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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됐는데 아무도 연구의 내용이 뭔지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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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물리학상이 발표되고 전 세계의 모든 기자가 패닉에 빠졌다. 이들의 업적이 워낙 깊은 개념이라 설명하는 건 둘째 치고 이해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부분의 기자는 내용을 모른 채 발표를 받아 적어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이들의 업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셀 수 있다고 확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노벨 위원회의 발표와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업적을 (많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근사하게 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어제(한국시각 10월 4일) 노벨 위원회와 왕립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는 데이비드 J 사울레스(82) 미국 워싱턴대 교수, 던컨 M 홀데인(65)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J 마이클 코스털리츠(73)를 2016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을 위상수학의 개념을 활용해 이론적으로 설명한 과학자들에게 수여합니다."

이어 기자회견 장에서 노벨 위원회의 이론 물리학자인 토르스 한스 한손은 이들의 업적을 설명했다.

그는 시나몬 번, 베이글, 프레츨을 들고나와 일단 위상수학(Topology, 토폴러지)의 개념에 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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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이 건 다 다른 빵입니다. 이건 짜고, 이건 달고 모양도 다르죠. 그러나 위상수학자가 보기에 중요한 건 딱 하나입니다. 바로 구멍의 개수입니다." (시나몬 번은 구멍이 없고, 베이글은 구멍 1개, 프레츨은 구멍 2개)

이 빵들의 구멍의 개수를 위상수학에서는 '위상불변성'이라고 부른다. 빵을 잡아 뜯어서 끊어버리지 않는 한 이 빵들의 위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

주목할 점은 이 위상수학적 특성이 '정수'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베이글에 구멍이 1개나 2개 있을지는 몰라도 1.238개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근데 대체 이게 물리학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한손 교수는 이어서 1980년대의 한 연구를 소개한다. 독일 물리학자 클라우스 폰 클리칭은 '양자 홀 효과'(quantum Hall effect)라는 현상을 실험적으로 발견했다.

일반적인 '홀 효과'에서는 전류와 자장에 수직인 방향으로 전장이 생긴다. 전류와 자장과 전장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면 일단 건너뛰어도 된다. 이때 전도도가 자장에 '반비례'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폰 클리칭이 발견한 것은 특정 조건(극초저온의 2차원 반도체면)에서는 전도도가 자기장의 세기에 반비례(연속)해서 변화하지 않고 정수 분의 1배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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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궁금했다. '홀효과가 왜 특정한 조건에서는 불연속적으로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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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략하게는 "왜 빨간 선처럼 쭉 이어지지 않고 뚝뚝 떨어지는가?"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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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레스와 홀데인은 극저온에서 자기장에 의한 전도도의 불연속적 변화(정수의 역수)가 위상의 변화(정수) 때문이라는 걸 이론적으로 밝혔다.

노벨 위원회는 사울레스는 1983년 위상수학의 불연속적 개념을 통해 '낮은 온도와 강력한 자기장 아래서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했고 비슷한 시기에 홀데인은 자기 원자선(Magnetic atomic chain)을 분석하던 중 매우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이 둘이 1983년에 머릿속으로 발견한 위상수학적인 이론이 1980년에 실험적으로 발견한 현상을 설명해 낸 것이다.

홀데인은 1988년 반도체 면에서 자장이 없이도 위상적 양자 유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노벨 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그는 자신의 이론이 실험적으로 증명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후 2014년 절대 0도에서 원자를 이용한 실험으로 그의 이론이 입증되었다.

일단, 잘은 모르겠지만 홀데인와 사울리스의 업적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코스털리츠는 왜 노벨상을 받았을까?

이들의 업적은 사울레스와 코스털리츠가 1970년대에 발견한 '위상수학적 상전이 이론'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코스털리츠와 사울레스는 1970년대 초에 위상수학의 개념을 활용해 상전이(phase transition·물질의 정돈 상태가 변하는 것)에 대한 기존 이론을 뒤집어 전세계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일반적으로 물체의 '상'이 변한다고 하면 우리는 수증기가 물이 되고 물이 얼음이 되는 걸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2차원에서는 어떻게 될까? 상전이가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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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위원회는 배포된 자료에서 이전까지 연구자들은 평면에서는 절대 온도에 가깝더라도 2차원에서는 온도의 변동이 모든 질서를 파괴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질서가 파괴된 2차원의 세계라면 단연히 '상'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고, 상이 없다면 '상전이'가 일어날 수 없다.

사울리스와 코스털리츠는 액화 헬륨을 사용해 극 초저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온도의 변화에 따라 '양자 소용돌이'(Quantum vortex)가 상(phase)을 형성하고 온도에 따라 이 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 그림 왼쪽에 표현된 바와 같이 저온에서는 정박한 배처럼 항 쌍을 이뤄 마치 프레츨과 같은 소용돌이의 형태를 띠었다면 높은 온도에서는 오른쪽처럼 떨어져 베이글 모양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것.

연합뉴스는 코스털리츠와 사울레스가 이런 경우에도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온도가 올라가면 초전도 현상이 사라지는 상전이의 메커니즘을 밝혀 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런 메커니즘은 코스털리츠와 사울레스의 이름을 따 'KT 상전이', 또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바딤 르보비치 베레진스키(Vadim L'vovich Berezinski·사망)의 이름까지 덧붙여 'BKT 상전이'라고 불리며, 물리학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홀데인은 '양자 스핀 체인'(quantum spin chain)이라고 불리는 양자역학적 시스템의 성질을 이론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일부 물질에서 발견되는 원자 수준의 자기적 성질을 규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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