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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찾아본 '독재자' 4명의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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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비슷한 기사가 나오면 감흥이 떨어진다. 문제 제기의 경우 문제로 안 받아들이기도 한다. 올해 초 한겨레신문에는 ‘지난 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분의 1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으며, 성인 연평균 독서율(독서인구)은 2013년보다 6.1%포인트나 떨어진 65.3%에 그쳤다’는 기사가 실렸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법한데,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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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독서가 반드시 성인군자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괴물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스스로만 망치면 좋으련만 꼭 이런 괴물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1.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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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들에게 감옥에서 공부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은 당국이 범한 심각한 실수였다. 강박적일 정도의 독학자인 이들은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중에서도 스탈린은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의 감방 동료는 말한다. "그는 하루 종일 읽고 썼다. 그는 감옥에서 엄격한 일정에 따라 살았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고, 오전 운동을 한 다음 독일어를 공부하고 경제학 책을 읽었다. 조금도 쉬지 않았고, 동지들에게 무슨 책을 읽을지 권하기를 좋아했다." 또 다른 죄수는 스탈린이 "감옥을 대학교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을 자신의 "제2의 학교"라 불렀다."
(책 '젊은 스탈린',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저)

스탈린은 '수불석권'이란 동양의 경구를 (아마도!) 듣지 못했으면서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감옥에서도 유형지에서도 심지어 내전 때 전장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책 '독서독인', 박홍규 저)고 전해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그의 독서열은 '금서'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탈린이 16세 때 그루지야의 한 신학교에 사제가 되려고 입학했는데 신에 관련된 것 외에 모든 것을 금지하는 규율에 반발해 금서 클럽에 가입해 금지가 된 책들을 읽은 것이 독서편력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그저 소년들이 읽을 법한 문학 서적들이었지만, 금서 열람의 폭은 점점 광대해져 후일엔 '마르크스, 레닌주의 저작'들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그는 무신론자가 되어 신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독재자 스탈린이 부하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문답의 형식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신학교에서 소설 정도는 읽게 했다면 소련, 더 나아가 우리의 역사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2.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어려서부터 독서에 열중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교과서였던 유교 고전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8세에 사립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공자를 싫어했고 대신 유교에서 싫어한 ‘수호지’, ‘삼국지’, ‘서유기’를 읽었다고 회상했다. 청나라 정부는 그 책들을 금지하기도 했다. 선생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유교 공부를 원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즉 그의 최초 반항은 독서 반항이었다. 선생이나 아버지가 매질을 하여 더욱 반발했다. 그는 자신이 반대 투쟁을 한 최초의 자본가는 아버지라고 회상했다."
(책 '독서독인', 박홍규 저)

마오쩌둥의 독서편력의 계기는 스탈린과 꽤 유사하다. 다만 스탈린 반항의 대상이 신학과 그 계율이었다면, 마오쩌둥은 유교적 질서와 그의 아버지였을 뿐이다. 유교의 고전 대신 ‘수호지’류의 모험 소설을 읽었다는 점도 신학 서적 대신 빅토르 위고의 ‘93년’같은 혁명소설을 읽었던 스탈린과 비슷하다. 다만 스탈린이 학교 내 '금서클럽'에 가입해 독서를 해나갔다면, 마오쩌둥은 철저한 '독학자'였다. 17세가 되어서야 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이듬해 도서관에서 6개월간 "미친 듯 열렬히" 책을 읽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그가 20세가 되기 전에 읽은 책들 중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밀의 ‘자유론’,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이 있었다. 일찌감치 서양의 사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10대부터 되어 있었던 셈이다. 엄격한 규율에 대한 반항심이 결국 ‘더 엄격한’ 독재자로 이끌어갔던 과정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미워할수록 흉 보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3. 폴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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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마르크스 클럽의 회원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아주 모호하게만 알았다. 티오운 뭄, 키우 삼폰 그리고 한 세대 뒤의 수옹 시코은, 인 소페압 같은 급진파 학생들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국가와 혁명’, 스탈린의 ‘사회주의 경제 문제’ 같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존재였다. 뒷날 소르는 "두꺼운 마르크스의 책들을 읽기는 했지만...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실토했다." (책 '폴 포트 평전', 필립 쇼트 저)
※살로트 소르(Saloth Sar)는 폴 포트의 본명이다.

'킬링필드'로 대표되는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는 '어설픈 독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을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폴 포트는 프랑스 유학 당시 캄보디아 유학생들의 사상학습모임인 '마르크스 클럽'에 가입해 활동한다. 그러나 거기서 읽었던 책들을 명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했다. 다만 그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어렸을 적 배운 불교 교리처럼 받아들여 자신을 '악인'을 물리칠 '선인'으로 인식했을 뿐이다(책 '폴 포트 평전', 필립 쇼트 저). 공장노동자들이 전무하며 농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봉건사회'에 가까웠던 당시 캄보디아에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은 잘 들어맞지 않았지만, 폴 포트는 마오쩌둥의 저작과 크로포트킨이 쓴 '프랑스 대혁명'을 추가적으로 읽은 걸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독서를 통해 얻은 '어설픈 이해'와 '지나친 확신'이란 끔찍한 조합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는 대량 학살이었다. 부실하게 읽은 책을 자기 식대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는 사례다.

4. 히틀러

"...히틀러는 독서를 사전에 이미 형성된 관념의 '모자이크'를 채우기 위해 '돌'을 모으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는 차례나 색인을 살펴본 다음에 해당 장(章)을 펼쳐서 '쓸 만한' 정보를 조금씩 모았다. 때로는 결론부터 읽어서 무엇을 기대할지 사전에 판단했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필요하거나 일반적으로 알아두면 유용할 정보를 '즉시' 파악하는 기술을 연마하라고 독자에게 권했다." (책 '히틀러의 비밀 서재', 티머시 W. 라이백 저)

히틀러는 강한 열등감이 맹렬한 독서의 형태로 나타난 케이스다. 히틀러가 뮌헨의 어느 저명한 교수에게 토로했던 대로 그는 '명성도, 지위도, 학력도 없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려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한 사상적 배경이 필요했다. 실제로 그는 죽기 전까지 거의 매일 500쪽에 가까운 책을 읽었고 2만권이 넘는 장서를 가졌으며 두 종류의 백과사전을 수시로 들춰보며 지식을 교차 확인하는 습관을 가졌다. 다만 훌륭한 독서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의 독서가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하는 독서'였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위대한 인종의 쇠망', '백인 지상주의에 맞선 유색 인종들의 해일', '국제유대인' 등 인종 차별적인 도서들만을 편집적으로 읽어 그의 반유대주의를 만들었다. 독서의 편식이 가져온 결과 중 최악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이 책들이 모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와 인종 차별주의가 그의 창작품이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 상당히 퍼져있던 생각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