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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사태'를 연상케 하는 또 다른 기업범죄 사례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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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실험보고서를 조작하는 데 개입했는지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한겨레'의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그냥 넘어갔던 것은 옥시 등 해당 기업과 로펌만은 아니다. 환경부는 2012년 전까지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가는 독성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17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어떤 안정성 조사도 하지 않았으며, 고용노동부는 에스케이케미칼의 정보보호를 받아들여 유해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다른 내용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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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발생한 피해자는 지난 8월 15일까지 4261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어머어마한 피해자들이 나올 때까지 어떠한 견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기업은 거짓을 말했고, 정부는 거짓말을 (제대로 알건 모르건 간에) 눈 감아 주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옥시’ 사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를 끝까지 밝혀내고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이도록 촉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숱하게 많다. 그러한 고군분투 스토리를 책에서 찾아 보았다. 설마 하겠지만 아직도 여러 ‘옥시’들이 우리 주변에 숨죽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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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G&E vs 힝클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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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에드가 내 책상 위에 서류 상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운명의 상자였다. 로버타 워커라는 여자가 있다...그 로버타 워커라는 여자는 당시에 PG&E(퍼시픽 가스&전기 회사)로부터 집을 팔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힝클리의 같은 마을에 살던 다른 주민들은 모두 PG&E에 집을 팔고 멀리 이사를 갔고, 로버타만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법률 회사의 개인 상해 담당 부서에서 1만 달러 미만의 소액 건으로 분류되어 변호를 맡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의견이 나온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져가던 일이었다...그렇게 해서 그 파일은 내게로 오게 되었다. 매스리와 비티토 법률 회사에서 가장 직급이 낮은 사람이 나였으므로...” (책 ‘에린 브로코비치, 그녀가 승리한 이유’, 에린 브로코비치 저)

1993년 당시 한 법률회사의 말단 사무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던 에린 브로코비치는 ‘힝클리 주민 대 PG&E’ 소송 사건을 맡는다. PG&E 펌핑 공장 근처에 거주하던 힝클리 주민 로버타 워커의 소송 사건 파일에서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측정된 혈액 검사 결과를 우연히 발견했고, 이내 그것이 힝클리 주민 상당수가 겪는 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냉각탑 부식 방지제였다. 가스 및 전력 회사인 PG&E가 펌핑 공장의 냉각탑에 사용한 부식 방지제에 발암 물질인 6가 크롬이 섞여있었고, PG&E는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마구 방출했던 것이다. 1952년부터 무려 40년 이상 지속된 일이었다. 6가 크롬이 섞인 폐수는 지하수로 스며들어갔고, 이 지하수는 주변의 힝클리 주민의 식수원이 되었다. 힝클리 주민들이 겪었던 습관적인 유산과 잦은 코피, 피부병, 계속되는 가축의 죽음, 다양한 소화기 이상과 암 발병 등이 이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 에린 브로코비치는 주민들을 설득해 총 634명의 집단 소송을 준비한다. 4년에 이르는 재판 끝에 PG&E는 634명 각자에게 3억 3,300만 달러에 달하는 배상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판결 확정 후, 원고 634명 중 50명은 6가 크롬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 받는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 사건은 2000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2. DDT 업체 vs ‘침묵의 봄’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동안 무분별하고 놀라운 위험을 강요당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지금까지 충분히 인내해온 우리가 마지막으로 ‘알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그때야말로 독극물로 세상을 가득 채우려는 사람들의 충고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또 다른 어떤 길이 열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책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저)

지금은 생태학계의 고전이 된 ‘침묵의 봄’이다. 하지만 이 책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고발하는 일은 늘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집단으로부터 교묘하게 방해 받기 때문이다. DDT는 1950,60년대 이미 미국에서 해충을 죽이는 방제 작업에 널리 쓰이는 화학약품이었다. 당시 미국 농촌에선 마디매미, 매미나방, 네덜란드느릅나무병 등 각종 외래 해충과 나무병이 확산되던 중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DDT는 이를 막을 거의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은 1958년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DDT가 살포된 후 새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 이후 DDT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십이지장궤양과 유방암과 싸우면서 5년에 걸쳐 ‘침묵의 봄’을 써 1962년 출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화학산업계는 해충을 죽이기 위해 살포한 DDT가 인간과 새의 체내에 축적되어 해를 끼친다는 의견에 강하게 반발하며 여러 공작을 펼쳐 카슨의 주장을 방해한다. 특히 몬산토 사는 ‘침묵의 봄’을 패러디한 ‘황량한 시대’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DDT를 안 쓰면 병충해 때문에 기아와 질병이 만연한 세상이 된다.’는 주장을 펼쳐 맞불을 놓았다.
미국 정부에서도 거들어 주었다. 연방해충방제 감독청의 한 고위 인사는 그녀가 ‘비혼’이라는 사실을 걸고 넘어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이때쯤 미국인들은 핵전쟁의 공포와 방사능의 폐해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 결과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들에 대해 뜨겁게 반응을 했고 결국 1962년 중반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직속 과학자문위원회의 실태 조사가 이뤄지게 된다(책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 알렉스 맥길리브레이 저). 비록 레이첼 카슨은 책이 출간되고 2년 만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인간과 새의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은 과학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3. 몬산토 vs 애니스턴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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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2일, 앨라배마 주 애니스턴, 데이비드 베커는 떨리는 손으로 캠코더에 테이프를 집어넣었다. “이날 있었던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19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는 남몰래 눈물을 닦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제 평생 가장 중요한 날이었어요. 저희 고장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다국적기업 중 하나를 몰아내고 마침내 존엄성을 되찾은 날이죠. 몬산토는 그동안 우리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업신여겨 왔어요.” 텔레비전 화면에는 2001년 8월 14일, 애니스턴에서 촬영된 영상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태양은 황금빛으로 대지를 물들이고, 아마추어 카메라맨은 사방에서 밀려드는 인파에 압도된 듯 카메라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떼를 지어 모여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단호하면서도 차분한 걸음걸이로 22번가에 위치한 종합문화회관을 향하고 있었다. 그 이튿날 ‘애니스턴스타’는 “시위 참가 인원은 모두 5,000명이었다. 애니스턴이 생긴 이래로 이토록 많은 인파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고 보도했다.” (책 ‘몬산토: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마리-모니크 로뱅 저)

