열성적으로 반대하는 의원은 있었다. 그가 상대해야 하는 구 행정부는 규정과 관례에 속박돼 있었다.

그들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권리의 당사자들을 바꾸는 것이었다. 숨어 지내던 동성 커플과 트랜스젠더들을 설득해 그들이 구민임을 보여주는 주민표와 납세증명서를 들고 구청장과 관료들을 만나게 했다. 그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했다. 가미카와 의원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었다. 변화의 시작은 내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아무도 적극 지지하지는 않는 것이 소수자의 권리다. 그래서 그는 정당에도 소속될 수 없었다. 그는 무소속인 채 자민당과 민주당을 비롯해 모든 정당의 모든 의원을 끊임없이 만나고 설득해왔다.

그는 “성소수자의 권리는 곧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라고 말한다. 그는 “세타가야구에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을 확대하는 정책이 추진중이다. 하지만 1인 화장실이 트랜스젠더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들이 끄는 휠체어를 타는 늙은 노모는 어느 화장실에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가미카와 의원은 25일까지 한국에서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정당과 활동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연대를 모색할 계획이다. 한국은 극우 기독교세력을 중심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과 위협적 행동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일부 정치인들까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변한 것도 불과 십수년이고, 유럽도 1980년대까지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이 있었다. ‘사회는 변화한다’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본디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허핑턴포스트는 가마카와 아야와의 영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편집을 거쳐 10월 26일에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