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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사람들의 유명한 서재 4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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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만의 서재'라는 건 공통된 로망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네이버는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를 운영 중이고, 언론에 서재 스타일링이 '핫한' 트렌드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로망의 가장 중요한 마무리가 있다. 바로 '이름 짓기'이다. 이름을 지음으로써 비로소 '나만의 서재'가 완성된다. 서재의 이름에는 어떠한 목적의 서재를 만들고 싶어하는지 그 뜻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여기 자신의 꿈과 정체성을 서재의 이름에 담아냈던 조상님들의 작명 사례들을 가져왔다. 각자의 처지와 바람에 맞는 이름을 발견하면 적절히 차용해보는 센스를 발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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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 정조 대왕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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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그것은 그가 조선 최고의 장서가이자 저술가이며 출판가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조선 역사가 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실현시킨 인물이었다. 홍재는 정조 이성(李祘)의 서재다. 홍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뜻을 품고 살았던 사람의 서재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정을 베풀기 위해 고뇌했던 정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책 '서재에 살다: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저)

정조 대왕이 훌륭한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그 전에 뛰어난 학자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정조 대왕이 자신의 서재 이름을 손수 지었을 때는 그 이름 안에 학문적 열정과 정치적 야심을 모두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법하다. 그런 마음에 걸맞게 그가 지은 이름은 '홍재(弘齋)'였다. 여기서 홍은 '넓을 홍'이다. 정조 대왕은 자신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 뜻을 '크고 넓게' 가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온 백성에게 인정을 베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평생토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임금이 뜻이 크고 굳세지 않으면, 그리고 세상을 넓게 보고 멀리 생각할 줄 모르면 버텨낼 수가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세손일 때 본래 서재 이름이었던 '주합루(宙合樓)'의 편액을 떼어내고 '홍재(弘齋)'라는 새로운 이름을 걸게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맹렬히 공부하며 '홍', 요즘 말로 하면 '빅픽쳐'를 그리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조직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리더의 서재라면, 정조 대왕의 서재 이름을 차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2.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 백곡 김득신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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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 김득신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가 자공(子公)이다. 타고난 자질이 어리석고 멍청했으나, 유독 독서만은 좋아했다. 밤낮으로 책을 부지런히 읽었는데, 대체로 옛글을 읽은 횟수가 1만 번이 넘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을 좋아했는데, 읽은 횟수가 무려 1억 1만 8천 번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그의 작은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고 이름 붙였으며, 문장으로 크게 이름을 드날렸다." (순암 안정복)(책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 하다', 고전연구회 사암 저)

백곡 김득신은 당시 임금이었던 효종도 "당나라 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다."며 극찬한 대문장가였다. 그러나 그가 두뇌를 타고나 손쉽게 과거에 합격했던 수재는 아니다. 오히려 어렸을 적 그는 둔재에 가까웠다고 한다. 오죽이나 배운 걸 잘 까먹었으면 그를 가르쳤던 외숙 목서흠이 "넌 공부하지 마라."는 권유를 할 정도였을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안 외워지는 책은 무조건 외워질 때까지 보는 '단순무식' 정공법으로 승부를 봤는데, 1만 번을 넘게 본 책이 36편이었고, 그 중 '백이전'은 무려 1억 1만 8천 번을 반복해서 보았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59세에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게 된다. 그 후 자기 서재의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는 말 그대로 글을 한 번 읽으면 1만 번이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만화 미생에는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공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시험을 준비하며 우리를 가장 지치게 하는 건 어려운 내용이 아닌 '똑같은 걸 언제까지 봐야 하나?'라는 지겨움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반복의 천재'였던 김득신 서재 이름을 차용해 바라보면 어떨까? 없던 기운이 솟아날지도 모른다.

3. 수집품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 우봉 조희룡의 서재

"...벼루를 조희룡이 얻었다. 그것은 진흙을 구워 만든 징니연이었는데...조희룡은 무척 기쁜 나머지 재빨리 먹을 갈아보았다. 먹은 아주 잘 갈렸고, 조희룡은 이를 어루만지느라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윤의 징니연을 구한 일을 한나라의 장량이 곡성산에서 황석공으로부터 병법을 얻은 일에 비유했다...사람들은 웃었지만 조희룡에겐 장량이 얻은 병서보다 더 가치 있는 벼루였던 것이다."(책 '서재에 살다: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저)

이런 사람 본 적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 하면 일단 최고급 카메라를 사야 하고, 등산을 가야겠다 싶으면 스틱부터 제일 비싼 걸로 장만하는 사람들. 이런 증상을 '장비병'이라고 부르는데, 추사 김정희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던 중인 출신의 서화가 조희룡은 이 증상이 유별나게 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장비인 벼루를 사서 모으는 데 그는 온 정성을 기울였다. 오죽하면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벼루조차 탐내 한 번 써보기를 청하며 스스로 '벼루에 벽(癖)이 있다.'고 말했을까?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 서재의 이름을 지을 때도 책을 중심에 놓지 않았다.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 즉 '백두 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이라 지었다. 자신의 벼루를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느껴진다. 만약 책이 아닌 다양한 수집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면 크게 고민할 필요 없다. 조희룡의 선례를 참고해 보자. '삼백 개의 피규어가 있는 아파트', '이백오십 개의 만년필이 있는 빌라' 등등.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몰린다 싶으면 개인 박물관을 개관해도 좋을 듯싶다.

4. 다 필요 없고 그냥 책이 좋은 사람이라면 : 간서치 이덕무의 서재

"...내가 18-19세 무렵 살았던 집에 '구서재(九書齋)'라고 이름을 붙인 적이 있네. 여기에서 구서(九書)란 '독서(讀書), 간서(看書), 장서(藏書), 초서(鈔書), 교서(校書), 평서(評書), 저서(著書), 차서(借書), 폭서(曝t書)'를 일컫는 것이었네. 그런데 10년이 지나, 뜻하지 않게 그대의 이름자와 서로 어울리니 참으로 우리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듯싶네..."(책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 하다', 고전연구회 사암 저)

지금껏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무엇보다 서재를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책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거나, 과시하려는 욕망보단 정말 순수하게 책이란 존재 자체가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서재의 이름은 없을까? 여기 그런 사람을 위해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가 지어 놓은 이름이 있다. '구서재(九書齋)'. 책을 읽고(독서), 책을 보고(간서), 책을 소장하고(장서), 책 내용을 베껴 쓰고(초서), 책을 교정하고(교서), 책을 비평하고(평서), 책을 직접 쓰고(저서), 책을 빌리고(차서), 책을 볕과 바람에 쐬어주는(폭서)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낱낱이 즐기고야 말겠다는 '책덕후의 다짐'이 철철 넘쳐흐르는 작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덕무는 서얼 출신이어서 공부를 한다 해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가 없었고, 책을 읽느라 돈벌이를 못했지만 순수하게 책이 좋아 서재를 버리지 못하고 생의 끝까지 독서를 그치지 않는다. 그는 추위와 배고픔조차 독서를 하며 잊어버렸다고 한다. 걱정을 잊고 몰두하게 만들어 새로운 창조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어쩌면 이덕무는 서재의 장점을 가장 잘 꿰뚫은 작명을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