지금 몬산토는 종자 산업으로 주 업종을 변경했지만, 20세기 중 후반 몬산토는 DDT 등의 화학제품을 주로 파는 기업이었다. DDT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레이첼 카슨에게 몬산토가 반성 대신 ‘황량한 시대’라는 조롱 섞인 소책자를 만들며 대응했던 것처럼, 그들은 PCB(폴리염화비페닐)로 고통 받아 온 애니스턴 주민들에게도 그리 친절하진 않았다. 제품생산 과정에서 윤활액으로 쓰이던 PCB는 애니스턴에서 1929년부터 1971년까지 42년간 생산되었으며, 생산과정에서 생긴 폐기물들은 공기, 하천, 마을 한복판 하치장 등에 무단으로 버려졌다. 이로 인해 약 450명의 아동들이 뇌병변 장애를 가지게 되었으며, 주민들이 암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게 된다. 결국 3516명의 주민들이 1997년 집단소송을 거는데, 이것이 바로 ‘아버나시 vs 몬산토(Abernathy vs Monsanto)’ 소송이다. 이때 몬산토는 굉장히 익숙한 수법을 행사한다. 소요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애니스턴에 있던 공장을 미리 다른 법인에 팔고 본인들에게 책임이 없는 듯 위장한 것이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기업 내부보고서들을 통해 몬산토가 적어도 1937년부터 PCB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후 실험을 통해 몇 번이고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모든 걸 은폐했음이 드러나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몬산토와 정부기관들의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 1970년 앨라배마 주의 수질 개선 위원회는 PCB의 위험성을 애니스턴 주민들에게 알리는 대신 몬산토에 “몬산토가 보유한 자료를 여론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사적인 조언을 해주었고, 미국 FDA 또한 애니스턴의 하천이 PCB에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알았음에도 하천에서 고기를 잡아먹던 주민들에게 어떤 경고 조치도 행하지 않았다. 결국 1977년 미국 내 PCB 생산이 공식적으로 중단될 때까지 정부도, 기업도 각종 위험성에 대해 주민들에게 전혀 고지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2002년 몬산토는 애니스턴 주민들에게 약 7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부 책임자와 기업 책임자 누구도 징역형을 선고 받지는 않았다.

4. 쓰레기 시멘트 vs 우리 중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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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공장과 환경부는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시멘트 안에 유해물질이 많아도 굳으면 안전하다는 허접한 논리 하나로 폐타이어, 폐고무, 폐유, 하수 슬러지, 소각재, 공장 오니, 폐페인트, 폐유기용제 등으로 시멘트를 만들었다. 심지어 한때는 탄약상자까지 시멘트 제조에 사용했다. 쓰레기 안에 담겨 있던 유해물질들이 100퍼센트 다 사라졌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가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책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최병성 저)

1999년 8월 환경부는 IMF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시멘트 회사들을 위해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해 시멘트를 만드는 시멘트 소성로를 ‘쓰레기 소각장’의 하나로 인정한다. 석회석에 점토, 철광석, 규석을 섞어 유연탄으로 1400도 고온에 태우는 방식 대신 각종 산업 폐기물을 ‘대체 원료’의 이름으로 섞어 태우는 방식을 용인해준 것이다. 원료 및 연료 가격을 절감하고 쓰레기 처리 비용을 받을 수 있었기에 모든 시멘트 회사들은 이 ‘대체 원료’들을 사용하게 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환경부가 어떤 종류의 유의미한 쓰레기 사용기준, 시멘트 안전기준을 만들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시멘트 등급제, 시멘트 성분 표시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시멘트가 완벽하게 굳는 완전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폐기물에 남아 있는 발암물질이나 방사능이 나올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그 근거이다. 이 책은 이런 제도적 보완을 10여 년 넘게 주장하고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썼다. 비록 ‘옥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또 다른 잠재된 위험을 미리 제거하는 일은 지금도 가능할 것이다.