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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금지하면서 미혼모의 양육은 지원하지 않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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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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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전남 나주에 사는 60대 여성 앞으로 갓난아기의 시신이 택배로 배달되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했다. 택배상자 안에는 “저를 대신해 이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라고 쓰인 쪽지가 들어 있었다. 며칠 뒤, 경찰은 택배를 보낸 용의자를 체포했다. 범인은 택배 수취인의 서울 사는 딸이었다. 딸은 35살의 미혼모 이아무개씨였다.


이씨는 출산 직전 새벽 2시까지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고 월세 25만원의 고시텔에서 홀로 아이를 낳은 뒤, “혼자 사는 여자가 출산했다는 것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우는 아이의 입을 막은 채 탯줄을 자르고 몸을 씻다가 아기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난방비도, 전화요금도 연체될 정도로 생활비에 쪼들리는 상황에서, 이씨는 아기의 시신을 수건으로 감싸 방 한쪽에 밀어둔 채 6일 동안이나 그 방에서 구슬 꿰는 부업을 하거나 식당일을 다녔다고 했다. 아기 엄마는 영아 살해와 시신 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넉 달 뒤인 지난해 10월 정부는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한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만혼으로 출산율이 줄고 있으니 학제를 개편해서 초·중·고 교육 기간을 1년 줄이고, 청년세대 미팅을 정부가 주선한다는 방안도 기본계획에 포함되었다. 젊은 세대를 빨리 교육하고 빨리 결혼시켜 빨리 아이를 낳게 하자는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참으로 ‘창조적’인 발상이었으나, 아기를 가져도 낳을 수 없는, 낳아도 기를 수 없는 여성들의 현실은 외면당했다.


우리나라 혼외자녀 출생률은 1.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36위로 가장 낮다. 미국이 38.5%, 프랑스나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50% 이상인 것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아기는 잉태되어도 태어나지 못하고 태어나도 길러지지 못한다. 국내 미혼 임산부의 96%가 낙태를 하고 미혼모 자녀의 70%가 입양된다고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이란 무엇일까? 낙태나 입양을 택하면 비정한 모정이 되고, 양육을 택하면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이씨의 경우처럼 영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끔찍한 경우도 적지 않다. 미혼모의 임신은 모두의 문제이면서, 누구도 드러내길 꺼려 하는 금기로 존재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박영미(55) 대표는 봉인된 미혼모의 이야기를 꺼내서 햇빛 아래 내어놓는 사람이다. 지난 11일 서울 합정동 조용한 주택가 연립주택 2층에 자리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실을 찾았다. 거실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를 본뜬 도안이 벽면 가득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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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뉴스레터의 고정칼럼 제목이 ‘금순이네 칼럼’이던데, 금순이가 누구죠?

“아니 그게 아니고…(웃음) 우리 단체명을 영어로 쓰면 그런 비슷한 발음(Korean Unwed Mother Support Network·KUMSN)이 돼요. 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해외 입양인들하고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 제인 정 트렌카가 초대이사를 맡기도 했고요. 그래서 영어로도 쉽게 통할 수 있게 약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데, 오래전에 한혜진씨가 미혼모로 나온 드라마 제목도 ‘굳세어라 금순아’였어요.(웃음) 그래서 약칭을 금순이라고….”

-요즘엔 미혼 대신 비혼이란 말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미혼’이란 말에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결혼을 아직 안 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 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말하는 미혼모란 정확히 어떤 개념이지요?

“우리 영어 이름에 쓰인 ‘언웨드’(Unwed)는 ‘비혼’과 같은 의미예요. 처음 이 단체가 만들어질 때는 미혼모란 용어가 통상적으로 쓰여서 그 말을 그냥 쓰기 시작한 건데, 2010년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구성 준비할 때 제가 ‘비혼모’로 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내긴 했어요. 근데 어머니들 생각은 다르시더라고요. 그 무렵에 방송인 허수경씨가 비혼모의 상징으로 떠올랐는데, 자기 의지에 따라 아빠 없이 아이 낳기를 결정하는 경우는 자신들하곤 다르다는 거였어요. 미혼모라고 하면 불쌍하고 무능하다고 인식되는 것도 문제인데, 용어를 바꾸기보다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어지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시더군요.”

-단체 소개를 좀 해주세요. 이걸 처음 만든 사람은 외국분이라면서요?

“맞아요. 리처드 보아스 박사라고, 미국에서 안과의사 하시는 분인데 한국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키우셨어요. 입양한 딸을 위해서 한국을 방문했는데, 생모는 찾지 못했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미혼모 시설을 방문했다가 거기서 큰 충격을 받은 거예요.”

-왜요?

