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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직접 기록으로 남긴 3명의 조선시대 여성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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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그것도 시아버지의 명령에 의해 죽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여성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또 자신이 특정한 종교를 신봉한다는 이유 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진출과 교육의 기회로부터 멀어져야만 했던 바로 그 사회에 살았던 지식인 여성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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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조선시대 정조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가 겪은 삶의 일부분이다. 두 번째는 19세기 초 조선에 휘몰아쳤던 천주교 박해의 흐름 속에 존재했던 조선인 여성 순교자 ‘이순이’가 겪은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평범한 양반가 부인이었던 여성 ‘강정일당’의 삶이다.

위의 세 사람 모두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기록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기구했던 삶의 모습을 ‘한중록’이라는 산문을 통해 남겼고 순교자 이순이는 목숨이 위태로웠던 옥중에서 가족들을 향해 보냈던 편지를 통해 자신의 기록을 남겼다. 강정일당 역시 자신의 글과 가족 및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로 기록을 남겼다. 스스로 남겼기에 생생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만나보도록 하자.

1. 사도세자 부인 혜경궁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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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세시쯤 폭우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니, 경모궁께서 평소 그것을 두려워하시더니, 이 무렵 돌아가시니라. 나는 차마차마 그 모습을 헤아리지 못하니, 그때 내 마음이 굶어 죽으려고도 하고, 깊은 물에 들고도 싶고, 수건을 어루만지며 목을 맬 생각도 하고, 칼을 들기도 여러 번 하되, 약한 성격으로 강한 결단을 못 하였으나,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미음이나 냉수조차 먹은 일이 없으되, 능히 지탱은 하였더라. 20일 밤 어찌할 수 없게 되셨다 하니, 비 오던 때가 운명하신 때런가 싶더라. 경모궁께서 차마차마 어찌 견디시며 그 지경이 되셨던고. 그저 정신이 모두 달아난 듯, 그 일을 겪고도 살아난 일이 억척스럽도다…” (책 ‘한중록’, 혜경궁 홍씨 저)

여기서 ‘경모궁’이란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를 이르는 호칭이다. 뒤주에 갇힌 뒤 며칠이 흐르고, 사도세자의 죽음을 알게 된 혜경궁 홍씨의 심정은 처절하다. 200여 년 전에 기록된 글인데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2. 순교자 이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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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비록 죽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과도히 상심하지 마시고 천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배반하지 마시고 편히 명을 따르세요. 요행히 천주께서 절 버리지 않으시면 은혜에 감사하세요…백만 슬픔을 돌이켜 이왕 잃은 바를 위해 울고, 우리의 죗값을 치르세요. 성모에게 몸을 맡겨 마음을 화평하게 하여, 천주께서 앉으실 자리가 되도록 힘쓰세요. 매사 편안한 마음으로 천주의 명령을 따르시면, 이 슬픔을 주어 단련코자 하신 천주의 본의에 합당할 거예요. 그러면 천주께서 반드시 사랑하고 위로하시리니, 주님의 은총을 얻고 공을 세울 기회에 무익하게 상심하여 주님께 죄를 얻으면 저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책 ‘죽음을 넘어서’, 정병설 저)

이순이의 글은 한중록만큼 직접적이지는 않다. 자신의 감정을 상당히 절제하고 있다. 믿음의 깊이 덕분일까? 종교적으로 삶을 관조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녀 앞에 닥친 상황과 글의 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한편으로는 강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3. 양반가 부인 강정일당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니, 밤낮으로 부지런히 하여서 오직 성취하지 못할까를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여가에 한가하게 공상이나 하고 잡담이나 하며, 또 한가하게 손님이나 맞고 여기저기 출입이나 하면서, “군자의 책임은 중대하고 갈 길은 멀다”는 교훈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조심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장수하고 일찍 죽는 것이나, 빈궁하고 현달하는 것은 모두 천명에 달려 있습니다. 부모 된 사람들이 세속의 구구한 말을 듣고 딸에게 공부시키는 것을 큰 금기로 여기기 때문에, 부녀자들 중에는 전혀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매우 가소로운 일입니다.”(책, ‘강정일당’, 이영춘 저)

강정일당의 글에는 남편에 대한 답답함이나 세태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자신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 당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여 성인군자의 길을 걸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가하게 공상이나 하고 잡담이나 하며 이런저런 곳에 출입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혜경궁 홍씨의 기록과 이순이의 옥중편지, 그리고 강정일당의 글은 모두 조선 시대 여성의 삶을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봐도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을 사는 우리도 진심을 담은 글을 부지런히 써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