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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그린 달빛'하고는 조금 다른 왕자의 사랑 이야기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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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종영을 앞두고 연일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남장 내시 라온(김유정 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9월 방송 7회만에 이미 20%의 시청률을 넘기며 KBS 월화 드라마로선 오랜만에 나온 흥행작이 되었다. 세자 혹은 왕자와의 사랑은 이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고전적인 이야기 소재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 세자들의 사랑은 어땠을까? 드라마처럼 낭만적인 사랑들이 그들에게도 있었을까? 여기 동서양 왕실 후계자들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몇 개를 모아보았다. 현실은 때로 픽션보다 드라마틱하고, 조금은 더 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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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녕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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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하얗게 내리던 동짓달이었다. 밤이 깊어가는 사직동의 한 골목길에 술 취한 사내가 비틀대며 걸어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골목 끝 대갓집 앞에 화려한 가마가 와서 멎더니 한 여인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술 취한 사내는 여인을 보자 눈이 크게 떠졌다. 눈(雪) 때문에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쓰개치마를 팔에 걸친 젊은 여인이 대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이쪽을 힐끗 쳐다보자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여인은 골목 앞에 사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떨어트린 뒤에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계집종이 총총히 따라 들어가고 대문이 덜컹 하고 닫혔다."(책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 사건', 이수광 저)

양녕대군은 본인의 '연애' 문제로 조선 왕실을 떠들썩하게 만든 드문 세자이지만, 그 연애는 세자 이영의 그것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유부녀와 저지른 불륜이었기 때문이다. 양녕대군은 중추부지사 곽선의 첩이었던 어리라는 여인을 보고 반해 그녀를 강제로 궐에 입궁시켜 관계를 가졌으며, 나중에는 아이까지 출산하게 만들었다. 세자가 신하의 부인을 겁박해 취하고 애까지 배게 한 엄청난 ‘갑질’이었다. 이는 스캔들이 되어 태종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어리를 축출하라는 태종의 명에 양녕이 적극적으로 반항한 일은 결국 그가 폐세자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 조지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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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 가는 대대로 여자에게 부도덕했지만 조지 3세는 예외적으로 성실하여 아들들을 엄하게 키우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화려한 스캔들을 뿌린 사람은 장남 조지 황태자였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되자 여배우 메리 로빈슨을 애인으로 삼았다. 이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메리는 헤어지고 나서 황태자의 열렬한 연애편지를 공표하겠다고 협박하여 일시금 5천 파운드와 매년 5백 파운드의 연금을 요구했고 조지 3세가 지불했다. 황태자의 행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책 '역사를 비틀어버린 세기의 스캔들', 운노 히로시 저)

방탕한 연애를 이야기할 때 하노버 왕가의 조지 4세가 빠질 수는 없다. 열여덟 살 때 백작부인과 불륜에 빠지더니, 나중엔 여섯 살 연상의 미망인 마리아 피츠 허버트 부인에게 매료되어 둘 사이에 무려 열 명의 자식을 두었다. 부인은 따로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만약 그가 살았던 시대가 더 옛날이었다면 이런 일들은 조용히 묻혔을지도 모르지만, 불행히도 그가 살았던 시대는 18-19세기였고, 당시 번성했던 신문들은 이런 가십들을 신나게 실어댔다. 그래서인지 두 여인 외에도 수많은 여인들과 바람을 피며 국고를 탕진하던 조지 4세가 1830년 세상을 떠났을 때 ‘더 타임스’는 '누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것인가.'라는 냉정한 헤드라인을 실었다고 한다. 황태자의 사랑과 일탈이란 때로 이렇게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법이다.

3.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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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 겐지, 히카루 겐지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이름만은 거창하고 화려하지만, 실은 겐지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실수도 적지 않게 하였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본인은 그런 애정 행각이 훗날까지 전해져 바람둥이라 가볍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은밀하게 나누었던 정사까지 낱낱이 떠벌리고 다닌 사람들이 있었으니, 사람의 입이란 얼마나 요사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겐지는 나름대로 세상 사람들을 조심하느라 겉으로는 몹시 점잖게 행세하였으므로 기실 화려하고 재미있는 얘깃거리는 별로 없었으니, 옛이야기 속 가타노의 소장이 들었으면 코웃음을 쳤을 터이지요."(책 '겐지 이야기1', 무라사키 시키부 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지고지순한 세자의 사랑을 그려냈다면, 바람둥이 세자를 그려낸 소설도 있다. 바로 11세기에 지어진 최초의 산문소설로 알려진 '겐지 이야기'이다. 주인공 히카루 겐지는 일본 덴노의 아들이지만, 난봉꾼에 가까울 정도로 온갖 여인들과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여기엔 그의 친척, 심지어 남자 하인까지도 포함되었다. 권력은 있지만 아직 큰 책임은 질 필요 없는 왕위계승자의 연애는 역시 소설 속에서도 순정보단 방탕에 가깝게 먼저 그려졌다.

4. 이사벨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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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집 세기로 유명한 공주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었다. 유럽의 대다수 공주들처럼 자신의 결혼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기는 싫었다. 그해 연말, 이사벨은 친분이 있는 전도사들을 각국에 파견하여 오라버니가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 정확히 알아오도록 지시했다...그들이 전하기에 프랑스의 신랑 후보는 도무지 큰일은 해낼 수 없는 유약하고 무능한 자였으며, 포르투갈의 국왕은 이미 마흔이 넘은 노인이었다. 군주로서의 기개는 높이 살 만했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생김새도 그리 추켜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는 '멋진 젊은이의 표상'과도 같았다...이 말을 들은 이사벨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이제 분명해졌다."(책 '여왕의 시대', 바이하이진 저)

왕위계승자의 사랑은 서양의 경우 성별을 바꿔서 진행되기도 하였다. 스페인 지역에 있던 카스티야 왕국의 계승자였던 공주 이사벨 1세는 자신의 이복오빠이자 국왕이었던 엔리케 4세가 정략결혼의 일환으로 포르투갈의 국왕과 자신의 결혼을 추진하자, 더 젊고 매력적이었던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와 비밀 결혼을 저질러버린다. 자신이 먼저 편지를 보내 페르난도에게 청혼하여 결혼 수락을 얻어냈고, 야반에 궁궐을 도주하여 세고비아란 작은 마을에 가 페르난도를 그리로 불러내었다. 그렇게 기사와 귀족 대신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작은 결혼식을 올린 둘은 쿨하게 신혼여행까지 즐기고 돌아와 평생 해로하였다고 한다. 왕위계승자건 누구건, 사랑이 '타이밍'과 '결단'의 문제라는 법칙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사벨 1세의 추진력이 유독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