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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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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전 오늘(9월 1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로 1945년까지 약 6년 간 수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히틀러가 미친 영향은 강력하다. 지금도 한 국가에 지도자가 등장하여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거나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흔히 히틀러에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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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다. 미국은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이민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반이슬람의 선봉도 자처한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히틀러와 연결시킨다. 지난 8월 4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작년 11월에 미국 내 무슬림 명단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해 관리하겠다고 하였는데 나치 정권의 히틀러가 유대인 신원 등록을 하도록 한 정책이 연상되며, 그로 인해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s)’에는 트럼프가 히틀러가 저자인 ‘위대한 연설(Great Speeches)’이라는 제목의 책을 갖고 있는 모습까지 등장하였다고 한다. 또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MSNBC 앵커가 대통령 트럼프의 가능성에 대비해 히틀러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donald trump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비정상적이고 광기 어린 히틀러와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다. 워낙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이 이야기까지는 몰랐다고 보는 게 맞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까지 알고 나야 ‘아, 이래서 독일 사람들이 처음 집권을 한 히틀러에게 높은 지지를 보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틀러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을 한번 알아 보자.

1. 히틀러의 업적 중 경제기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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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경제는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들은 종종 투표로 함량미달의 후보에 표를 몰아주곤 한다. 그 후보가 그럴싸한 배경을 바탕으로 국가와 당신의 부를 눌려주겠다고 약속을 할 경우에 그렇다. 이 경우 외교, 안보, 복지, 사회 등 다른 중요한 이슈들이 가리게 된다. 더 나아가 지도자가 경제를 진짜로 살려주면 제대로 지지를 받게 된다. 경제 외에 다른 분야의 이야기들은 관심이 없어져서 그 지도자가 멋대로 하더라도 제재를 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괴상한 지도자로만 알고 있었던 히틀러에게도 경제 업적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었다.

“히틀러가 제국의 총리가 된 1933년에 독일에는 600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다. 불과 3년이 지난 1936년에는 완전고용이 이루어졌다. 아우성치던 곤궁과 대량빈곤이 사라지고 소박하나마 편안한 복지 상태가 실현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책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던 상태에서 이제는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불황에서 경제적 번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없이 임금과 물가가 완전히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뒷날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 히틀러가 경제나 경제정책 면에서 완전 문외한이라는 말은 맞다. 경제기적에 발동을 건 몇 가지 발상들은 대붑누 그의 생각이 아니었고, 당시 모든 것을 좌우한, 대단히 위험한 재정적인 묘기는 분명히 다른 사람, 곧 그의 ‘재정 마법사’인 히얄마르 샤흐트의 공로였다. 하지만 샤흐트를 데려다가 먼저 제국은행의 수장으로, 이어서 경제장관으로 일하게 한 사람이 히틀러였다.” (책 ‘히틀러에게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저)

2. 히틀러를 극우파로 부르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다.

히틀러와 비유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극우파다. 그래서 히틀러는 극우의 상징이다. 사실 히틀러는 뒤죽박죽인 면이 많았다.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독일 사람임을 자처했다. 굉장히 무모한 결단을 많이 내렸지만 한편으로는 확실한 결정을 미루는 성향이 강했다. 극우적 성향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파적 성향도 강했다.

“1930~1934년에 히틀러가 국내정치에서 진지하게 고려하고 이따금 투쟁도 벌여야 했던 적 또는 경쟁자는 오로지 보수진영뿐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자유주의자, 중앙당, 사회민주당은 그에게 아무 방해도 된 적이 없으며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이들 보수주의의 반대조차 히틀러에게 진짜로 위협이 된 적은 없었다. ….그를 붕괴시킬 기회가 아주 적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시도를 한 유일한 반대파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반대파는 우파였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히틀러는 좌파였다. 그섯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히틀러는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리 쉽게 극우파로 분류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물론 그는 민주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대중이 원하는 바를 따르는 포퓰리스트였다. …. 그의 가장 중요한 통치 수단은 민중 선동이었고, 그의 통치 기구는 잘 구성된 서열이 아니라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채 오직 꼭대기에서 그 개인을 통해서만 통합된 민중 조직의 혼란스런 덩어리였다. 모든 것은 ‘우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좌파’의 특징이었다.” (책 ‘히틀러에게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저)

3. 히틀러는 자칭 독서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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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지적인 것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지식인들에 대해 적대감을 보인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낙제를 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상당한 열등의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히틀러가 독서를 꽤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참 당황스러운 일이다.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그 물이 독이 되고, 벌이 먹으면 그 물이 꿀이 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독사가 읽은 책들은 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의 독서 취미는 수감생활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 놀라운 사실은 히틀러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보내는 여러 달 동안 칸트와 실러, 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 같은 철학자들의 책을 읽었다고 주장했다. …. 히틀러 자신은 수감 기간 동안 “내 즐거움은 오로지 한 가지, 독서뿐”이라고 주장했다. …. 다만 그의 동지인 헤르만 라우슈닝은 이렇게 증언한다. “(히틀러는) 평생 제멋대로 살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온종일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집중해서 책을 읽는 일은 질색한다. 그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린다.”” (책 ‘히틀러의 철학자들’, 이본 셰라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