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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의 작품 A to Z : 이승환 '당부'에서 싸이 '행오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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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감독 차은택은 정치적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2000년대, 뮤직비디오와 CF계의 미다스 손이었다. 신문, 잡지, 방송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건 '긍정'의 의미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하반기에 들면서, 신문의 문화면이 아닌 정치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모금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과 각종 문화계 권력을 행사한 '부정적' 인물로 부각됐다. 그는 왜 문화계에서 정치계로 왜 옮겨갔을까. 그의 말처럼 "고객들이 저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면서"부터였을까. 그의 작품을 더듬어봤다. 해석도 보탰다.

1. 이승환 '당부'(1999년)



차은택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99년에 발표된 이승환의 6집 '당부'에서였다. 뮤직비디오 인트로에서부터 '감독-차은택'이라는 자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자막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을 생각해보면, 마치 그의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어떤'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야기는 진부하다. 짝사랑한 부잣집의 소녀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동양적인 색채로 그려낸 작품. 당시, 언론들은 이 작품을 한국 뮤직비디오의 문법을 한 차원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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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발표된 이승환의 '당부'는 지난 4∼5년 사이 국내 뮤직비디오의 주류로 자리잡은 ‘드라마타이즈(dramatize) 뮤직비디오’의 한 정점으로 기억될 법한 작품. 중국 전통 음악풍의 선율에 어울리는 시대극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동양적인 색감, 세심한 디테일이 뒷받침된 인물들의 감정 연출은, 완성도 높은 한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 뮤직비디오는 이승환의 신보에 눈길을 모으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고,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한국영상음반대상 등 그해 뮤직비디오 관련 트로피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씨네21, 2002년12월7일)

2. 브라운 아이즈 '벌써 1년'(2001년)

200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 K-pop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인기와는 다소 결이 다른 전성기였다. 댄스, 발라드, 테크노 등 한국 음악 고유의 색깔을 다양했기 때문이다. '브라운 아이즈'는 한국형 R&B를 보여줬다. 차은택 감독은 여기에 9분짜리 드라마타이즈의 뮤직비디오를 덧입혔다. '와호장룡'의 장첸과 이범수, 김현주의 삼각관계 이야기. 복서인 두 남자와 그들의 매니저 역인 김현주의 갈등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었다. 그는 조성모 '투 헤븐'처럼 주인공이 죽거나 비명횡사하는 최루성 멜로 이야기를 지양했다. 대중들은 차은택 스타일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3. 명성황후 O.S.T '나 가거든' (2001년)

드라마 '명성황후'와는 별개로 만들어진 이 뮤직비디오는 '민비'로 격하돼 불렸던 '명성황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마저 바꿔놓을 정도로 반향이 컸다. 1895년에 있었던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재현한 이 작품에서 명성황후로 나온 이미연의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울부짖음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 대중들은 조선말기의 비참한 역사에 감정 이입을 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최근 영화 '덕혜옹주'의 인기는 '명성황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4. 뮤직비디오 황태자, CF도 '드라마타이즈'로

그가 손대면 안 되는 뮤직비디오는 없었다. 이승환 '그대는 모릅니다'(1999년), '그대가 그대를'(2000년), 신승훈의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2000년)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2002년), 김장훈의 '난 남자다'(2001년),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2001년) 등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SKT '붉은 악마' 시리즈, 배우 정우성, 조인성, 전지현의 '2% 부족할 때', 이효리의 '애니모션' 등 수많은 CF를 만들어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골든 디스크 뮤직비디오 감독상을 세 차례(2001년, 2005년, 2006년) 수상하였고 칸 국제광고제 뉴미디어부문 금상(2002년)을 탔다.

4-1. '2% 부족할 때'(1999년)

특히 '2% 부족할 때'는 생전 없던 '복숭아향맛' 음료시장 개척함과 더불어 "가, 가라말이야"라는 대표적인 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이는 유미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는 노래까지 차트에 올려놓음으로써 차은택의 진가를 확인해주는 계기가 됐다.

4-2. 삼성-이효리 '애니모션'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2G 휴대폰 시절. 삼성 '애니콜'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당시는 빅 모델을 내세워 자사 핸드폰을 브랜딩 하는 시절이었다. '텐 미닛'으로 인기 정점에 올랐던 이효리가 당대 1위의 인기를 구가했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CF에 출연하는 건 당연해보였다. 에릭 등과 함께 '애니모션'은 댄서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 이후 권상우, 에릭 등과 '애니클럽'으로 시리즈를 이어갔다.

4-3. 그는 광고쟁이였다

차은택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초기 꿈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을 펼치기도 했지만, 광고 프로덕션에서 편집기를 잡고 광고 편집을 하면서 광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씨네21 2002년12월7일 보도에 따르면 졸업 뒤에는 코래드의 자체 제작 프로덕션인 한국비젼을 거쳐 영상인 프로덕션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친구가 된 박명천 감독과 함께 조감독으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광고에 뛰어들었다.

