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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결정적인 순간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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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 발명품이 있다. 종이, 나침반, 화약이다. 그런데 이들 못지 않게 주변 국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발명품이 존재한다. 바로 소설 ‘삼국지’다. 다양한 삼국지 버전이 있고 해석도 제각각이다. 읽을수록 내용과 교훈이 달리 다가온다. 좋아하는 인물도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삼국지의 방대한 내용에서 몇 가지 역사적 순간을 뽑아냈다. 이때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삼국지’를 맛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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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조가 원소 아래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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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천하삼분지계에 의해 조조, 손권, 유비가 천하를 셋으로 나누면서 벌어진 일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조조에게도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혼자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원소 아래로 들어갈 생각까지 하였다.

“조조와 여포는 거의 100일 이상 대치했으나 끝내 어느 한쪽이 먼저 대결을 풀지 않았다. …. 조조가 동아로 돌아오자 큰 형님뻘인 원소가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동생, 자네는 겨우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를 두고 무슨 힘을 그리 쏟아 붓소. 그냥 나를 따라 하시오. …. 여포가 또 다시 괴롭히면 내가 그대를 도와 혼내주겠소. 하지만 자네도 단단히 마음먹고 내 부하노릇을 잘해야 할 것이오.” 조조는 연주를 잃은 데다 군량마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에서 잠시 정신이 나가 원소의 제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주공이 바보짓을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정욱이 끼어들어 말했다. …. 조조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맞다. 옛말에 닭 대가리가 될지언정 소 꼬리는 되지 말라고 했거늘, 내 어찌 원소의 군대에 편입된단 말인가.” (책 ‘위안텅페이 삼국지 강의’, 위안텅페이 저)

2. 제갈공명이 유비를 직접 찾아왔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 이야기는 익숙하다. ‘삼고초려’가 워낙 유명한 탓이다. 유비가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만 세웠어도 이들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이런 유비를 보며 천하 통일은 어렵지만 3분의 1은 구할 수 있으리라 믿은 제갈공명의 선택도 빛났다. 그런데 이와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 결과는 같았다.

“제갈량이 형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을 때 형주가 매우 위급한 상황임을 직시했으나 유표가 연로하여 진취적이지 못하고 군사 업무에 밝지 못한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유비를 찾아 갔다. 유비가 보기에 제갈량은 그저 젊고 준수한 공자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저 재주 많은 젊은이 정도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떠났는데 제갈량만 혼자 남아 있었다. …. 제갈량이 유비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장군께서는 천하의 큰 영웅으로 원대한 포부가 있으실 것 같은데 어찌하여 매듭만 엮고 계신 것입니까?” …. “난들 죽고 싶겠고? 방법이 없어 이러는 것 아니겠소.” 제갈량이 말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 이렇게 하면 형주가 강대해질 것입니다.” …. 유비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말랬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오. 그대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제갈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갈공명이라 합니다” 유비가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상대가 누군 줄 알고 말했다. “아, 당신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와룡선생이시구려. 정말 실례했소이다.” (책 ‘위안텅페이 삼국지 강의’, 위안텅페이 저)

3. 관우와 손권이 사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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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에게는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장수가 관우였다. 장비는 어딘가 부족했고, 조자룡은 함께 한 시간이 이들만 못했다. 후에 투항한 마초는 한 지역을 맡길 만했지만 자신 때문에 촉땅을 얻었다는 생각이 강해 초반에 유비에게 자호를 부르는 등 결례를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형주를 관우가 홀로 지키게 되었다. 이때 오나라는 촉과 관계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다. 하필 상대는 우직하고 꾀를 부릴 줄 모르던 관우였다.

“손권은 유비와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관우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아들을 관우의 딸에게 장가보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관우는 손권이 보낸 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혼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호장의 여식을 어찌 개의 자식에게 시집보내겠는가?” 손권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혼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야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내가 강동의 주인인데 기껏해야 한중왕의 부하에 지나지 않는 네놈이 감히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는가? …. 결국 이렇게 해서 쌍방의 관계는 더욱 더 교착상태가 되고 말았다.” (책 ‘위안텅페이 삼국지 강의’, 위안텅페이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