“그때까진 한국도 미국이랑 비슷한 줄 알았다는 거예요. 미국에선 미혼 임신 여성이 아이를 포기하는 비율이 1%에 불과하거든요. 도저히 못 키울 형편일 때만 입양을 하죠. 근데 한국 미혼모들을 만나보니까, 자기 선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거의 반강제로 입양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고아수출국’으로 불렸잖아요.

“그렇죠. 2006년 당시만 해도 미혼모 출산은 곧 입양을 의미했거든요. 보아스 박사는 ‘내 기쁨이 이들 미혼모의 아픔과 고통 위에 있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대요. 그때부터 ‘한국 미혼모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마음먹고 2008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 사무소를 개소한 거죠.”

‘낳을 거면 입양동의서부터 쓰라’던 시절

박영미도 그 무렵 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 합류했다. 그는 미혼모가 아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노동운동을 하면서 아이 셋을 낳고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여성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던 그는 2007년 ‘한부모 네트워크’ 설립에 참여하다가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지탄 때문에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그래서 이혼이나 사별로 한부모가 된 여성보다도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이었다. 200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된 박영미는 본격적으로 미혼모 지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처드 보아스 박사와 해외 후원자들의 지원에 의지하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2012년 국내 후원자에 기반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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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납득이 안 갑니다. 2008년 처음 보아스 박사가 시작할 때까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이 우리나라에 없었단 말입니까?

“그때까지 전국 33개 미혼모 시설 가운데 단 세 곳(애란원, 구세군 두리홈, 제주도 애서원)만이 양육미혼모를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했어요. 33개 중의 절반은 입양기관에서 운영했는데 여기선 미혼임산부들이 들어가려고 하면, ‘입양할 거냐, 키울 거냐?’부터 물었대요. ‘키우겠다’고 하면 ‘자리가 없다’고 거절하고요. 입소 즉시 우선 입양동의서하고 친권포기각서를 쓰게 하고 아이 낳으면 얼굴도 안 보여주고 데려가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그런 문제를 해외 입양아의 양부모가 제기하고 나섰다는 게 아이러니군요. 자기가 입양해서 예쁘게 키우고는 있지만, 아이는 가급적 친모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요.

“오래전부터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입양시키는 게 아이에게 좋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엔 지배적이었어요. 그런 입양신화를 깬 게 2000년대 초반 한국을 방문한 해외 입양인들입니다. ‘한국인들은 성장한 입양인을 보면 뭔가 성공하고 돌아온 걸로 아는데, 그런 사람은 정말 소수이고 많은 이들이 말 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걸 본인들 입으로 얘기하기 시작했거든요.”

“엄마는 입양이 최선이었다는 걸 철석같이 믿으시는데 어떻게 딸이, 입양 부모가 성폭행했다는 말을 하겠는가. 어떻게 인종차별이 심각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나. 백인 양부모는 인종차별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아서 그 차별을 막고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제인 정 트렌카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555쪽)

-그동안 여성계가 미혼모 문제를 너무 등한시해왔던 것 아닙니까?

“여성운동에서 미혼모 문제를 더 일찍 다루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미혼모가 아기를 입양 보내면, 자기가 임신하고 출산했다는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니까요. 미혼모의 존재 자체를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미혼모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었던 건, 양육미혼모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7~8년 전부터죠.”

미혼모는 문란하고 무책임하다?

2014년에 와서야 헌법재판소는 “입양기관이 미혼모가족복지시설을 함께 운영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입양기관이 미혼모에게 입양을 강권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그보다 앞서 2011년 입양특례법이 제정되면서 친모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게 하고 입양 숙려 기간을 두어 생후 1주일이 지나기 전에는 입양을 결정할 수 없도록 했다. 그 때문에 친모임을 드러내기 꺼리는 미혼모들에 의해 영아 유기가 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한 해 수천명씩 이어지던 해외 입양 러시가 줄고 양육을 원하는 미혼모의 비율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미정 박사 연구에 따르면 양육미혼모가 1984년엔 5.8%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66.4%로 급증했다. 문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차별이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있지요. 미혼모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륜녀, 헤픈 여자, 무책임한 인간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실제로 미혼모가 되는 사유는 어떤 것들이죠?

“이유는 미혼모 수만큼 다양해요. 누굴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헤어지고 나서 두세 달 뒤에 임신이 된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동거하다가 결혼하자고 했는데 막상 임신이 되니까 남자가 경제적 부담이나 사회적 책임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경우도 있고요. 그 외에 경제적인 이유도 크지요. 여자가 임신하고 나면 일을 못 하니까 둘이 벌던 걸 혼자 벌자니 경제적으로 쪼들릴 거 아녜요? 그래서 자꾸 다툼이 일다가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럴 때 여성을 지탄하는 말이 ‘그러길래 지 몸은 지가 간수했어야지!’란 거죠.

