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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인기 직업 3가지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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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9단에게 승리하는 것을 본 이후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혹자는 당장 우리의 삶이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콘크리트공, 손해사정인, 관제사, 의사 등이 사라질 공산이 큰 직종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지휘자, 작곡가, 연주자 등 예술가는 가장 대체하기 힘든 직군으로 꼽혔다. 기술이 진보하고 사회적 배경이 바뀌면서 직업은 늘 명멸해 왔다. 예전에는 나름 인기 직업이었지만, 지금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직업 3가지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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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리의 네트워커, 전화교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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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고 정보에의 접근이 제한되던 시절에는 (국번 없이)114를 활발히 이용했다. 원하는 전화번호가 등재가 안 되어 있을 때 조금 더 상세히 설명을 하던 기억들이 기성세대들에게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114서비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 전화가 막 등장하면서 새로 생겨난 직업이 있다. 바로 전화교환수다. 전화를 원하는 곳으로 연결해 주던 직업이다.

“’여자 전화교환수’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모시 모시, 하이, 하이, 난방?(여보세요, 네, 몇 번이십니까?)”을 외치기 시작한 것은 조선에 전화가 도입된 이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전화가 도입되던 초기에는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전화교환수로 근무했다. 설마 그들이 꾀꼬리 같은 하이 톤의 목소리로 ‘하이, 하이’를 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화를 발명한 유럽의 전화 회사들도 초기에는 남성 전화교환수를 고용했다. 하지만 남성 전화교환수들의 불성실한 업무 태도와 비속하고 거친 말투 때문에 종종 고객과의 마찰이 일어나자 전화교환수 자리는 여성으로 대체되었다. …. 1920년대에 들어 전화기의 보급이 증가하자 여성 전화교환수가 등장했으며, 여성들 사이에서 전화교환수는 새로운 직업으로 각광받았다.” (책 ‘사라진 직업의 역사’ 이승원 저)

2. 모던 엔터테이너, 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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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성우들이 더빙한 영화보다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가 더 많다. 인기 성우는 실제 그 배우와 동일시 되기도 했다. 배한성씨하면 맥가이버처럼 여겨지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목소리 연기자가 성우가 아니었다. 바로 변사였다. 이들은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이들을 울리고 웃기는 역할을 하였다.

“옛날의 변사들은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만 했다. 특히 의음(음향효과)을 내느라고 그들은 무척 골몰했는데, 예를 들면 대포 소리나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소리 대신에 북을 두드렸고, 격투 장면에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실감을 내기 위해 테이블을 쿵쿵 치면서 호들갑을 떨어야 했던 것이다. 영사 개시 전에는 의례히 악대가 흥겹게 행진곡도 연주했고, 한껏 모양을 낸 변사가 무대에 나타나면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지정된 자리에 앉은 변사는 갖은 애교를 다 부리면서 청산유수와 같은 열변을 한바탕 늘어놓기 일쑤였다."(책 ‘사라진 직업의 역사’ 중 재인용 책 ‘한국영화측면비사’, 안종화 저)

3. 토털 헬스 케어? 물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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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사다 먹는 것이 지금은 어색하지가 않다. 마트에서 사오기도 하고, 주문해서 먹기도 하고, 생수통을 배달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상수도 시설이 워낙 잘 갖추어진 지금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상수도 시설이 전무했던 시절에 존재했던 직업이 물장수였다. 특히 외국인들의 눈에는 물장수의 존재가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19세기만 해도 흔히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사람들은 대부분 상수도를 통해 식수를 공급받았다. 서구에서 상수도를 도입한 것은 전염병 때문이었다. 19세기 초 유럽은 콜레라로 몸살을 앓았다. …. 이 중에서도 상수도와 하수도의 정비가 먼저 실시되었다. …. 외국인들이 물장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 것은 단지 ‘물장수’라는 직업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인들이 물장수를 통해 식수를 사먹는 풍속이 더 신기했던 것이다. 외국인들은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는 조선인들의 풍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조선의 우물은 매우 불결했다. …. 어떻게 저렇게 더러운 물을 먹고 살아간단 말인가! 아, 불결하기 그지없는 조선인들이여!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물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외국인들은 한양과 같은 도시에 상수도 시설이 없다는 데 더더욱 놀랐다. 그렇기에 식수를 배달해주는 물장수의 존재가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결국 물장수의 존재는 조선이 비위생적인 나라이자 ‘미개한’ 나라임을 증명하는 직업이었던 셈이었다.”(책 ‘사라진 직업의 역사’ 이승원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