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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머리맡에는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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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15년 저커버그가 추천한 23권의 책 목록이 발표된 적이 있다. 대통령이 휴가만 갔다 와도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들'이란 제목으로 책 목록이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그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들이 무슨 책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세간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국가에서 가장 높은 존재였던 진짜 ‘왕’들은 무슨 책을 읽었을까? 무슨 책을 항상 염두에 두고 국정을 운영해나갔을까? 여기 '왕의 머리맡에 꽂혀 있었을 책들'의 목록을 엄선해 골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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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관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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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일제(千古一帝). 중국의 수많은 황제 중에서도 가장 명군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제는 바로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이다. 당 태종의 치세 기간 중에 중국 한족의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정관의 치'라 하여 치세에 있어 가장 모범을 보여준 황제로 손꼽히고 있다...오긍이라는 사관이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정관정요>는 오늘날까지 제왕학의 기본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책 '왕의 서재', 소준섭 저)

당연한 말이지만, 왕이 세자 때부터 시작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는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사서삼경은 기본이었고, 숱한 중국의 역사서들을 읽고 또 읽어 꿰고 있어야 했다. 중국의 역사서들이 필독서였던 이유는, 그것이 곧 '제왕학'하고도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어떤 군주가 망했고, 어떤 군주가 성군으로 추앙 받았는지를 배우는 일은 자연스레 '어떤 군주가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중 '정관정요'는 제왕학의 기본이 되는 서적이었다. 당 태종이 3천명의 궁녀를 내보낸 자기절제력을 갖추었고, 홍문관을 설치해 20만 여권의 서적을 모았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뛰어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용인술을 보이는 등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절정기를 보낸 군주로서 닮아야 하는 점이 너무나 많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의 행적을 기록한 '정관정요'는 조선에서도 왕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가 되었다.

2. 자치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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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이 이 책을 저술한 까닭은 전국 시대에서 오대(五代)까지 1,362년의 정치적 변천을 더듬어 그 치란흥망(治亂興亡)을 정리함으로써 대의명분을 밝혀 제왕 치세의 거울로 삼고자 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자신의 역사관이 대의명분에 입각해 집약적으로 관철되어 있다. "신의 정력이 이 서에 다하였도다"라고 그가 상주한 바 있는 19년간의 수사사업에는 각 왕조의 정사 외에 잡사 322종이 이용되고 있다."(책 '왕의 서재', 소준섭 저)

정관정요가 한 사람(당 태종 이세민)의 행적을 적어놓은 제왕학 서적이라면, 자치통감은 북송의 대학자 사마광이 자신의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전국시대부터 주나라 세종 때까지 1,362년의 역사를 담은 역사서다. 그러나 이 또한 단순한 역사서는 아니었다. 자치통감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난 일을 거울 삼아 다스림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다. 즉,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에 대한 답을 역사에서 찾으려 한 교과서인 셈이다. 사마광의 열정이 넘쳤던지 양이 무척 방대했는데, 무려 294권에 이르렀다고 한다.

3. 대학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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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대학연의>는 제왕학의 지침서로서만이 아니라 심학의 중요한 교본으로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진덕수의 심학은 중종 대 조광조의 도학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종 대의 도학풍이란 곧 심학풍으로서 그 운동의 과제가 곧 제왕학의 이념화였고 그 교전은 대체로 <성리대전> 및 <소학>, <근사록> 그리고 <심경> 등의 책이었다."(책 '왕의 서재', 소준섭 저)

중국 역사서만 본다고 왕의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유교 경전도 왕의 시야에 맞게 공부해 나가야 했다. 경전의 말씀을 왕의 위치에서 어떻게 실현시켜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읽는 책이 바로 ‘대학연의’였다. 사서오경을 비롯한 다양한 유교 경전의 문구들 중 제왕학과 관련된 문구들만을 따로 모아 편집한 후 그에 부합하는 역사적 사례와 저자 진덕수의 주해를 단 이 책은 조선에서 특히 세자들을 위한 교재로 오랫동안 쓰였다고 한다. 특히 세종대왕은 세자 시절 이 ‘대학연의’를 끼고 살아 암송까지 할 정도였다. 참고로 ‘대학연의’는 총 43권이다. 왕(혹은 세자)의 공부는 진정한 하드코어였다.

4. 성학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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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유학에서 성학이란 성인의 학문을 뜻한다. 성인이 통치를 했던 3대는 동양사회에서 이상정치가 실현된 시기로 숭앙되어 왔다. 그러나 성인이 왕이 되지 못하는 현실적 상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성인이 계승하는 '도통'은 '왕통'과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자성리학에서 '성학'이란 '성인이 되는 것을 배우는 학문'으로 그 의미가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현실적으로 '왕이 학습하는, 또는 학습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때 '성학'이란 '왕의 학문'을 뜻하였으며 곧 '제왕지학'으로 이해되었다."(책 '왕의 서재', 소준섭 저)

'성학집요'는 율곡 이이가 만든 책이다. 예로부터 성인이 다스리는 정치를 이상정치로 생각했던 유학의 전통을 받들어 '왕'을 성인으로 만들기 위한 저술의 결과가 이 '성학집요'다.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제왕학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아니었고 기존 '대학연의'의 내용을 재편집해 간소화시킨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핵심요약집은 인기다!). 그러나 그 해석을 그대로 따라가진 않았다고 한다. ‘성학집요’를 통해서 율곡 이이는 확실한 주종관계를 설정했던 기존의 ‘대학연의’에서 벗어나 "세상을 다스리는 데 반드시 함께 필요한 존재인 동반자 관계로서의 군신관계"(책 '왕의 서재', 소준섭 저)를 설정했다고 하니, 보다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제왕학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해낸 셈이다. 애초에 ‘대학연의’도, ‘성학집요’도 왕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술수'가 아닌 '마음가짐'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다. 왕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했는지, 이 책을 통해 느껴보길 바란다. 왕의 간접체험, 설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