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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을 겪은 우리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닮지 말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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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진도 5.8의 지진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역대 최고 강도의 지진인데다가, 국민안전처와 한수원의 무력한 모습이 더욱 충격의 강도를 높였다.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후 8~9분이 지나서야 일부 사람들에게만 문자를 보냈고 홈페이지는 3시간 가량 먹통이었으며, 한수원은 지진 발생 3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원전을 정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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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진에 우리가 특히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근처에 있는 월성, 고리 원전의 사고 가능성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이미 우리는 원전 사고의 치명적인 영향력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어떠한 문제점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을까? 우리가 절대 닮으면 안 되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한 일본과 국내 언론인, 작가들의 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려보았다. 사실, 대부분이 우리에게도 있는 문제점들이다.

1. 독립된 견제기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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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후 분석가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한 것은 원전의 안전 관리 체제다...원전의 안전 규제에 대한 실질적인 업무는 원전의 안전 심사와 정기 검사, 방재 대책 등을 당하는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수행했다...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후의 상황을 보면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이 적절히 기능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원전 사고 원인의 핵심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은 안전 관리 거버넌스의 문제다. 즉, 안전 규제 기관인 원자력 안전 보안원이 원자력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어서 하나의 정부 부처가 규제와 진흥 업무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이다. 규제기관인 안전보안원이 국책으로서 원자력을 추진하는 상부 기관인 경제산업성의 정책 목표에 영향을 받으므로 실효적•독립적인 감독이 불가능하고, 엄격한 감시 기능도 기대하기 어렵다. '보안원은 원전 추진에 보증서를 발급하는 기관'이라고 비판 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책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의 진로', 김기석 저)

일본엔 '원자력무라(村)'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원자력 마을, 우리 식으론 '원자력 마피아'라고 번역되는 단어다. ‘원자력무라’는 원전 진흥 정책을 결정하는 관청인 경제산업성, 원전 안전을 감독하는 원자력안전보안원, 원전 건설 및 관리의 실무적 부분을 담당하는 도쿄전력으로 구성된다. 서로 견제해야 하는 이들 셋이 하나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원자력무라'가 된 데에는 '아마쿠다리', 우리말로 '낙하신 인사'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원자력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이 안전보안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경제산업성 관료가 퇴직 후 도쿄전력에 '전관예우'를 받으며 재취업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런 풍경을 통해 철저해야 했던 안전 검사는 갈수록 해이해져 갔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정부가 '안전하다'는 홍보를 통해 국민들을 안심시키며 원전 밀집 단지를 늘려가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위험을 키우는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결국, '위험하다'는 경고를 제때 해낼 수 있는 조직은 없었다.

*일본은 사고 이후 원자력안전보안원을 해체하고 경제 산업성과 분리된 '원자력 규제위원회'를 신설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무진이 과거 안전보안원 출신이며, 위원의 과반수가 원전 안전보단 진흥 정책에 찬성해왔던 기득권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책은 지적하고 있다.

2. 최악은 가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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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부사장은 후쿠시마로 향하는 헬리콥터 안에서 분명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상을 초월하는 대형 쓰나미가 어느 날엔가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기지를 덮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원전이 막아낼 수 있는 최대 쓰나미 높이는 5.7m. 그러나 과거에 그보다 훨씬 높은 규모인 10m인 대형 쓰나미가 이 지역을 강타한 적이 있는 만큼, 어쩌면 어느 날엔가 자신들의 원전을 다시 덮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원자력 부문 우두머리인 무토 부사장은 그 대책을 무엇 하나 마련한 게 없었던 것이다."(책 '멜트다운', 오시카 야스아키 저)

사고 직후 도쿄전력은 원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반복적으로 10m 이상의 쓰나미는 '상정 외(예상 외)'의 사태였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책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마쓰오카 순지 저).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2011년 3월 7일, 도쿄전력은 원자력안전보안원으로부터 기존 예상치를 뛰어넘는 쓰나미가 동일본 지역을 덮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거기엔 그 파고가 15m를 넘길 수도 있다는 꽤 정확한 수치까지 제공되어 있었다(책 '멜트다운', 오시카 야스아키 저). 또한 일본 내 연구자들은 이미 1990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10m가 넘는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이 있음을 정부에 경고한 적도 있었다(책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마쓰오카 순지 저). 그러나 다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고, 대책 마련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악은 가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순간에 벌어질 수 있는 압력용기 및 격납용기가 모두 파괴된 상황과 비상용 자체 전원마저 모두 망가진 경우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결국 멜트다운을 제때 막지 못하는 대참사를 불러왔다(책 '일본 대재해의 교훈', 다케나카 헤이조 저). 최악은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도 한 번 일어나면 끝이기에 항상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본 정부는 잊고 있었다.

