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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장원급제를 하는 건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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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당히 어려웠다.

chosun tradition

우리 동화 속 주인공들이 장원급제 하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춘향전의 이몽룡, 암행어사 박문수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일까? 장원급제가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사서삼경을 달달 외워가면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 시험들도 마찬가지다. 그까짓 교과서, 참고서만 몇 권 달달 외우면 되는 것 아닐까? 장원급제의 길은 사실 멀고도 험했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문과(대과) 시험이 대략 744회 실시되어 급제자는 모두 1만 4,620여 명이 나왔다. 이 가운데 정기 시험인 식년시 163회에서 6,063명, 각종 부정기 시험 581회에서 8,557명이 선발되었다. 다만 이 숫자는 중시를 제외한 숫자다.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쳐 문과 시험이 740여 회 치러졌으므로 장원급제자도 740여 명이다. 문과 급제자 전체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고, 1년에 장원급제자가 대략 1.4명 배출되었으니 정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책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정구선 저)

2. 부정으로 장원급제에 올랐다고 의심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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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으로 대학입시에 합격을 한 후 나중에 들통이 나서 전국이 떠들썩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수석을 한 학생들에게 이런 의혹이 따라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험의 공정성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급제도 아니고 장원급제에게 부정 의혹이 따라다닌 적이 있다.

“명종 때의 이정빈은 파방으로 급제가 취소되었다가 다시 과거를 봐서 장원급제를 한 인물이다. 그는 명종 16년(1561) 문과에 급제했는데, 과거가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았으니 파방해야 한다고 대간이 오랫동안 간했다. 임금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지만 지진과 천둥의 재해가 일어나자 결국 파방을 명해 이정빈의 급제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2년 후인 명종 18년 3월에 임금이 성균관 문묘를 참배한 후 유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알성시에서 이정빈은 다시 장원을 차지했다. 당시 임금이 친히 내린 대책 문제는 …. 그런데 이정빈이 부정행위로 장원을 했다는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당시의 사실을 전한 사관에 따르면, 이정빈이 알성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것은 사실 그의 아버지 이양이 시험 문제를 먼저 알아내 미리 글을 지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양은 명종 때의 권신으로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의 외삼촌이다. …. 당초 알성시 실시가 결정되자 내시 정번이 밤을 틈타 이양의 집에 가서 사람을 물리치고 은밀한 말을 전했다.” (책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정구선 저)

3. 장원급제자 중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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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인성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럴 확률이 더욱 높다. 개인의 이득을 극대화하는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인재는 시험으로 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단순 범죄도 아니고 살인사건에 연루된 장원급제 출신이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관은 성종 5년(1474)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했으나 범죄에 연루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 예조 좌랑으로 있을 때인 성종 9년에 예조의 다른 좌랑, 정랑, 그리고 중학 관원들과 함께 예조의 청사에 모여 술을 마시고 예조의 여종인 춘비를 구타해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 이렇게 해서 최관은 곤장을 맞고 파직되었다가 나중에 관직이 두 등급 강등되어 한성부 참군(정7품)으로 복직되었다. 그러나 옥사의 처결을 잘못했다 하여 다시 좌천되어 한 등급 낮은 장악원 직장(종7품)이 되었다. 이처럼 그는 장원급제자임에도 여러 이유로 정6품직인 좌랑에서 3등급이나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 그 후 오랫동안 당하관에 머물러 있다가 연산군 7년(1501)에야 비로소 당상관인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장원급제 직후 정6품직인 사간원 정언에 초임된 후 무려 27년 만에 정3품 당상관에 오른 것이다.” (책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정구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