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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아일랜드-EU 세금 논란 때문에 어쩌면 '아이렉시트(Irexit)'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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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LAND FLAG BRUSSELS
An Irish flag flies next to an European Union flag in front of the EU Commission headquarters in Brussels June 13, 2008. Irish voters have rejected the European Union's Lisbon treaty, putting plans to overhaul the bloc's institutions in peril and humiliating Ireland's political leaders. REUTERS/Francois Lenoir (BELGIUM) | Francois Lenoir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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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단호하게 결론 내렸다. ‘애플은 불법적으로 감면 받은 세금 130억 유로(약 16조2000억원)와 그 이자를 아일랜드에 내라!’

아일랜드 정부로서는 엄청난 횡재가 아닐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130억 유로는 아일랜드 한 해 보건분야 예산과 같은 규모이자, 아일랜드의 지난해 전체 법인세 수익의 두 배가 넘는 돈이다. 유럽에서 역대 가장 큰, 그것도 압도적으로 큰 규모의 세금 추징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산술적으로 아일랜드가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웨일스와 연결되는 해저터널을 뚫을 수도 있고, 더블린 올림픽을 개최하고도 돈을 남길 수 있으며, ‘힉스입자’ 발견으로 물리학에 대단한 업적을 선사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3개 정도 살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으면 그냥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1인당 2825 유로(약 351만원)씩 나눠줄 수도 있다. 아니면 국가부채를 상환하는 데 써도 된다.

그러나 아일랜드 정부는 즉각 EU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에 어떤 특혜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세금을 걷지 않겠다는 얘기다.

아일랜드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엄청난 세금 수입을 안겨주겠다는데?

아일랜드는 간섭하지 말라고 말한다

apple ireland

아일랜드에는 애플 현지법인이 있다. 1980년에 설립된 이 법인에는 현재 55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애플은 EU 28개 국가에서 아이폰 판매 등으로 올린 모든 수익을 해당 국가가 아니라 아일랜드 현지법인 몫으로 계산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이 낮기로 유명하다. 12.5%다. 독일(29.72%)과 프랑스(33.3%)는 물론, 네덜란드(25%)나 룩셈부르크(29.22%), 영국(20%)과 비교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아일랜드의 낮은 법인세는 아일랜드 경제 정책의 근간이며,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기업을 더블린에 유치한 요인이었다. 심지어 6년 전 국제적인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에 몰렸을 때도 아일랜드는 법인세를 조정하라는 압박에 맞섰다. (블룸버그 8월30일)

아일랜드 주재 미국상공회의소 집계에 따르면, 이런 낮은 세율 덕분에 아일랜드에는 7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이 법인을 설립해두고 있다. 고용인원은 모두 14만명 가량이다. 이런 외자유치는 아일랜드 경제의 핵심 생존 전략 중 하나다.

아일랜드 재무장관 마이클 누난은 “EU의 결정에 항소할 것을 의회에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건 우리 세금체계의 통일성을 보호하고 기업들에게 세금 관련 확신을 주며, 주권을 가진 회원국의 과세 권한을 침해하는 EU 국가 보조금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또 RTE 방송에 “다른 것보다, 이건 감자의 씨를 먹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의 이번 결정에 승복할 경우 당장은 거액의 세금을 추징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요약하면, ‘우리는 세금 낮춰서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할 테니 주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얘기다.

EU는 애플이 이렇게 세금을 피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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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생각은 다르다. EU 집행위원회 경쟁위원회 위원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회원국은 특정 기업에게 세금 혜택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이건 EU의 국가 보조금 규정에 따르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일랜드가 애플에 세금 우대 정책을 적용한 결과 애플이 전체 유럽에서 올린 수익의 실효세율이 2003년 1%에서 2014년에는 0.005%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어떤 세금 혜택을 말하는 걸까? EU는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의 묵인 하에 막대한 세금을 회피해왔다고 본다. 약간 복잡하지만 EU 결정문의 해당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과 ‘애플 오퍼레이션 유럽’은 미국 애플 본사가 100% 소유하고 있는 아일랜드 주식회사다. 두 회사는 본사와 계약을 맺고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인도에 애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두 회사는 그 대가로 매년 연구개발비 명목의 돈을 미국 본사로 보내며, 이는 애플이 미국에서 지출하는 연구개발비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이런 방법으로 애플은 이 지역에서 판매되는 매출과 그에 따른 모든 수익을 아일랜드 법인 몫으로 인식하며, 아일랜드 정부와 맺은 세금규정에 따라 과세대상 수익을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의 ‘본사’로 이전한다. 이 본사는 어느 나라에도 없고, 직원도 없으며, 건물도 없다. 이사회만 가끔 열릴 뿐이다. 이렇게 해서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이 거둔 수익의 일부만 아일랜드 정부의 과세 대상이 되며, 나머지 대부분의 수익은 어디에서도 세금을 물지 않는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아일랜드 정부가 두 차례 연속 세금 규정을 맺으며 이 두 회사가 수익을 회사 내부로 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는 부분이다. 이 가상의 ‘본사’는 허울 뿐이며, 실제 모든 업무는 애플 아일랜드 법인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모든 판매수익은 아일랜드 법인 몫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정당한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기업에 세제 특혜 제공을 금지한 EU 규정을 어기는 것이 된다.

