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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요했던 3개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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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연합뉴스는 독일의 제약, 화학 기업 바이엘이 미국 종자 기업 몬산토를 660억 달러(약 74조2천800억 원, 채권 포함)에 인수하기로 양사가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바이엘은 세계최대 농업회사 중 하나가 되었고 종자 및 살충제 산업의 약 25%를 바이엘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에게는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세계적 제약 기업 바이엘이 엄청난 액수를 투자하며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바로 ‘씨앗’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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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씨앗은 우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우리는 바이엘보다 훨씬 더 씨앗에 사활을 걸었을지 모른다. 농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씨앗을 심어 일정 양의 곡물을 수확하는 것은 우리 생존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 외에 씨앗은 우리 역사 속 어떤 장면에서 등장했을까?

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원하던 향신료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맛있는 열매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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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은 조선이 건국된 해이고, 정확히 200년 후인 1592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다. 그 가운데인 1492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들 기준에서의) 신대륙을 발견한 해다.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한 인물로 기억을 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당초 목표가 신대륙 발견이 아닌 이국적 향신료를 가져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새로운 식물을 만날 때마다 혹시 계피가 아닌지 힌트라도 얻기 위해 나무껍질의 냄새를 맡았으며 정향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봉오리의 맛을 보았고 생강을 찾기 위해 뿌리를 긁어보곤 했다. 그런 다음에는 육두구, 메이스, 후추 등 당대 가장 값비싼 향신료의 본산지인 열매 쪽으로 관심을 돌렸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어떤 대륙인지 알지 못한 채로 무덤 속으로 들어갔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았다. 자신이 다른 후추를 찾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지(aji)가 많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먹는 후추로, 우리가 먹는 후추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었다.” 그는 히스파니올라에서 지역민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이렇게 썼다. 콜럼버스는 검은 후추가 자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씨앗과 열매의 모양이나 색깔은 물론 맛과 매운 정도가 달랐기 때문에 이것이 다른 향신료라는 것을 알았다. …. 실제로 콜럼버스와 그가 발견한 고추는 궁극적으로 향신료 산업 전체를 바꿔놓았다. 바다 건너 가져온 씨앗을 통해 고추가 여느 다른 작물과 같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알맞은 조건만 마련되면 원산지 지역을 훨씬 벗어나서도 잘 자랄 수 있었다.” (책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저)

2. 가브리엘-마티유 드 클리유는 커피나무를 가져와 중남미에 널리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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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만큼 전세계인의 사랑을 고루 받는 음료도 드물다. 산지 또한 다양하다. 이코노미인사이트에 따르면,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9 2013년 기준으로 커피 수출 1위 브라질, 2위 베트남, 3위 인도네시아, 4위 콜롬비아, 5위 인도, 6위 온두라스, 7위 우간다, 8위 과테말라, 9위 멕시코, 10위 에티오피아다.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대륙에 걸쳐있다. 이 중 중남미 지역에서 커피가 많이 생산되게 된 것은 순전히 프랑스 해군 장교 가브리엘-마티유 드 클리유 덕분이었다.

“여러 곳을 여행한 바 있는 드 클리유는 서구인들이 이제는 더 이상 커피를 이국의 신기한 것, 즉 터키인이나 아랍인의 음료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던과 비엔나를 비롯하여 식민지들에 이르기까지 커피는 카페와 커피전문점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마시는 일상의 기본 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자바 섬에 있는 네덜란드 농장이 세계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어서 자바라는 단어가 곧 커피와 동의어로 쓰였다. 드 클리유는 자신이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마르티니크 섬으로 커피를 가져옴으로써 바야흐로 네덜란드의 독점을 깨고 프랑스 제국을 강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도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 드 클리유의 소중한 나무가 마침내 열매를 맺었을 때 그 모든 끈기는 멋지게 보답을 받았다. 드 클리유는 부근의 대농장에 열매와 꺾꽂이용 가지를 나눠주었고 그로부터 몇 십 년 만에 마르티니크 섬은 생산성이 좋은 2천만 그루의 커피나무를 자랑하게 되었다.” (책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저)

3. 비행기 날개 모양에 씨앗의 날개가 영향을 준 적이 있다.

씨앗은 바로 옆에 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상당히 먼 거리를 (날아서) 여행하곤 한다. 바람을 타고 공중을 둥둥 떠다니다가 물에 떨어진 뒤 그 위에 떠서 이동하고 다시 바닷가나 강가에 도착하여 수분이 마르면 공중을 다시 떠다니곤 한다. 비행기의 모양이 새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씨앗도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역사상 최초의 공습은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 동안 어느 정찰기의 조종석에서 네 개의 작은 수류탄을 투척한 사건이었다. 상부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행동한 이 이탈리아 조종사는 리비아 사막에 있던 터키 군 야영지 위로 급강하하면서 수류탄의 안전핀을 직접 뽑았다. 부상자는 없었지만 전쟁의 양측 모두 그의 행동이 전쟁 매너를 어긴 충격적인 일이라고 질타했다. …. 수류탄 투척을 통해 전쟁 수행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이 조종사는 전쟁사 교과서의 각주에 영구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타고 있던 비행기의 특이한 디자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조종자가 탔던 비행기에는 꼬리 날개가 달려 있고 인도네시아 출신이라면 익숙하게 보았을 법한 맴시 있는 날개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의 우거진 우림 속에는 이와 동일한 디자인이 수천 개씩 허공에 떠다녔다. 이 유명한 사건에 등장했던 비행기는 기본적으로 자바 오이의 유선형 씨앗을 크게 확대시켜 놓은, 날아다니는 씨앗이라고 할 수 있었다.” (책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