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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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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U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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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이 별세했다. 향년 69.

백씨는 25일 오후 2시14분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백씨는 총궐기 당일 저녁에 쓰러진 뒤 외상성뇌출혈 진단을 받고 줄곧 의식을 잃은채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왔다.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정확한 사인을 급성신부전이라고 설명했다.

전남 보성에서 3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백씨는 총궐기 당일 아침에 농민 120여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농민들은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한 가마니 80kg)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날 서울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차벽을 치고 막아선 경찰은 저녁 6시57분께 집회 행진을 하다가 차벽 앞으로 다가간 백씨를 향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쐈다. 백씨는 강한 수압의 물대포를 직접 맞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분사는 그가 쓰러진 뒤에도 15초 이상 이어졌다. 곧장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며칠 지나 뇌수술도 한 차례 받았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못했다.

이후 백남기대책위원회 등이 꾸려져 병원 후문 앞에서 300일 넘게 경찰 규탄 농성을 이어왔다. 경찰은 한 차례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나와 “백남기 농민과 가족분들께 어려움을 겪고 계신 데 대해 인간적으로 심심한 사죄 말씀드리겠다”며 청장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안타까움을 표명한 게 전부다. 백씨의 가족들과 농민 단체 등은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1968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한 백씨는 유신 독재와 군사 쿠데타에 투쟁하다 수배 생활을 하고 고문을 겪다가 몇 차례 제적된 뒤 1980년 퇴학 당했다. 이후 고향 보성으로 돌아가 농사를 시작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하고 1992년 전국 부회장도 지냈다. 백씨가 부회장을 맡았을 때 기존의 생존권 투쟁 대신 평화·생명·공동체 운동을 이끌었다. 그와 오래 지내온 동료들이 백씨를 두고 ‘생명의 농민’이라 부르는 이유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경숙씨와 자녀 도라지(35), 두산(33), 민주화(30)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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