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랩 배틀의 유래일지 모르는 역사적 '배틀' 3가지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the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등의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서 랩 배틀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랩 배틀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그 중 한 책에 서술된 내용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rap battle

1. 고대 그리스에는 ‘시 배틀’이 있었다.

the

동양은 글로 재주를 겨루고 실력을 인정 받는 문화였다면, 서양은 말 솜씨가 중요했다.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경우 저작이 없고 특유의 문답법으로 수업을 진행했던 것을 봐도 그러하다. 로마 시대 브루투스는 케사르를 암살한 후 안토니우스와 암살의 정당성과 부당성에 대해 연설을 벌인다. 그 전통이 고스란히 이어져 미국은 세계 최초로 대통령 후보간 TV토론회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리스 시대에는 시로 벌이는 배틀이 있었다고 한다.

“…. 고대 그리스에는 일종의 ‘시 배틀’이 있었다. ‘capping’이라고 불렸던 이 경연에서 그리스인들은 일대일, 혹은 집단 대 집단으로 특정 주제에 관한 시 구절을 주고받으며 경쟁을 펼쳤다. 참여자들은 주제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토해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언어 유희와 비유, 때로는 조롱까지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시 배틀이 격앙될 경우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시 배틀 중의 싸움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의 시 배틀은 단순히 시와 랩의 언어적인 불가분 관계뿐만 아니라 그 경쟁적 면모 및 공격성과 관련해서도 랩 배틀과의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었다.” (책 ‘힙합’, 김봉현 저)

2. 15~16세기 스코틀랜드에는 ‘시적 언쟁’이 있었다.

the

도발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에게도 이 무렵 즈음 유명한 시적 언쟁이 있었다. 길게 이어지진 않았고, 딱 한편씩 주고 받았다. 이방원과 정몽주의 ‘하여가’와 ‘단심가’가 그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이것으로 결정되었으니 꽤나 중요한 시적 주고 받음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시적 언쟁은 훨씬 더 자극적이고 광범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라이팅(flyting) 역시 랩 배틀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플라이팅은 다툼 혹은 싸움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 ‘flitan’에서 나온 단어로, 주로 15~16세기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졌던 ‘시적 언쟁(poetic insults)’를 가리킨다. 이 언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Makars’라고 불렸고 이들은 언쟁 중에 도발, 위협, 성적 모욕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스코틀랜드 왕들의 ‘궁중 플라이팅’을 장려(?)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제임스 4세와 제임스 5세가 즉위했던 15~16세기 당시의 궁중 플라이팅 광경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제임스 5세는 자신의 플라이팅에 대한 응답으로 참여자에게 자신을 향한 모욕적 언사를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shit’이란 단어가 모욕의 의미로 쓰인 것이 이 당시가 최초라는 말도 있다. 일부 학자는 스코틀랜드의 플라이팅이 랩 배틀의 직접적인 기원이라는 좀더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흑인 노예를 부리던 노예주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노예 인구 사이로 플라이팅이 자연스럽게 전파되었고, 그것이 미국 흑인의 음악이자 문화인 힙합에도 연결되어 랩 배틀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책 ‘힙합’, 김봉현 저)

3. 미국 흑인 사회에는 오랜 설전의 전통이 있었다.

에미넴처럼 백인 출신의 래퍼도 있지만, 랩의 정통은 미국 흑인들에게 있다. 이들이 구축한 문화이기 때문에 미국 흑인 DNA가 곳곳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다. 랩 배틀의 원형이 될 만한 미국 흑인들의 설전이 있었다. 시그니파잉(signifying)으로 불리는 ‘설전’ 혹은 ‘악담하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설전’ 혹은 ‘악담하기’ 정도로 불릴 시그니파잉은 아프로-아메리칸의 음악이자 문화인 힙합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공격성, 더 나아가 랩 배틀의 발생과 형성 과정에 얽힌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그니파잉의 대표적인 예로 ‘도즌(the dozens)’이라는 게임이 있다. 두 명의 참가자가 마주 보고 서로를 향한 악담을 번갈아 퍼부으며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지속되는 이 게임에서는 외모, 부, 지위, 지능에 관한 폄하, 비아냥, 조소 등이 난무한다. …. 도즌에 대한 유래로는 나이지리아와 가나에서 일찍이 이와 비슷한 게임이 도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 혹자는 도즌의 유래를 뉴올리언스에서 횡행한 흑인 노예 거래에서 좀더 직접적으로 찾기도 한다. 당시의 흑인 노예 중에서도 몸이 성치 않거나 어딘가 하자가 있는 노예는 온전히 혼자서 팔리지 못하고 ‘도즌(12개짜리 한 묶음)’의 일부로서 ‘떨이’로 팔렸다. 그 과정 중 도즌의 일부로서 당하는 압박과 폭력에 대한 자기방어적인 대응, 그리고 흑인 노예간에 (비극적으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사투 등이 도즌 게임의 기원이라는 설명이다.” (책 ‘힙합’, 김봉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