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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 각광받았던 직업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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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직업 중 미래 후손들이 봤을 때 놀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사실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 직업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하며,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500년 후쯤 우리의 직업 중 절반 이상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할 것이다. 세상은 쉴 새 없이 바뀌고, 기술의 진화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500년~700년 전쯤으로 돌아가서 중세 유럽 사람들의 직업을 만나 보자. 고개를 갸우뚱할 준비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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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 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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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안내 책자에는 공공 장소에서 볼 일을 볼 때 동전이 필요하니 ‘반드시’ 준비하라는 문구가 나온다. 예전에는 맥도널드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면 동전이 없어도 된다는 문장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곳도 마찬가지다. 돈을 받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역사는 유럽 사람들에게는 제법 오래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길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곤 해서, 변소를 들고 다니는 직업이 존재했다.

“길거리에서 용변이 급한 사람들에게 통을 빌려주고 대소변을 누게 한 뒤 오물을 수거하는 직업이 중세에는 있었다. 좀 기이한 직업군인데, 그림의 출처가 1582년인 것을 보면 이 직업이 상당히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통을 들고 길거리를 누비면서 손님들의 대소변을 받아 냈다. 용변이 급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들고 다니던 통을 제공하고 고객의 볼 일이 끝나면 돈을 받는 것이다. …. 이들이 길거리에서 받아낸 오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고 갔으며, 또 어느 곳에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상세하게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들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날 밤에도 거리를 누비면서 이 장사를 했다는 기록은 전해진다.” (책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양태자 저)

2. 밤거리의 과자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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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마다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계절 한정 상품인 셈이다. 아마도 찹쌀떡이 쉽게 변질될 수 있는 계절을 피하다 보니 겨울이 선택되었을 것이다. 고학생의 노고를 격려해 주기 위해 ‘찹쌀떡 사려~ 메밀묵~.”이라는 외침이 들려올 때 일부러 나가 찹쌀떡을 사주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도 밤에만 파는 과자가 있었다.

“오블라텐(Oblaten, 얇고 바삭하게 구운 과자)과 와플을 파는 과자류 장수들은 밤거리에서 장사를 했다. …. 오블라텐은 밀가루에 설탕과 계란, 꿀을 섞어 만들기도 했는데 기름기가 없어서 당시 사람들은 출출할 때 야식으로 많이 사 먹었다. ….겨울철과 사육제 기간에는 오블라텐이 특히 잘 팔렸다. 겨울철에는 밤이 길어서 사람들의 배가 금세 꺼지기 때문이다. …. 사육제 기간 동안 오블라텐이 잘 팔린 이유 중 하나는 이 기간은 아무래도 단식을 해야만 했으니 종교적인 단식용으로 이 과자가 적격이었던 이유도 있었다. …. 1667년부터 가로등이 생기면서 밤거리에서 오블라텐을 팔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책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양태자 저)

3. 길거리의 커피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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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엔제리너스커피, 탐앤탐스, 할리스커피, 이디야커피 등 국내 주요 6개 커피전문점의 매장 수는 총 5508개로 지난해보다 380여개(7.4%)가량 더 늘었다고 한다. 변함 없는 우리들의 커피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수치다. 중세 유럽에도 커피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거리에서 커피를 파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파리에 커피가 들어온 해는 1654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20년 후 거리에는 커피 파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 역시 이른 아침에 거리로 나와 와인 장수들처럼 커피를 팔았다. 설탕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라 설탕 대신 우유를 커피에 넣어서 먹었는데 이것이 우유커피(카페라떼)의 전신이 되었다. 주로 아침 일찍 일터로 나섰던 노동자들이 지나가면서 이 커피를 마셨다. 이를 사 먹는 것은 당시 최고의 사치에 속했다.” (책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양태자 저)

4. 돈을 많이 번 향신료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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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는 유럽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 아이템이었다. 그 덕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생각도 세웠다. 아랍 상인 등에게 떼어주는 거래 수수료를 절약하고, 자신이 큰 돈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고기가 주식이었던 유럽인들에게 향신료는 한번 사용하면 끊기 어려운 유혹이었으리라.

“1650년경에는 600명이 넘는 향신료 장수들이 거리에서 장사를 했다. 향신료 장수가 파리에만 600명에 달했다는 기록을 보면 당시에는 향신료가 물 못지않게 중요한 재료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도 향신료는 빠질 수 없는 식재료라 가정마다 상비해 두고 있지만 지금과 사뭇 다른 점은 당시 사람들은 거리에서 향신료를 구입했다는 사실이다. …. 향신료를 만들어 파는 것은 돈벌이가 쏠쏠했다. 향신료 장수들이 향신료를 팔고 난 뒤 많은 돈을 들고 살롱으로 가서 부자를 만났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들은 살롱에서 만난 부자에게 자신이 가지고 온 돈을 쏟아 보여준 뒤 자기 아들이나 딸이 부가의 자식들과 결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졸랐다. 오늘날로 치면 부는 축적하였으나 명예가 부족하니 자식들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하고픈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책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양태자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