광고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의 관심사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98년 홍콩에서 ‘드비어스 다이아몬드-world wide편’을 촬영할 때는, 방으로 걸어 들어와 의자에 앉는 모델 설수진의 몸라인이 내심 그려본 X자 구도에 맞지 않는다고 몇 차례 다시 찍었을 정도. ‘라노스-안정환 편’을 찍을 때까지도 어떤 구도가 좋은지, 뒤에 배경이 어떤지, 한컷 한컷 그림을 생각하기 바빴다. “지금 찍는다면 모델의 감정도 좀 잡고, 캐릭터를 살렸을 것”이라며 배경이나 장치를 보는 눈은 하나의 장기로 남겨두겠다는 그는, 인물과 감정이 보이는 이야기를 재차 강조한다.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연출을 공부하고, 부부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하수구를 통해 들리는 소리에 중독되는 남자에 대한 단편영화 '하수구'를 찍어본 경험도 이에 일조했다. (씨네21, 2002년 12월7일)

5. 빅뱅, 이효리, 싸이를 만나다

한때 반짝하고 그쳤던 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빅뱅과 이효리, 싸이를 만나 제2의 차은택 시대를 열어갔다.

5-1. 빅뱅 '거짓말'(2008년)

'드라마타이즈'는 차은택의 주무기였다. 빅뱅의 '거짓말' 도입부도 그렇게 시작하는 듯 하다. 빅뱅이 연기를 하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기승전결로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다. 세월에 흐름에 따라 더는 대형 뮤직비디오를 선호하지 않는 유행 탓이컸다. 이제 10분짜리 뮤직비디오는 찍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뮤직비디오가 예전보다 힘이 빠진 모습이다.

5-2. 이효리 '유고걸' (2011년) '미스코리아'(2013년)

더 이상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뮤직비디오 안에 스토리가 녹여져 있긴 하지만, 영상은 음악과 춤에 집중한다. 이야기 대신 세트와 의상 등 미장센에 더 신경쓴다. 이는 차 감독의 스타일에 이효리의 개성이 녹인 모습이다. 그는 이효리를 이렇게 평가한다.

"'섹시 아이콘'이지만 대단한 학습형이에요. 작품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어떨 때는 '감독님 이런 걸 봤느냐'고 책 수십 권과 영상 자료를 제게 가져와요. 자기 주장이 세요. 소품 하나까지 까다로워요. 이런 효리씨 모습이 좋았어요." (2016년1월14일, 조선일보)


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2011년)


이효리의 '미스코리아(2013년)

5-3. 싸이 '행 오버'(2014년)

차 감독과 싸이는 오랜 세월 호흡을 맞췄다. 싸이가 월드스타가 되기 전부터 '연예인' '라잇나우' 등을 연출했다. 조수현 감독이 만든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대박난 이후, '행 오버'를 통해 다시 차 감독과 만나게 된다. 이 뮤직비디오의 특이점은 스눕독의 출연이다. 한국의 특이한 편의점, 찜질방, 월미도, 당구장, 소주, 폭탄주 등이 등장한다. 이것들이 한 데 뒤섞이면서 굉장히 '싸이'스러운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다. '젠틀맨' 등의 뮤직비디오와 큰 차이가 없다. 차 감독의 스타일과는 굉장히 멀어졌다. 이제 더 이상 '차은택'이라는 이름을 뮤직비디오 안에서 찾기는 어렵다.

차 감독은 '행오버' 이후 싸이의 '대디'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어했다. 주부생활 2014년7월호에 따르면 "다름 사람이 찍는다고 하면 질투날 거 같다"고 할 정도로 욕심을 냈지만 싸이는 '강남스타일'의 조수현 감독을 택했다.

5-4. '국뽕' 스타일에 도전하다

지난 2012년 차은택 본부장이 제작을 맡은 2012 런던올림픽(London Olympic) 응원가 KOREA(코리아) 뮤직비디오는 경복궁, 농악, 태권도, 아리랑 등 한국이 집대성 된 작품이다. 2012년인 같은 해, MBC '무한도전'이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릴 한국의 비빔밥 광고를 찍을 때, 감독을 맡았다. 두 작품은 '한국의 맛과 멋'을 이야기한다. 요란해보이고 애국심이 고취될 법한 마법을 영상 군데군데 부렸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6. 차은택은 내려와야 할 때가 온 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하산 대신 다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감독이 됐으니 이제는 내리막을 타는 감독이 될 거라고 주변에서 예측도 한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계속 성장하는 중이라 생각한다." (2014년7월, 주부생활)

"나름대로 최고라고 자신했는데, 어느 순간 직감이랄까, 내가 밀려나고 있는 게 아닌가 위기감을 느꼈어요. 내가 내려오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 너무 불안했어요." (2016년1월4일, 조선일보)


'정상'에 섰던 차은택이 내려와야 하는 시점이라는 걸 인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년 정도였다. 그리고 하산을 선택하는 것 대신, 다른 산을 타기로 결심했다. 민간에서 정부 영역으로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에서 인천아시안게임 영상감독, 밀라노 엑스포 전시관 영상감독, 창조경제추진단장,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김상률 씨의 외조카다.

'방향 전환'에 성공하는 듯 했다. 그가 하고자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경전이 대기업에 자금 모금을 해 만들어진 '미르' 재단은 차은택의 사람으로 채워졌고, 대통령과 독대하는 사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가 손을 대면, 국책사업도 하루 아침에 바꼈다.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야 저 사람 도대체 누구를 알아서 말만 하면 바로바로 되나…." (TV조선, 7월29일)

중앙일보 9월27일 보도에 따르면 광고업계에서 일했던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저도 문화예술계에서 일했는데 이번 국감을 준비하면서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너무나 많은 제보를 받고 있다"며 "차은택 감독에게 줄을 서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문화 관련 부서에 넣고, (권력을 활용해) 광고업계의 시장질서까지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환, 이효리, 김장훈, 싸이 등과 어울리던 차은택은 이제 없다. 그는 다시, 컴백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가 끝난 뒤, 그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벌서부터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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