“왜 피임도 제대로 못했냐고 칠칠치 못하다고 하지요. 근데 그게 여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남자들은 여자가 피임을 잘하길 바라면서도, 피임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이기를 바라잖아요.(웃음) 피임을 한다고 해서 다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긴, 기혼자들도 피임에 실패해서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죠.

“피임을 한다고 했는데 잘 안될 수도 있어요. 시험에 붙고 싶었는데 떨어지고, 공부를 잘하고 싶었는데 못하기도 하고, 그런 걸 일일이 욕하고 비난하진 않잖아요.”

-10대 청소년들이 미혼모가 되는 경우 비난은 더욱 거칠어집니다.

“10대의 경우 학교밖 청소년의 출산율이 학교청소년보다 두 배가 더 높습니다. 이들은 사실 가족의 박해를 피해서 도망 나온 케이스가 많아요. 일탈이 아니고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경우죠. 사랑에 굶주리고 정에 목말라서 자기 아기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밖 청소년의 출산을, ‘애들이 발랑 까져서 그렇다’고 쉽게 욕할 수 없단 얘기죠. 근데 이들이 미혼모가 되면 대안학교 외엔 도로 학교로 복귀하기가 어려워져요.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이 반대한대요. 자기 애들 물든다고….”

-양육미혼모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됩니까?

“전체 미혼모를 약 16만 정도로 추산하는데 그중에 아이를 낳아서 직접 기르는 양육미혼모는 3만5천명쯤 돼요. 그 가운데 30대가 제일 많고요.”

-아, 정말요? 10대가 아니고요?

“지금 30대가 돼서 미혼모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10대, 20대 때 미혼모가 된 사람들이 현재 양육미혼모로 집계되니까요. 미혼모 시설에 출산을 위해 들어온 사람들만 보면 20대가 절반 정도, 그다음이 10대고요. 임신 당시의 평균연령은 26.5살입니다.”

-26살이라고요? 미혼모가 되는 건 대개 경제력 없고 갈 곳 없는 10대들인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전문대졸 이상이 43%로, 특별히 학력이 낮은 것도 아니고요.”

-그럼 혼자 독립해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여건 아닌가요?

“근데 소득은 월평균 117만원 선이에요.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같은 걸 다 합친 소득이 그래요. 우리나라 여성들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이 많다 보니까 임신하고 출산하는 동안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행여 들킬세라 복대를 칭칭 감고 다니다가 발각이 나서 쫓겨난 경우도 있고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임신한 거 알고는 계속해서 혼인신고서 가져오라고 했대요.”

-혼인신고서를 왜요? 출산휴가 받는 건 혼인 여부랑 상관없잖아요.

“전혀 상관없죠. 그렇게 자꾸 눈치를 주고 이리저리 창피를 주는 거죠. 결국 못 견디고 나오고 말았어요. 그렇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나면, 애 낳을 때쯤 되면 상황은 최악이 되는 거죠. 가진 돈도 다 떨어지고. 돈 들어올 데도 없고.”

미혼모는 있어도 미혼부는 없다. 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미혼부와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경우는 78%, 미혼부로부터 양육비를 지원받는 경우는 9.4%에 불과하다.

-친자확인소송을 하고 양육비 청구를 하면 받아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근데, 우리나라 미혼모는 그것도 쉽지 않아요. ‘내가 낳겠다고 우겨서 낳은 건데 어떻게 달라고 하냐’, ‘그러다 아이를 빼앗아 가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하죠. 미혼모가 되는 순간 가족을 비롯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고 욕먹다 보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돼요. 어떤 분은 자기 남동생이 그러더래요. ‘누나는 자기 선택이라 그렇다 쳐도 애는 뭔 죄야? 그 남자(미혼부) 앞길은 왜 막냐?’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도 비난만 퍼붓는 거예요.”

낙태를 하면 모정도 없는 비정한 엄마가 되고, 낳아서 기르려고 하면 아이를 망치고 남자 앞길을 가로막는 재앙 덩어리가 된다.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죄인이다.

낙태와 양육지원은 상반되지 않는다

-미혼모의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불안정하다 보니, 미혼모의 양육이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동학대는 사람에 따라서 노출될 수도, 은폐될 수도 있어요. 사회적으로 가난해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 아동에게 어떻게 하는지가 다 노출이 되지만, 재산이 많고 교육 수준이 높으면 아동학대가 있어도 은폐되기 쉽죠.”