* 멜트다운(MeltDown) :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어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하여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 녹아내리면서 물을 증발시키고, 방사능증기를 대기 속에 방출하면 그 핵분열 파생물은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출처: 네이버 두산백과).

3. 안전에 꼭 필요한 정보가 은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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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안전규제기관으로서의 문제점은 왜 이렇듯 정보를 은폐하고 거짓을 말하였는가에 있다. 여기에는 멜트다운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원자력안전보안원의 내부 혹은 경제산업성이라고 하는 관료조직 내부의 정치적 의사였는지 또는 수상 관저 등 정치가의 의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책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마쓰오카 순지 저)

일본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두 개의 안전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ERSS, 또 하나는 SPEEDI이다. 전자는 원자로에서 실제 멜트다운이 일어날지 아닐지를 예측하는 시스템이었고, 후자는 만약 일어났다면 유출된 방사능이 어느 지역에, 얼마나 넓게, 얼마나 빨리 확산될지를 예측하는 시스템이었다. 둘 다 피난 명령을 내릴 지역과 시간을 설정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 두 시스템은 매우 잘 가동되었다. 원자력 안전보안원은 ERSS를 통해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의 멜트다운이 3월 12일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고, 실제 3월 11일 1호기, 14일 2호기가 멜트다운을 일으키면서 이 예측은 상당부분 맞아떨어졌다. 또한 3월 15일 문부과학성은 SPEEDI를 통해 20km권외에 위치한 나미에마치 지역이 100시간 내로 심각한 방사능 오염지역이 될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자력 안전보안원이 공식적으로 멜트다운을 인정한 시점은 2011년 5월 12일이었다. 3월 11일 사고 당일 멜트다운을 예측한 날로부터 2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나마도 도쿄전력이 멜트다운을 발표한 이후에야 한 뒤늦은 인정이었다. 또한 나미에마치 지역은 2011년 4월 11일이 되어서야 정부의 공식적인 피난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꼭 필요했던 시점으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후였다. 그리고 5월 2일 호소노 수상 보좌관은 "(국민들이)패닉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는 발언을 한다. 기술은 완벽했지만, 그 기술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구가 정보를 은폐하면서 막을 수 있던 피해를 막지 못했다.

4. 제대로 된 컨트롤 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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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주도의 지휘계통은 정부의 실력부족 때문에 기능하지 못하고, 도쿄전력 주도의 사고대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쿄전력은 거대기업이라고는 하나, 그 동원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를 전부 가동할 수 잇는 체제도 아니다. 도쿄전력이나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기업들이 모든 수습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게 된 것이다...도쿄전력에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원자로 노심에 해수주입이 늦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해수주입은 원자로 전체의 부식을 초래하여 재가동을 곤란하게 하기 때문이다."(책 '일본 대재해의 교훈', 다케나카 헤이조 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있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저 도쿄전력에 사고 대책을 일임한 상태로 기본적인 요구만을 했을 뿐이다. 수상관저에는 법에 따라 '위기관리센터'라는 것이 마련되어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도 나름의 활동을 했지만, 각 성(省(부처)) 사람들의 기계적인 결합에 불과했던 센터 내 직원들은 자기네 부처에 책임이 돌아갈 지도 모르는 과제를 자발적으로 맡으려 하지 않았다. 정부 관료들이 수동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사고 대책 업무를 국가가 아닌 도쿄전력이란 기업이 맡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가용한 전문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위급 상황을 대비한 훈련된 국가 주도의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결국 최악의 사고의 한 원인이 되었다. 9월 12일 경주 지진 이후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