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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올림픽'을 처음 만든 건, 한 명의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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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ke mandeville games

약 1세기 전에만 해도 척추 손상은 곧 사망 선고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척추 손상 환자들은 대부분 3년 내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인생의 패자나 다름없이 살았다.

하지만 1944년 루드비히 구트만이라는 의사가 영국에 스토크 만데빌 병원을 세우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에서 망명한 유태인이었던 구트만은 하반신 불수 치료법을 개선하기를 원하던 신경과 의사였다. 그의 스토크 만데빌 병원은 전쟁 당시 척추 손상을 입은 병사들을 치료하는 본거지가 되었다.

이전의 의사들이 환자의 신체적인 치료에 주목했다면, 구트만은 그들과 달리 정신적인 건강에 관심을 가졌다. 척추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서 사회활동을 못하게 되고, 이 때문에 우울증을 함께 겪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환자들은 이전에 있던 병원에서 서로 ‘다시는 걸을 수 없고, 결국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당신은 걸을 수 있다. 우리가 당신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스토크 만데빌 병원의 간호사였던 조안은 이렇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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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트만은 환자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 대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이 사회의 구석이 아니라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규칙은 그가 생각한 게 아니라 사실 환자들이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바로 “하반신 불수 환자의 첫번째 임무는 문병을 온 방문객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방문객의 위로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보고 마음이 아파할 그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자는 것이다.

1945년의 어느 날, 구트만은 점심식사를 하던 도중 “우리에게는 스포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몇몇 환자들이 지팡이를 이용해 ‘퍽’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난 후였다. 구트만은 그 전까지 환자들을 침대에 눕히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지만, 더 다른 걸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구트만은 환자들이 자유롭게 다트게임이나 활쏘기, 스쿠커(당구의 일종)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폴로나 네트볼 같은 경기도 하게 했다. 이 시도는 성공이었다. 환자들은 스포츠를 통해 자신이 아직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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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한 환자가 입원했을때, 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트만과 함께 일했던 의사 중 한 사람인 존 실버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스토크 병원에 오기 전까지 약 18개월을 기다려야 했었죠. 드디어 우리 병원에 왔을때, 그는 다양한 합병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는 욕창이 있었고, 신장은 담석 투성이었습니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구트만은 그를 치료했고, 다시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구트만은 1948년에 자신의 계획을 실행했다. 당시 7월에는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렸다. 그는 16명의 참전용사들을 여자양궁경기에 참가시켰다. 이날의 경기는 역사상 첫 번째 ‘스토크 만데빌 게임’(Stoke Mandeville Games)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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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스토크 만데빌 게임’은 20년 동안 매년 열렸다. 경기 종목이 늘어났고, 출전 선수도 증가했다. 1949년에는 ‘네트볼’ 종목이 추가돼 37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1950년에는 스누커 등의 종목 추가로 총 126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그리고 1952년에는 네덜란드의 참전용사들이 참가했고, 이로서 ‘국제 스토크 만데빌 대회’가 탄생한다. 1954년에는 7개 종목에 14개국 25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후 1960년, 런던에서 로마로 대회장소를 옮겼다. 당시에는 9회 국제 스토크 만데빌 대회로 불렸지만, 역사는 당시의 대회를 첫 번째 ‘국제 장애인 올림픽’으로 기록했다.

장애인 올림픽은 ‘패럴림픽’(Paralympic)으로 불린다. 많은 사람은 여기서 ‘Para’가 ‘하반신 불수’(paraplegics)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구트만의 비전이 담긴 명칭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스어에서 ‘Para’는 ‘나란히 서서’라는 의미의 전치사로 쓰인다. 그리고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동등하다’란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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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US의 The Paralympics’ Origin Story Is A Moving Lesson In Caring For The Forgotten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