-미혼모라고 아동학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럼요. 얼마 전에 아동학대에 대한 토론회를 갔는데,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가정의 아동학대를 어떻게 방지할 거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어떤 대학생이 문제 제기를 하더라고요. 자기가 지금 청년모임을 하고 있는데 전부 부모로부터 학대를 심하게 받은 사람들이라고, 근데 모두 경제적 형편이 좋은 가정 출신이래요. 지역사회나 종교단체에서도 지극히 모범적이라고 존경받는 부모들이라고요. 권력이 많으면 오히려 자기 자식이 뜻대로 안 움직인다고 정신병원에도 넣고 하잖아요. 은폐된 학대의 문제는 보지 않고 미혼모를 아동학대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낙인찍는 건 부당해요.”

-미혼모라고 하면 왠지 무책임하고 결핍된 사람으로 보는 편견 때문이겠죠.

“이런 사례가 있어요. 교제하던 사람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했대요. 집안에서는 임신한 걸 알고 ‘귀한 혼수’를 해 온다고 축복하고 기뻐했대요. 근데 남편이 신혼여행 다녀와서 사고로 사망한 거예요.”

-저런….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사망한 거죠. 미혼모가 안 되려고 아이 출생신고 전에 혼인신고를 하러 갔더니 죽은 사람은 혼인신고가 안 된다고 하더래요.”

-그랬겠죠.

“그러고 나니까 보는 사람마다 이분더러 ‘아이 지우라’고, 그것이 아이 엄마를 위하는 것처럼 얘기하더래요. 그 소리 듣기 싫어서 가족들 피해서 숨어다니셨대요. 아이도 똑같은 그 아이, 엄마도 그 엄마인데 미혼모가 되고 보니 하루아침에 ‘축복받던 생명’이 갑자기 ‘없어져야 할 재앙 덩어리, 저주 덩어리’ 취급을 받게 된 거예요.”

-그분은 자기 소신을 택하셨지만, 실제로 그 과정에서 낙태하거나 입양을 선택했다고 해서 어떻게 비난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요. 미혼모가 아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미혼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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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임신여성의 낙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낙태는 불법입니다. 최근 낙태 허용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미혼모의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자’는 것과 ‘여성의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은 상반되는 논리인가요?

“제 안에서는 상반되지 않아요. 다들 인생을 걸고 고민해서 선택하는 거잖아요. 낙태하는 사람을 두고 ‘너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저렇게 애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넌 왜 못하냐?’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낙태와 양육은 여성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예요. 양육미혼모들이 그러세요. ‘난들 낙태 생각 안 해봤겠냐?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낙태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요.”

-낙태를 하든 아이를 낳든 여성의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예. 다만 미혼모든 기혼자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을 좀더 가볍게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결혼해서 사는 사람도 애 낳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를 짐과 부담처럼 느끼게 만들어요. 사실 애엄마 입장에서 보자면 애가 있어서 힘들지만, 애가 있어서 행복해요.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잖아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는 거죠.”

비난받을 일도, 동정받을 일도 아니다

-여성운동을 오래 하셨는데, 미혼모들이 아무래도 상처에 많이 노출되는 분들이다 보니 함께 활동하는 데 특별히 조심스럽거나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그런 건 없어요. 그분들이나 저나, 사람 도리를 하면서 살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처음엔 저도 미혼모 엄마들을 볼 때 ‘얼마나 고생이 많겠나!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대한 적도 있어요. 근데 이분들은 낙태 유혹도 뿌리치고, 입양 유혹도 뿌리치고,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면서 사시는 거잖아요. 가족한테서도 욕먹고 미친년 소리 들으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게 잘 헤쳐온 엄마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강한지 절감하게 되었어요. 나중엔 제가 이분들을 정말로 존경하게 되었죠. 이렇게 사람 도리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비정상자 취급하는 사람들이 진짜 비정상이에요.”

-미혼모를 자선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게 잘못되었다면, 우리가 미혼모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뭐죠? 왜 그들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적으로 그들 편이 되어야 하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학업권, 노동권, 그리고 이웃으로 존중받으면서 살 권리를 보장한단 뜻이에요. 그분들이 무슨 잘못을 했죠? 아이를 임신한 게 죄인가요? 아이를 낳은 게 죄인가요? 살짝 몰래 연애하고 애 생기면 모른 척하고 버리고… 그런 사람들이 잘못이지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요? 이 사회가 자의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으로 이 사람들을 나쁘다고 단정하고 불이익을 주는 거잖아요. 그건 불의입니다. 불의를 정의로 바로잡아야죠. 우리가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부모를 못살게 굴고 제대로 생활할 수 없게 하면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나요? 부모는 아동의 터전인데, 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게 하려면 그 엄마들한테 이러면 안 되죠.”

낙태를 금지하면서 미혼모의 양육을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잔인하다. 생명의 소중함을 훈계하면서 아기를 낳은 여성의 생명과 명예를 난도질하는 세상은 위선적이다. 박영미 대표는 다시 한번 힘주어서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이제까지 부당하게 저지른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에요.”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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