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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엄연히 다른 책이지만, 비슷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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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고려시대 문신 김부식이 쓴 삼국시대의 역사다.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승려 일연에 의해 저술된 삼국시대의 역사다. 삼국유사의 시작은 고조선부터이고 삼국사기는 신라 건국부터다. 따라서 엄밀히 같은 시대를 다룬 책들은 아니지만, 둘 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건국 이후 삼국 멸망을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책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두 책을 비교해 보면 다루고 있는 시기나 사건이 상당 부분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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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책이 상당히 유사하게 사건과 인물을 묘사할 때도 있고, 거의 반대로 서술할 때도 있다. 비슷한 내용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차이가 생기는 것은 왜일까? 역사(책)란 역사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기록한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책이 서로 다른 것은 오히려 당연할 수 있다. 같은 사건, 인물을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비교하며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된다.

지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삼국의 건국신화 중 고구려와 신라 건국자에 대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각각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고구려 시조 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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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백의 딸 유화라고 합니다.”…금와가 이상하게 여겨 방안에 가두었는데 햇빛이 그녀를 비추는지라, 그녀가 몸을 끌어 피하면 햇빛이 다시 쫓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인해 태기가 있더니 알 하나를 낳았는데…왕이 알을 쪼개려 했으나 깨뜨릴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머니가 알을 감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남자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제 손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로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를 아이의 이름으로 했다 한다.” (책 ‘삼국사기’, 김부식 저)

“…”저는 본래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입니다.”…금와가 이상히 여겨 방 속에 깊숙히 가두었더니 햇빛이 그를 비췄다. 몸을 끌어 피하니, 햇빛이 또 쫓아와 비추었다. 그로 인해 잉태하여 한 개의 알을 낳으니…왕이 그것을 깨뜨리려고 했으나 깨뜨릴 수가 없었다. 이에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어미가 물건으로 감싸서 따듯한 곳에 두었더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면 백 번 다 적중하였다. 나라 풍속에 활 잘 쏘는 이를 주몽이라고 하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 (책 ‘삼국유사’, 일연 저)

주몽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사하다.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매우 유사하게 묘사하였다. 더 이상 뺄 것도, 더 이상 덧붙일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고구려는 오래 전에 망하고 없어진 나라다. 그러나 그 기상을 이은 나라가 고려다. 그만큼 소중히 여겼기에 고려 사람이었던 김부식과 일연 모두 주몽, 그리고 고구려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신라의 경우는 어떨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신라 건국신화에서는 다소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2. 신라 시조 혁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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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고허촌장 소벌공이 양산의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 웬 말이 꿇어앉아 울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보자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고 큰 알만 하나 있었다. 알을 가르자 그 속에서 한 어린아이가 나오므로 거두어 길렀다…처음 그가 나온 큰 알이 박과 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에 성을 박씨로 하였다.” (책 ‘삼국사기’, 김부식 저)

“…3월 초하루에 6부의 조상들은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 의논하였다…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밑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전광처럼 땅에 비치는데 흰 말 한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살펴보니 보라빛 알 한 개가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말울음을 울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 아이들 동천에서 목욕시켰다..그를 혁거세왕이라 이름하였다.” (책 ‘삼국유사’, 일연 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서술은 같은 듯 조금씩 다르다. 유학자 출신이었던 김부식의 묘사는 꾸밈이 없고 담백하다. 신라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일까? 너무 허황되게 적어 내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보다 훨씬 신화적이고 신비롭게 묘사한다. 말과 알의 색깔, 알을 발견한 순간에 대한 묘사 등이 상세하다.

3. 백제 무왕

“무왕은 이름이 장이고, 법왕의 아들이다. 풍채가 빼어나고 헌걸찼으며, 품은 뜻과 기개가 호걸스러웠다. 법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에 죽으니, 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책 ‘삼국사기’, 김부식 저)

“공주가 귀양살 곳으로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 나와 절하고, 장차 시위하여 가고자 하였다…함께 백제에 이르러 모후가 준 금을 내어 장차 생계를 꾀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게 도대체 무엇이오?”라고 하였다. 공주는 말하기를, “이것은 황금이니 백년의 부를 이룰 것입니다”고 하였다. 서동이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게 진흙처럼 마구 쌓여 있어요”라고 하였다. 공주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는 천하의 진귀한 보물입니다. 그대가 지금 금이 있는 곳을 아신다면, 이 보물을 부모님 궁전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서동이 좋다고 하였다…서동은 이로 인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책 ‘삼국유사’, 일연 저)

백제의 ‘무왕’에 대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서로 크게 다르다. 삼국사기에서는 무왕을 이전 왕인 ‘법왕’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삼국 유사는 ‘서동’(드라마 ‘서동요’의 서동이 바로 이 서동이다.)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 인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신라 진평왕 딸인 ‘선화 공주’에 대한 이야기, 금에 대한 이야기 등 삼국사기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신기한 이야기들이 삼국유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같은 듯, 다르다. 두 책을 함께 놓고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한 번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떨까? 두 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재미를 느낄 때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