물론 여기에도 언급된 것처럼, 엄밀히 따지면 애플이 법을 어긴 건 없다. 아일랜드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EU는 아일랜드가 EU의 공정거래 규정을 어겼다고 해석했다. '창의적인' 새로운 해석틀을 들고 나온 셈이다.

애플은 법에도 없는 법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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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코크(Cork)에 있는 '애플 오퍼레이션 인터내셔널'. ⓒRueters

아일랜드 정부와 마찬가지로, 애플은 강하게 반발했다. 팀 쿡 CEO는 장문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EU 집행위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쪽으로 아일랜드의 법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며 “전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한 번도 특혜를 요청하거나 받은 적이 없다”며 “아일랜드는 물론 사업을 벌이는 모든 국가에서 애플은 법을 지키고 내야 할 모든 세금을 낸다”고 밝혔다.

이어 팀 쿡은 EU의 결정을 ‘초법적’이라고 비판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는 복잡한 문제이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적인 원칙은 이렇습니다. 기업의 수익은 그 가치가 창출된 국가에서 과세되어야 합니다. 애플과 아일랜드, 미국은 모두 이 원칙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경우, 거의 모든 연구 개발은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뤄지며, 따라서 수익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과세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유럽 기업들도 똑같은 원칙에 따라 세금이 부과됩니다. 그러나 EU집행위는 지금 그 법을 바꿔 소급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애플을 겨냥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규정의 가장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효과는 유럽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있을 것입니다. 집행위의 이론대로라면, 아일랜드와 유럽의 모든 기업들은 갑자기 존재하지 않던 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할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아...아이렉시트(Irexit)?

ireland apple

어디까지나 아직은 매우 조심스럽고 섣부른 추측이긴 하지만, 아일랜드가 유럽연합을 떠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아이렉시트(Irexit)’다.

워싱턴포스트는 “어떤 사람들은 EU의 이번 결정을 두고 영국이 ‘브렉시트’ 결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일랜드가 간섭적이고 반(反)주권적인 유럽연합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다르게 질문해보자. 아일랜드 정부와 결탁한 애플이 거액의 세금 감면으로 아일랜드 국민들의 주머니를 턴 걸까? 아니면 유럽연합이 아일랜드의 경제 모델을 약화시키고 경쟁상의 이점을 빼앗음으로써 장기적 성장에 위협을 가한 걸까?

지난 6월 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아일랜드해를 가로질러 벌어졌던 논란은 영국에 대한 충성 같은 건 없는 관료들이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앚아서 자기들 만의 법을 써내려간다는 데 집중됐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 탈퇴로 영국이 경제와 이민 정책의 “통제권을 되찾아올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 8월30일)

EU 내에서는 단순한 화폐 통합을 넘어 ‘단일시장’을 완성하기 위해 ‘세금체계 단일화(tax harmonization)’를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회원국의 법인세를 하나로 통합해 ‘바닥을 향한’ 법인세 인하 경쟁을 막자는 것.

이런 방안은 2000년대 초에도 논의된 바 있으나, 영국 등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또 2008년 ‘EU합중국으로 가기 위한 합의’라고도 불렸던 리스본 조약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킬 당시, 아일랜드 내 반대진영은 세제 단일화로 아일랜드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이리시타임스에 따르면, 아일랜드 집권 여당이자 원내 1당인 통일아일랜드당 소속 유럽의회의원(MEP) 브라이언 헤이스는 지난 6월 이런 주장에 반발하며 “(법인세에 대해) 우리를 회유하려는 어떤 시도라도 있을 경우, 내 생각에 아일랜드는 탈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브래드 배더처 노트르담대 교수는 “영국이 EU를 떠난 이유 중 하나는 날로 커져만 가는 EU의 권력 때문이었으며, 이건 그 권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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