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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알 수 있는 해외취업의 몇 가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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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의 선택지 중 하나로 '해외취업'이 오르내리는 건 이제 그리 낯선 현상이 아니다. 2016년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조사에 의하면 2030세대의 79%는 '기회만 되면 해외취업을 원한다.'는 답변을 내놓았고, 이미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이 10년간 21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 같은 현상은 지금 2030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생겨난 걸까? 사실 '지금, 이 곳'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취업을 모색한 사례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해외취업'의 모습이 그려진 몇 가지 장면들을 소설 속에서 뽑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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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갓댐, 스팅키 애니멀! 허리 업, 허리 업!(야이 냄새 나는 짐승새끼야! 빨리 해! 빨리!)]
가죽장화에 차양 둥근 모자를 삐딱하게 쓴 몸집 큰 백인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치고 있었다. 채찍으로 사람을 갈기지는 않았지만 채찍들이 제 몸을 치며 허공을 찢는 소리들이 소름 끼치게 울려댔다. 거기다가 거구의 백인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소리치고 있어서 분위기는 살벌하기만 했다."
(책 '아리랑1:아, 한반도', 조정래 저)

1900년대는 관청과 일제의 주도로 조선 최초의 대규모 '미국 해외취업'이 벌어졌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국민들을 역부로 파는 행위가 벌어졌던 것이다. 개중에는 스스로 돈을 벌고 싶어 자원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관원의 미움을 사서 혹은 어쩔 수 없이 진 빚을 갚기 위해 '팔려가는' 사람들이었다.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은 아버지의 병환비로 진 빚 18원을 갚고 여동생을 시집 보내기 위해 20원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는 방영근의 사연으로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외취업은 우리 근•현대사의 시작점에서부터 함께 한 현상이었다.

2. 60년대: 엘리트들의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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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았다...그들 중 더 우수하고 현실적인 친구들은 육십년대에 외국기업들이 살금살금 발을 들여놓을 적에 외국회사의 지사원으로 출발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대기업 사원 또는 신문기자가 되거나 고시에 들었다...그들의 대개는 명문대학으로 가서 서로 교제를 확대시키기 마련이었다."(책 '개밥바라기 별', 황석영 저)

해외취업은 가난한 사람들이 '여기선 정말 답이 없어서' 떠나가는 탈출구이기도 했지만, 충분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높은 계급을 얻기 위해' 나아가는 적극적인 방책이기도 했다. 소설 '개밥바라기 별'에서 주인공은 60년대 명문고등학교를 다니다 자퇴한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는 고등학교에 다녔을 당시 친구들의 이후 진로를 회상하며 그들 중 '더 우수하고 현실적인 친구들'이 거쳤던 선택지로 '유학 혹은 외국회사 취업'을 언급한다. 물론 해외로 영영 떠나진 않고 유학 후 돌아오거나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에 다니며 국내에서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갔지만 말이다. 60년대 '해외에서의 경험'은 국내로 돌아왔을 때 많은 기회를 보장해주는 희소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3. 지금: 한국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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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내가 걔 같애...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책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저)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굶을 것 같아서' 해외로 도망치지는 않는다. 혹은 예전처럼 '한국에서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로 나가지도 않는다. 지금 세대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를 담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에 의하면, 이들은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서' 한국을 떠난다. 먹고는 살지만, 정말 '먹고만 살게' 해주는 나라를 떠나 여유시간도 있고, 휴가도 충분히 주는 직장을 바라며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20대 후반 여성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담겨 있다. 교통편이 발달하고 정보 장벽이 없어진 시대에 '해외취업'은 이처럼 '팔려가거나'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이 아닌 평범한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글로벌 경쟁'이란 말은 기업과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좋은 인력들을 유치하기 위한 나라 간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